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나 늙으면

경호... 2008. 8. 21. 15:04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 하나 ∼ 두울 ∼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 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뜰 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 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 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매일 눈을 떴을 때 
 너를 볼 수 있길 바래...
 ~~첨밀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