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New Age,연주곡

Ballade Pour Adeline

경호... 2008. 8. 13. 16:21

 

Ballade Pour Adeline

 

Episode

서로 너무도 사랑했던 아름다운 두 연인이 있었다. 어느 날 남자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고, 불행히도 그는 전쟁터에서 그만 팔 한쪽과 다리 한쪽을 잃고 말았다. 그런 모습으로 그녀 곁에 머물 수 없었던 그는 말없이 그녀 곁을 떠나 간다.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깊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의 슬픔은 너무나 컸다. 잔인한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만 가고... 어느 날 고향을 떠나 있던 남자는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결혼식이 열리는 교회로 간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니 지금까지도 가슴 아프게 사랑하는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결혼식에 도착한 그는 그만.. 그녀의.... 그녀의 곁에는 두 팔도, 두 다리 마저도 없는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때서야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아프게 했던가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그녀는 남자의 건강하고 완전한 몸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남자는 그녀를 위해 눈물속에서 작곡을 한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사랑하는 한 여인을 위해.. 한 남자가 바친 아름다운 곡이다.

Richard Clayderman,  1953 ~

프랑스 파리 태생인 클레이더만은 78년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로 데뷔 후 26년간 800여 곡 이상을 발표하고 70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면서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브라이언 아담스", "엘튼 존" 등 팝스타들의 곡을 경음악으로 연주했고, 팝과 클래식의 선율을 조화시킨 로맨틱한 곡들을 선보이고 있다. 파리에서 피아노 교사의 아들로 태오난 필리페 페이지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아버지가 다른 학생을 가르치는 모습을 어깨너 머로 보며 서계적인 팝 아티스트로서의 역사를 시작한다. 할아버지에게서 낡은 피아노를 선물 받은 여섯 살 � 이미 주변 사람들은 그가 모국 어인 프랑스어보다 피아노를 통해 말하는 것에 훨씬 능통한 것을 보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피아노 콩쿨에서 입상한 16세가 되자, 그는 이내 클라식 피아노로 표현할수 있는 감성의 한계를 느끼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 과 락그룹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더 이상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이면 프랑스 음악을 리드하는 이들과 벗삼아 연주하는 생활을 계속한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시절 음악을 함계 하던 전우들 미셀 사르두,조니 할리데이 등 의 피아노 세션을 시작 하면서 클레이더만 신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스타가 되기 보다는 친구들과 즐겁게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던 그에게 다가온 드라마틱한 변화는 1976년 델핀 음반사를 이끌던 올리비애 투생과 올드 샌빌에게 오디션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미 성공한 프로듀서였던 폴 드 센빌은 그의 딸 아드린느에게 바치는 곡을 완성하고 이를 연주해 줄 피아니스트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23살 의 클레이더먼은 그 특별한 피아니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아드린느에게 바치는 발라드는 유럽을 비롯, 남미, 일본, 호주 등에서 예상을 뒤엎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공을 거두고 2천 2백만장의 앨 범 판매기록을 세웠다. 1978년 이래로 클레이더만은 국제적인 팝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과 캐리어는 그 찬란한 빛을 발해,전 세계각국의 피 아노를 사랑하는 이들의 갈증을 채워주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클레이더만은 63개의 음반 플래티넘을 따냈으며 253개의 셰계적인 골드레코드를 기록하고 있다.

800곡이상을 레코딩한 그를 두고 독일의 한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리차드는 베토벤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피아노를 대중화시킨 아티스트이다." 그는 클래식과 팝을 조화시켜 트레이드 마크인 뉴로맨틱 "NEW ROMANTIC"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리차드는 "나는 라이브콘서트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청중을 접할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차분한 그가 무대 위에 올라서면 돌변하여 오케스트라와 혼연일체가 되어 각기 다른 템포와 리듬, 스티알로 모든 종류의 감정을 자아낸다. 그는 1년중 250일 정도를 프랑스를 떠나 해외 에서 200회의 연주회를 가지지만 대단히 가정적인 사람으로 가끔씩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있어서 가족은 너무나 소중하다. 나의 어머 니, 나의 아내 크리스틴, 나의 딸 마우드 그리고 나의 아들 피트는 나의 음악세계와는 별개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삶의 목적이다."

그의 음악은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전개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의 가슴을 사로 잡았던 그의 연주는 당시 뉴웨이브가 범람하던 시기 에 음악의 아름다움과 낭만 그리고 멋을 전해주어 호평을 받았다. 피아노 연주는 이미 오랜 세월동안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 친숙하게 우리 주위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에는 조지윈스턴의 피아노 연주가 인기 를 누리고 있지만 리차드의 서정적인 감수성에 초첨을 맞춘 새로운 연주스타일을 공개하여 단숨에 음악팬들을 이끌었으며,특히, 서정적인 선 율을 좋아하는 국내 팬들로 부터 폭팔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80년대 중반, 전세계의 음악계는 록사운드가 주류를 이루었고 영국에서는 뉴 웨이브 사운드를 표방하는 젊은 인기그룹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 었다.

그러나 당시감미로운 작품들을 많이 탄생시켰던 작곡가이자 가수인 올리비에 투생과 리차드클레이더만은 의기투합하여 감상하기에 부담감이 없는 이지리스닝 (Easy Listening) 계열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셰계적인 명성과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 후 리차드는 투생과 함께 방랑하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으로 만든 Souvenier D'enfance를 비롯하여 역시 달콤한 피아노의 속삭임 이 담긴 Les Fleurs Savages, 조율이 잘된 음의 날개짓이 느껴지는 Au Bord De La Rivier, 멜로디의 공간이동을 차분하게 전개하여 주는 Lyphard Melodie등을 히트시켜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평까지 획득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까지의 그의 앨범판매는 꾸준하게 계속되고 있으며 사랑,연인들을 소재로한 테마앨범이 공개되기도 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우리나라에서 89, 90, 96년 세번의 내한 공연을 치루면서 매번 매진사태를 일으키며 특별히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을 찾아 끊임없는 국제투어을 가지고 있다.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성공을 거둔 그의 국제투어는 거의 세계 전지역을 망라하고 있다..

음원출처:http://www.chejubase.co.kr

이미지출처:http://cfs9.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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