원오(圜悟)스님께서 풍주(灃州)의 협산(夾山) 영천선원(靈泉禪院)에 주석하시면서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의 송고(頌古)에 대하여 평창한 말씀의 핵심.
- 벽암록 中
제55칙 도오의 말할 수 없음(道吾不道)
- [垂示]
垂示云. 穩密全眞, 當頭取證, 涉流轉物, 直下承當.
向擊石火閃電光中, 坐斷[言+肴]訛, 於據虎頭收虎尾處, 壁立千仞.
則且置, 放一線道, 還有爲人處也無. 試擧看.
[수시]
은밀하고도 완전한 참인이 소식을 대뜸 깨치고,
갖가지의 반연속에서도 그것을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어 단박에 당처를 알아챈다.
전광석화 속에서도 잘못을 순간에 끊고,
호랑이 머리를 타고 꼬리를 잡는 경지에 천 길 벼랑처럼 우뚝 서 있구나.
그러나 이런 경지는 그만두더라도
가느다란 (방편의) 길을 놓아 수행자를 지도하는 부분이 있느냐?
거량해보리라.
[본칙]
擧. 道吾, 與漸源, 至一家弔慰. 源, 拍棺云, 生邪死邪. 吾云, 生也不道, 死也不道.
源云, 爲什不道. 吾云, 不道, 不道.
回至中路, 源云, 和尙, 快與某甲道. 若不道, 打和尙去也.
吾云, 打卽任打, 道卽不道. 源, 便打. 後, 道吾遷化. 源, 到石霜, 擧似前話.
霜云, 生也不道, 死也不道. 源云, 爲什不道. 霜云, 不道不道. 源, 於言下有省.
源, 一日將子, 於法堂上, 從東過西, 從西過東. 霜云, 作什. 源云, 覓先師靈骨.
霜云, 洪波造渺, 白浪滔天. 覓什先師靈骨.(雪竇著語云, 蒼天蒼天.)
源云, 正好著力. 太原孚云, 先師靈骨猶在.
거론하다.(擧.)
도오(道吾 : 769~835)스님이 (제자인) 점원(漸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을 하게 되었는데 점원스님이 관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道吾, 與漸源, 至一家弔慰. 源, 拍棺云, 生邪死邪.)
- 무슨 말을 하느냐? 얼씨구,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이놈이 (생사의) 양쪽에 있구나.
도오스님이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吾云, 生也不道, 死也不道.)
- 용이 우니 안개가 피어나고 호랑이가 휘파람을 부니 바람이 이는구나.
모자를 사고 나서 머리 치수를 잰다. 노파심이 간절하구나.
“왜 말로 못합니까?”(源云, 爲什不道.)
- 빗나가버렸다. 예상을 했지만, 잘못 알았군.
“말로는 안 되지! 말로는 안 되지!”(吾云, 不道, 不道.)
- 더러운 물을 대뜸 끼얹는다.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볍지만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돌아오는 길에(回至中路,)
- 정신을 바짝 차려라.
점원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어서 말해보시오. 말하지 않는다면 치겠습니다.”
(源云, 和尙, 快與某甲道. 若不道, 打和尙去也.)
-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귀뚫은 사람[穿耳客 : 달마스님]은 만나기 어렵고
뱃전에 칼 잃은 곳을 새긴 자[刻舟人]는 많구나.
이같이 어리석은 놈은 쏜살처럼 지옥에 빠진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은 할 수 없다.”(吾云, 打卽任打, 道卽不道.)
- 두 번 세 번이라도 일을 정중히 해야지.
쳐라! 이 늙은이가 온몸에 흙탕물 투성이가 되었군.
처음 먹은 마음을 고칠 수야 있나!
점원스님이 후려쳤다.(源, 便打.)
- 잘 쳤다. 말해보라, 그를 쳐서 무엇 하려고 했는가를.
억울한 매는 원래부터 맞을 놈이 따로 있었는데…….
그 뒤 도오스님이 돌아가시자 점원스님이 석상(石霜)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얘기를 말하니,(後, 道吾遷化. 源, 到石霜, 擧似前話.)
- 다 알고서도 한 번 해본거지.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으나 옳다면 매우 기특한 일이다.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살아도 말로 못하고 죽어도 말로는 못한다.”(霜云, 生也不道, 死也不道.)
- 너무도 시원하군. 이 밥상을 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까?”(源云, 爲什不道.)
- 말은 마찬가지나 의도는 서로 다르다.
말해보라, 전일에 물었던 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고 말고.”(霜云, 不道不道.)
- 온 천하에 그득하네.
조계의 물결(두 스님의 말씀)이 서로 닮았다고 한다면,
수없이 많은 멀쩡한 사람을 땅속에 파묻는 꼴이 되고 만다.
점원스님은 그 말에 깨우침이 있었다.(源, 於言下有省.)
- 눈먼 놈아! 산승(원오스님)을 속이지 말았어야 좋았을 걸…….
하루는 점원스님이 삽을 들고 법당 위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가자,(源, 一日將子, 於法堂上, 從東過西, 從西過東.)
