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대하드라마 ‘주몽’이 인기를 끌면서 도입부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시절에 만든 ‘3호 봉황국새’에 금이 갔다는 감사원의 발표 이후 국민들이 차기 국새의 인뉴(손잡이)에 이 ‘삼족오’를 새기자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럽게 문화계의 화두로 떠오른 문화상징 ‘삼족오’. 과연 ‘삼족오’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해 동이족의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상징이지만,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에 비해 일반인들의 이해가 지극히 낮은 게 사실이다. 심지어 학자들조차 ‘삼족오’에 대해 ‘세 발 달린 까마귀’라는 터무니없는 해석을 해놓고 있다. 그런데 고대 문헌을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은 ‘삼족오’라고만 기술했지, 학자들이 규정하듯이 ‘세 발 달린 까마귀’라고 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족오’의 ‘烏’를 ‘까마귀 오’로 오독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삼족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먼저 이 ‘烏’의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烏’는 옥편을 찾아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까마귀’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검다’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오골계(烏骨鷄)’, ‘오죽(烏竹)’, ‘오석(烏石)’, ‘오사(烏蛇)’, ‘오옥(烏玉)’, ‘오수정(烏水晶)’, ‘오동(烏銅)’, ‘오금(烏金)’ 등을 이야기할 때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힌다.
‘삼족오(三足烏)’의 ‘오(烏)’도 마찬가지다.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어야 삼족오가 지닌 상징성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4 「고구려본기 2 太武神王條」 에 보면 ‘烏者黑也’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도 삼족오의 ‘오’가 ‘검을 오’임을 뒷받침한다.
삼족오를 이처럼 까마귀로 읽지 않고 ‘검을 오’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이 바로 태양의 흑점과의 관련성이다. 고대인들은 흑점이 태양의 광채가 응어리진 것으로 보고 양(陽)을 상징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에서 흑색은 오행(五行)의 ‘수(水)’에 해당하고 역괘(易卦)로는 감(坎)이기 때문에 ‘험(險)’을 상징한다. 고대인들은 태양의 흑점 중 그 중앙에 가장 검은 본영(本影)이 세 발 달린 검은 새의 생김새와 같다고 해서 ‘삼족오(三足烏)’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삼족오’의 ‘오’가 ‘검은 새’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근거다. 마치 달(月)에 두꺼비와 옥토끼가 산다고 믿은 것과 같은 이치다.
예술가들에 따르면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할 경우 어떠한 사물도 검게 보인다. 이 때문에 ‘삼족오’를 ‘세 발 달린 검은 새’로 보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 결정적인 증거는 ‘삼족오(三足烏)’가 ‘태양(太陽)’의 이칭(異稱)으로 양(陽)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도 ‘삼족오’가 1)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해 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라고 잘못 해석하고 있으면서도 2)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고 해서 삼족오가 바로 태양을 상징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검을 오(烏)’가 들어가면 ‘태양’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많다. ‘일오(日烏)’, ‘금오(金烏)’, ‘직오(織烏)’, ‘현오(玄烏)’, ‘준오(?烏)’가 그렇다. 특히 이 가운데 ‘금오(金烏)’와 ‘준오(?烏)’는 ‘삼족오(三足烏)’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태양 안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민족이 바로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다.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2호 고분, 개마총,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5호묘, 중국 요녕성 조양(朝陽)지구 원태자벽화묘(袁台子壁畵墓) 등에 아름다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문헌 기록으로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 중 “甲寅七年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갑인 7년(B.C.1987년) 세 발 달린 검은 새(三足烏)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가 보인다. 