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禪家龜鑑

서산대사 '선가귀감'에서 수행자의 지침 간략 정리

경호... 2011. 9. 2. 01:39

신비한 진언(眞言)을 외우는 것은, 현세에 지은 행위의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가 쉬워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보는 지워버리기 어려우므로 신비한 힘을 빌리기 위한 것이다.


수행하는 도인은 그 환경에 거슬리므로 악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방해하는 마가 드세다"고 한 것이다.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악마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온갖 시비와 분별에 움직이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이면 악마가 아무리 많은 재주를 부려도 마치 칼로 물을 베거나, 광명(光明)을 입으로 부는 격이 될 것이다. 옛말에 "벽이 갈라져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악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밖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이고,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이고,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바른 정법 가운데에서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무심(無心)한 것이 불도이고, 분별하는 것이 악마의 짓이다. 악마의 일이란 허망한 꿈속의 일인데 더 길게 말할 것이 무엇이랴. 마음을 밝히는 공부를 한 단계라도 이루었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죽어서 눈을 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적인 행위는 어리석은 무명(無明)이고, 선정(禪定)은 밝은 지혜이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