- 그렇지만 죽음 속에서 살아났구나.
돌아가신 (도오)스님께 그것을 보여드렸더라면 좋았을 걸.
그에게 묻지 말고 먼저 이놈이 당한 한바탕 수치를 살펴보라.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무얼 하는가?”(霜云, 作什.)
- 후수를 두지 말아라!
“선사(先師)의 영골(靈骨)을 찾고 있습니다.”(源云, 覓先師靈骨.)
- 상여 뒤에 약봉지를 달았구나(차는 떠났다).
애당초에 조심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너는 무슨 말을 하느냐?
“거대한 파도는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선사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이냐?”(霜云, 洪波造渺, 白浪滔天. 覓什先師靈骨.)
- 그래도 그에게 본분소식을 되돌려주었어야 했다.
(잡놈들이)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울 정도로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아이고, 아이고!”(雪竇著語云, 蒼天蒼天.)
- 너무 늦었다.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긴 격이다.()
(세 명 모두) 한 구덩이에 묻어버렸어야 옳다.
점원스님은 말하였다.
“쓸데없이 애를 쓰네.”(源云, 正好著力.)
- 말해보라, 귀결점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돌아가신 스승께서 전에 그대에게 뭐라고 말했던가.
이놈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직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는군.
태원(太原)의 부상좌(孚上座)는 말하였다.
“선사(先師)의 영골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太原孚云, 先師靈骨猶在.)
- 대중이여, 보았느냐? 번뜩이는 번갯불과 같다.
이 무슨 낡아빠진 짚신인가?
(태원은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평창]
도오스님이 점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하였는데
점원은 널[棺]을 두드리면서 말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도오스님은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못하며, 죽었어도 말로 못한다.”
이 말 속에서 알아차리고 그 의도를 알면
이는 바로 생사를 투철하게 벗어나는 관건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정통으로 빗나가게 될 것이다.
잘 살펴보라.
옛사람들은 행주좌와 언제나 ‘이 일’만을 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남의 집에 가 조문하면서도 점원스님이 널을 두드리면서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하니,
도오스은 조금도 그 물음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에게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점원스님도 완전히 빗나가 그가 한 말에 끄달려 다시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말로 할 수 없지, 말로 할 수 없다.”
도오스님은 자비스러움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
그런데도 점원스님은 잘못으로 인해 점점 더 잘못을 더해나갔다.
점원스님은 그때까지도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빨리 말해주시오. 말하지 않으면 치겠습니다.”
이놈에게 좋은지 나쁜지를 가릴 줄 아는 능력이 어찌 있었겠는가?
이야말로 이른바 좋은 마음씨를 좋게 갚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도오스님은 변함없이 노파심이 간절하여 다시 말하였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로는 할 수 없다.”
그러자 점원스님은 후려쳤다.
비록 매를 맞기는 했지만, 그는 한 수 이긴 셈이다.
도오스님은 이처럼 (땀방울이 아닌)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도록 그를 지도했으나
점원스님 깨닫지 못하였다.
도오스님은 맞은 후에야 점원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떠나도록 하라.
절에 있는 책임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대에게 화를 미칠까 염려스럽다.”
이에 남모르게 점원스님을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도오스님은 참으로 자비로웠던 것이다.
점원스님 그 뒤 작은 절에 이르러 행자(行者)가 외우는 관음경(觀音經)의
“비구의 몸으로 제도를 받을 자에겐 비구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을 한다”는 구절을 듣고
문득 크게 깨친 후 말하였다.
“내가 그 당시에 스승을 잘 모르고 나쁜 짓을 했구나.
‘이 일’이 언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몰랐구나!”
옛사람(운문스님)의 말에
“도량이 한없이 큰 대인조차도 말에 놀아나는 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망정으로 이해하고서
“도오스님의 ‘말로는 할 수 없지, 말로는 할 수 없네.’라는 그것도 말해버린 것이다”고 하며,
이는 등을 돌려 사람으로 하여금 찾지 못하도록 만드는 격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해한다면 어떻게 평온할 수 있겠는가.
실다운 경지를 밟았다면 실오라기만큼의 간격도 없을 것이다.
듣지 못하였는가, 칠현녀(七賢女)가 시다림(屍陀林)에서 거닐다가
시체를 가리키면서 물었던 이야기를.
“시체는 여기에 있는데 (본래의)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큰언니가 말하였다.
“뭐냐, 뭐냐?”
그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쳤다 한다.
말해보라, 깨친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를.
천 명 만 명 중에서 다만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점원스님은 그 뒤 석상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자,
석상스님은 앞과 같이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말로 하실 수 없다 하십니까?”
“말로는 할 수 없지, 할 수 없고말고.”
이 말에 그는 문득 깨치게 되었다.
어떤 날 가래를 가지고 법당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갔다 한 것은
자기의 견해를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예상대로 석상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무얼 하는가?”
“선사의 영골을 찾습니다.”
석상스님은 바로 점원스님의 핵심을 쳐부수어 말하였다.
