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안개 속에 숨다/류시화

경호... 2007. 10. 23. 17:44

안개 속에 숨다

시 :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다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곁에 머무를 수 없는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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