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도둑/류시화

경호... 2007. 11. 3. 18:27

도둑

시 : 류시화

 

도둑이 온다면

큰 길로야 오지 않겠지

그가 온다면 내 집 뒤 작은 오솔길

풀 몇 줄기 쓰러뜨리며 오겠지

그러면 나는 불을 끄고 잠든 척 해야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하면서

어떤 새가 밤의 풀섶에서

새끼를 치는 것이려니 하면서

 

도둑이 온다면

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오겠지

그가 온다면 내 깊고 깊은 잠

꿈의 강을 건너 오겠지

그러면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든 척 해야지

잠든 척 하는 자를 누가 깨울 수 있으랴

그는 이미 깨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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