하나같이 문헌에는 ‘三足烏’로만 기록되어 있을 뿐인데, 무지한 후손들이 ‘까마귀’로 달갑지 않게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상징 ‘삼족오’를 이야기할 때면 대개 학자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삼족오’가 등장한다며 굳이 우리의 문화상징으로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먼저 중국의 문헌에 등장하는 ‘삼족오’부터 따져 보자. 먼 옛날 중국대륙은 원래 동이(東夷)와 지나(枝那)의 결투의 장이었다. 동이가 중원을 차지할 때는 지나가 변방에 머물렀고, 지나가 중원을 차지하면 동이가 중원에서 점차 변방으로 후퇴했다. 그래서 중원의 주인이 한번은 동이, 한번은 지나로 뒤바뀌면서 역사가 흘러왔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로 평가받는 진의 시황제도 동이족의 한 분파임을 중국의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저우스펀은 저서 『중국 역사 11강』에서 《진은 역사가 유구한 씨족으로 동이족의 한 갈래에 속하는데, 황하 하류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 조상은 순(舜)임금 밑에서 날짐승을 길렀고, 그 때문에 영(?)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리우웨이는 저서 『중국문명박물관-진한시대』에서 《진나라 사람은 동이족의 한 분파이며, 황하 하류 동해 바닷가에서 유목 생활을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고문헌들이 지금 현재 중국의 땅에 남아 있다고 해서 모두 중국의 기록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 ‘삼족오’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문헌으로 알 수 없다면 그 다음은 유물이나 유적으로 따져 보면 된다. 역사학자들은 ‘삼족오’가 고구려의 문화상징이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호남성 장사시(長沙市) ‘마왕퇴(馬王堆) 1호 한묘(漢墓)’를 든다. 그런데 무덤 주인의 승천을 기원하는 주제인 이 그림에는 신화와 전설을 삽입하여 내용이 풍부하고 구도가 정교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발 달린 까마귀’만 등장하고 있을 뿐 ‘삼족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역사학자들은 ‘삼족오’를 ‘까마귀’라고 단정을 한 나머지 ‘세 발 달린 검은 새’ 삼족오와 ‘두 발 달린 까마귀’를 마구 혼동하고 있다. ‘마왕퇴 1호 한묘’의 그림이 삼족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 속에 실재하는 평범한 두 발 달린 까마귀임은 그 머리에 볏이 없음에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일본 축구대표 팀의 문장(紋章)으로 삼족오가 사용되고 있다는 데 문제는 간단하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문장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 문장은 말만 삼족오이지, 진짜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 머리에는 볏이 없으며, 한 발은 축구공을, 다른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일본에서 길조(吉鳥)로서 숭배 받는 평범한 까마귀인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의 머리에는 반드시 볏이 그려져 있다. 삼족오의 볏(一)이 물이나 시원, 즉 태초의 생명성을 상징한다면, 날개(二)는 화합, 부부, 상대적 균형, 따뜻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발(三)은 자연의 생명성(싹), 순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초목, 생장-소멸-순환, 시공, 힘, 완성 등을 상징한다.
게다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삼족오는 왼쪽에는 용을, 오른쪽에는 봉황을 거느리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시기적으로 볼 때 고구려가 당나라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인데, 만일 삼족오가 중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상징이라면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고구려가 중국의 상징을 차용해 사용했을 리 없다.
삼족오가 까마귀가 아닌 이상 현실 속의 두 발 달린 까마귀를 옮겨놓은 중국의 ‘마왕퇴 1호 한묘’나 세 발 달린 까마귀를 문장으로 사용하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문장은 삼족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삼족오(三足烏)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아니라 ‘세 발 달린 태양새’로 새롭게 해석함이 타당하다.
태양새 삼족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삼신 신앙으로 발전되었다. 환인·환웅·단군의 삼신 신앙으로 발전됐다가 민간에서 삼신 할미 사상으로 그 성격이 변해왔다. 연구를 게을리하는 학자들 탓에 우리의 신성한 태양새 삼족오는 흉조(凶兆)로 여기는 까마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삼족오의 이름 앞에 길조(吉兆)를 의미하는 당당한 그 이름 ‘태양새’를 붙여주자.
【노정용 파이낸셜뉴스 문화부장】
■사진설명
사진1) 옥새전각장 민홍규 作 '태양새 삼족오 국새'. 국새의 인뉴(손잡이)에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대표하는 태양새 삼족오를 새김으로써 우리나라의 國運이 한없이 뻗어나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2) 옥새전각장 민홍규 作 '태양새 삼족오 문장'. 두 발 달린 까마귀에 없는 '볏'이 선명해 삼족오가 태양새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