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醬), 일년을 준비하는 지혜와 정성
‘장醬’ 이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맛을 낼 때 조미료로 사용되는 식품이다. 우리나라의 장은 콩으로 만든‘두장豆醬’으로 중국의 문헌인『삼국지 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 (290년경)』에‘고구려 사람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표기되어있어 우리민족이 일찍부터 장담그기, 술빚기 등 발효식품을 잘 만들어 먹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에 신문왕神文王이 부인을 맞이하는 납폐 품목에‘장醬’ 과‘시 : 메주’를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고려사高麗史』「식화지食貨支」에 1018년(현종 9)과 1052년(문종 6)에 굶주린 백성에게 구황작물로 곡식과 함께 장을 지급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장은 우리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음식 감칠맛의 숨은비밀 ‘콩’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말처럼 한국의 음식솜씨는 장맛으로 평가된다. 흔히 한국음식은 구수하고 감칠맛이 나며 깊은 맛이 특징이다. 이는 오랜 시간과 정성의 숨결이 느껴지는 발효의 맛 때문이다. 농경사회인 한국에서는‘벼’와 함께‘콩’이 많이 재배되었고 콩을 주재료로 한 다양한 장류가 발달하게 되었다.
쌀 문화권인 한국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채소류를 부식으로 한 식단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고기 대신 콩으로 보충하였고, 대표적인 발효음식인 장류를 탄생시켰다.
우리나라 고유의 간장과 된장은 콩과 소금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다. 먼저 간장, 된장의 주재료는 콩으로 만든 메주다. 메주를 쑬때는 가을에 수확되는 햇콩으로 알이 굵고 잘 여물어 벌레먹지 않은 것을 선택하며 푹삶아 쪄서 콩의 무름성을 좋게 하여 발효성을 높였다. 한편 좋은 메주는 겉은 단단하고 속은 말랑하며 곰팡이는 흰색, 노란색을 띠어야 한다. 검은색이나 푸른빛이 도는 것은 잡균이 번식한 것이므로 장을 담그면 쓰다. 따라서 메주색은 붉은빛이 도는 황색, 밝은 갈색이 나게 뜬 것이 좋다.
장류 조리방법의 특징 및 변천사
우리나라 전통장은 초기에는 간장과 된장이 섞인 걸쭉한 장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되었으며, 장독에 용수를 박아 용수(간장이나 술 등을 거를 때 쓰는 용구) 안에 고이는 즙액이 간장이고 건더기는 된장이었다. 고려시대로 와서 간장의 분리기술이 발달되면서 간장을 장즙醬汁이라고 하였다.
간장은 된장에서 추출된 용액으로 여러 해를 묵힐수록 빛깔이 짙어지고 감칠맛이 도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장류의 맛은 조선시대에 뿌리를 내렸다.‘간’은 소금기의 짠맛salty을 의미하고, 된장은‘되다hard’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중기에 고추가 유입되면서 1700년대『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든 고추장의 제조법인 만초장蠻椒醬이 기록되었으며 고추장, 고춧가루가 음식의 조미료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각종 장류는 음식종류에 따라 가려서 간을 맞추는 것이 일종의 음식비법이 되었다.
햇간장은 주로 맑은 장국에 쓰고, 묵은 진간장은 무침음식이나 조림음식에 쓴다. 맛있는 고추장 조림음식엔 햇고추장을, 장아찌에는 묵은 고추장을 써서 음식의 제 맛을 낸다.
묵은 된장으로는 된장찌개, 햇 된장은 쌈장으로 만들어 음식의 맛을 더한다. 장류는 음식의 맛을 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육류와 만나 장조림을 만들고, 다양한 채소와 만나 장아찌를 만든다. 김치와 장류가 만나면 장김치가 되고, 떡과 만나서 떡을 만들기도 한다.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장醬을 담그면 시어진다?
조선 시대 선조 30년,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선조 임금이 함경도로 피란을 갈 때의 일이다. 국난을 당해 임금이 피란을 가게 되면 반드시 ‘합장사合醬使’ 라는 장 을 만드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을 피란지에 먼저 보내 장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에 선조가 장을 맡아 관리하는 합장사合醬使 라는 벼슬에 장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신申씨 성을 가진 ‘신집’이라는 사람을 임명하려 했으나 조정 대신들이 모두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합장 사로 임명된 이의 성씨인 신申과 장 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신辛일의 음이 같고, 또 신맛을 뜻하는 한자‘산酸’과 음이 비슷해 장이 시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장맛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신씨 성은‘음식이 시다, 장이 시다, 장이 시어서 못 먹게 된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합장사에는 부적절하다고 하였다.
