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마지막을위한이야기

이 世上은 참고 견뎌 내야하는 世上입니다/월호스님

경호... 2007. 11. 7. 21:00

최근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과 관련하여 '죽음과 자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커지고 있습니다.유명인의 자살에 동조하여 자신의 자실을 합리화시켜려 하거나, 죽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되는 '베르테르 현상'이 그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택했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도 생기지만, 이는 온당치 못한 결정이기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미물 같은 생명체도 소중히 여겨야하는 마당에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이며 적극적인 살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니간의 몸을  받아 나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업이 있기에 우리는 여기에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업을  가꾸어, 삶을 한층 업그레이드(upgrade)시키고자 우리는 여기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삶이 힘들거나 버겁다고 해서 쉽게 포기한다면 오히려 다운그레이드(down grade)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 三生을 記憶한 사람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본시 사람이었는데 죽어서는 개로 還生했습니다. 비록 몸은 개의 몸뚱이를 받았지만, 아직 사람의 意識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가에 있는 똥을 먹기 시작하면서 비애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런 몸뚱이로 살아서 무엇 하나 싶어 다리 위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하였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가니, " 개의 업보를 다 갚기도 전에 자살을 햇으니 저 놈을 다시 돌려보내도록 하라" 고 하면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시겠습니까. 눈을 떠보니 그는 돼지우리 속에서 돼지새끼로 태어나 있었습니다. 그나마 자유롭게 돌아다 니던 개의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한 돼지는 다시 스스로 우리에 머리를 들이받고 자실했습니다.

다시 염라대왕에게서 질책을 받고 태어나니, 이번에는 더욱 흉측한 뱁의 몸이었습니다. 할 수없이 더 이상 죽기를 포기한 그는 뱀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길을 건너다가 때마침 지나던 수레에 깔려 죽었습니다. 비로소 세 번의 업이 다한 후에야 그는 다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이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업보 입니다. 과거에 심어놓은 씨앗 그대로 현재에 열매를 맺은 것이며, 현재에 심고있는 그대로 미래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변을 한탄 할 일도 아니고, 남을 원망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世上事는 因緣法則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굴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因은 직접적인 원인이며, 緣은 간접적인 원인 입니다. 내 마음가짐이나 내 노력이 因입니다.그리고 나의 배경이나 주변 환경이 緣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연(緣)은 바로 과거의 인(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그럴만한 인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연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연을 탓하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일단 주어진 연을 감수 하면서 지금의 인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삶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입니다. 여기 또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유복하게 살던 어떤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지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찌나 복이 없는지 동냥을 다니면 밥은커녕 몽둥이찜질을 다하거나 개에개 물리기 일쑤였습니다. 할 수 어벗이 남의 집 쓰레기 더미를 뛰지며 먹을 것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비참하게 살아갈 필요가 없지, 차라리 죽는 것이 백번 낫고말고.' 그는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목을 매려는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쓰레기 열 포대를 먹을 업을 지은 놈이 어찌 세 포대 밖에 먹지 않고 죽으려 하느냐!" 이 말에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답니다. '어차피 열 포대를 먹을 운명이라면 빨리 찾아먹자.'

그날부터 그는 조금도 운명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채 한 포대 분을 찾아먹기도 전에 우연히 청년 시절에 의형제를 맺었던 장자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지난날처럼 잘 살게 되었답니다.

 

비록 쓰레기를 뒤져서 먹고 살망정 운명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지신의 업보를 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다보니 좋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는 죽음만이 해결책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창조하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업은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가 나머지 여섯 포대의 업을 녹여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괴롭더라도 '기꺼지 맏겠다' 는 마음가짐으로 참고 견디면 나쁜 업은 더 빨리 소멸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과거에 아무리 큰 악업을 지었더라도 참고 견디어 나가다보면 그 것은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즐거움이 한때인 것처럼 괴로움도 한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사바세계입니다. 사바란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바세계에 온 것은 그럴 만한 인연을 지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극락정토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매사 자신의 뜻재로 하지 못해서 안달하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죄업을 지어 감방에 들어간 사람이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잆다고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만 더욱 괴로울 뿐입니다. 그러니 과거에 이미 지어놓은 업보는 달게 받되, 미래에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잇도록 현재의 인(因)을 새롭게 지어나가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되 조급한 마음으로 속히 결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서도 안 됩니다. 그릇에 물이 다득 담겨야 비로소 넘치는 것처럼, 선업도 악업도 그 결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악행을 저질렇다고 해서 금방 처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봄에 씨앗을 심으면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즉각적인 대가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선행을  행한다면 반드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탐스런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