“나의 ‘이 자리’는 큰 파도가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선사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이냐.”
점원스님이 이미 선사의 영골을 찾았는데
석상스님은 무엇 때문에 그처럼 말했을까?
‘이 자리’에 이르러서 “살아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는 뜻을
말 끝나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틀을 몽땅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대가 이러쿵저러쿵 헤아리며 찾고 생각한다면 알기 힘들 것이다.
점원스님이 “쓸데없이 애쓰네”라고 한 것은,
그가 깨친 뒤에 자연스럽게 기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오스님의 한조각 정수리 뼈[頂骨]가 황금빛처럼 빛났고,
두드리면 구리 소리처럼 맑았음을 알 수 있다.
설두스님이 한 “아이고, 아이고!”라는 착어에서 의도했던 귀결점은 양쪽에 있었다.
태원 부상좌가 “선사의 영골이 아직도 있다”고 한 것은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이 한 토막의 이야기들은 단박에 한쪽을 드러냈다.
말해보라, 어떤 것이 요체를 깨닫는 것이며, 어떤 것이 쓸데없이 애쓴 것인지를.
“한 곳을 뚫으면 천 곳 만 곳이 일시에 뚫린다”는 말을 듣지도 못하였는가?
“말로는 할 수 없지, 할 수 없고말고”라고 한 곳에서 그 의도를 꿰뚫을 수 있다면
바로 천하 사람의 혀끝을 꼼짝 못하게 꽉 틀어막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반드시 스스로 참구하여 스스로가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말고 시간을 아껴야 한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免馬有角, 牛羊無角. 絶毫絶氂, 如山如嶽. 黃金靈骨今猶在, 白浪滔天何處著.
無處著, 隻履西歸曾失卻.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免馬有角,)
- (모든 것을) 싹 잘랐구나! 참으로 기특하구나.
소와 염소는 뿔이 없도다.(牛羊無角.)
- (모든 것을) 싹 잘랐구나! 어떻게 생겼을까?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나는 못 속여!)
가는 털도 끊겨서(絶毫絶氂,)
-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하다. 그대는 어디를 더듬거리냐!
산과 같구나.(如山如嶽.)
-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느냐? 고연히 파도를 일으켰다.
생명의 깊숙한 곳을 아프게 찔렀구나.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黃金靈骨今猶在,)
- (주둥이질 못하게) 혀끝을 잘라버리고 목구멍을 막아버려라.
한쪽을 잘 드러내었다.
사람들이 ‘저놈’을 모를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어디에서 찾으랴.(白浪滔天何處著.)
- 한 번 용서해주었다.
자기 속에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갔군.
눈과 귀 속 어디에도 없지.
찾을 곳이 없음이여!(無處著,)
- 예상했던 대로이지. 그래도 약간 나은 편이군.
과연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다가 잃어버렸어라.(隻履西歸曾失卻.)
- 조상이 변변치 못하여 자손에게까지 누를 끼쳤다.
(원오스님은 탁자를) 치면서 말한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느냐?
[평창]
설두스님이 회통하여 설명을 잘하는 것으로 보아 운문스님의 자손답다.
일구 가운데 삼구(三句)의 겸추(鉗鎚)를 갖추고,
말하기 어려운 곳을 말해주고 열리지 않는 곳을 열어주면서 핵심을 송(頌)하였는데,
그는 곧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다”하였다.
말해보라, 토끼와 말이 어떻게 뿔이 있으며
소와 염소가 어떻게 해서 뿔이 없는가를.
앞의 말을 깨칠 수 있다면
설두스님이 사람을 지도하는 의도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사람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서
“말로는 할 수 없다는 그것이 바로 말함이며,
문구로써는 나타낼 수 없다는 그것이 바로 구절 있는 것이기 때문에,
토끼와 말은 뿔이 없는데도 뿔이 있다 말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있는데도 뿔이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옛사람은, 온갖 변화로써 이와 같은 신통을 나타낸 것이
그대들의 이와 같은 정령(精靈) 귀신 소굴을
타파해주기 위함인 줄을 몰랐던 것이라 하겠다.
이를 깨칠 수 있다면 이 깨쳤다는 말도 필요하지 않다.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나니,
가는 털도 끊겨서 산과 같다”는 네 구절[四句]의 송은 마니보주(摩尼寶珠)와도 같은데,
설두스님은 이를 통째로 그대 앞에 토해내 버린 것이다.
맨 끝에는 모두가 죄인의 자백서에 따라서 죄를 다스린 것이다.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어느 곳에서 찾으랴”라는 것은,
석상스님과 태원 부상좌의 말을 노래한 것이다.
어째서 찾을 곳이 없을까?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다가 잃어버렸다”는 것은
신령한 거북이 자취를 남긴 것이니,
이는 설두스님이 몸을 뒤재켜 사람을 지도한 곳이다.
옛사람은 “활구를 참구해야지 사구를 참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미 잃어버렸는데 저들 모두는
무엇 때문에 서로가 다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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