그 이후 신辛일에는 장 담그기를 삼가고, 신申씨 성을 가진 집안에서는 사돈이나 친지 집에서 장을 담가 오는 풍습이 전래되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할 징조’라고 여겨 장맛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 장은 모든 음식의 간을 맞추는 중요한 양념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장을 담그는 과정에서 잘못하거나 관리를 자칫 소홀히 하면 장맛이 시어져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시대에는 ‘합장사’ 라는 장을 담그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장醬 만들기에 정성을 다했다. 또한 궁중에서는‘장고마마’라 하여 장을 담당하는 상궁을 두어 장독을 간수할 정도로 장맛에 신경을 썼다. 궁중에서는 장을 담가서 두는 곳을 장고醬庫라고 하였는데, 장고의 책임자는 장을 담그는 것을 지휘하고 관리하며 장을 내어주는 직책을 가졌다.
오랜 세월과 정성을 담아 한해를 준비하는 장 담그기
정월에 하는 일 중 가장 큰 행사는 장 담그기이다. 발효음식이 발달한 우리 민족은 음식 맛은 장맛에서 비롯된다고 여겨 장맛을 중히 여겼다. 특히 집안의 장맛이 좋아야 가정이 길吉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장의 맛이 없으면 그 해에 큰 재앙이 온다고 할 만큼 장 담그기는 집안의 큰 연중행사 중 하나였다.
장독풍경을 보면, 장을 담고 나서도 장맛이 좋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독 속에 붉은고추, 대추 등을 넣거나 숯과 붉은 고추를 새끼에 엮고 금줄을 치고 청솔가지를 함께 매달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잡귀를 막는 수단으로 고추의 붉은색, 청솔가지의 청색을 싫어하는 잡귀가 장독에 범접하지 못하게 하여 장맛이 변하지 않게 하려는 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버선본을 종이로 오려 독에 거꾸로 붙였는데 이는 장맛이 변했더라도 다시 제 맛으로 돌아오라고 붙이는 의미와 장을 더럽히는 귀신이 버선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장독대 근처에는 붉은 색깔의 맨드라미, 봉선화를 심어 장맛을 해치는 잡귀雜鬼를 막고자 하였다. 불을 연상시키는 숯도 붉고, 고추도 붉고, 붉은 물을 들이는 봉선화도 붉었으며 맨드라미까지 붉었다. 붉은색은 양陽의색이므로 장맛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독대 근처는 붉은색으로 가득하였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년)』의 장醬의 기록을 보면 ‘장은 백미百味의 으뜸이니 인간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좋은 찬과 아름다운 고기가 있다 할지라도 좋고 맛있는 찬을 마련하기 어렵고, 특히 가난한 자는 고기를 얻기 어렵더라도 아름다운 장이 있으면 밥반찬이 가히 염려 없으니 가장된 자는 반드시 먼저 장 담그기를 유념할 것이며 해를 묵혀 가며 장을 먹을 수 있도록 마련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니라’한 바 있다.
이렇듯 장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 어떤 음식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전통 장으로 맛깔스런 한국음식을 만들어 우리의 건강도 지키고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아보길 권한다.
글 · 사진. 윤숙자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떡박물관 관장)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 조선
[우리의 맛 장(醬)] 장 관리법
◈ 장독 관리
장을 담그고 사흘쯤은 장독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햇볕이 좋은 날 아침에 뚜껑을 열어 하루종일 볕을 쬐고 저녁에 덮는다. 항아리 입구는 망사로 씌워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한다. 특히 비를 맞으면 장맛이 변하므로 흐린 날에는 장독 뚜껑을 열지 않는 것이 좋다.
장독대 청소를 한다며 호스를 들이대고 물을 뿌리는 경우가 많은데 장은 빗물이나 물이 들어가면 그 맛이 변한다. 옛날에는 '가시 난다'고했다. 즉 장 맛이 변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장독은 반드시 행주를 꼭 짜서 항아리 주변을 닦아 내는 방법으로 청소해야 한다.
장독이 기울어지면 물이 빈 편으로 백태가 끼게 되므로 장독이 기울어지지 않게 두어야 한다. 청소하면서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고 장독 주변은 늘 깨끗이 닦는다. 간장에 곰팡이가 피면 냄새가 고약해진다.
특히 여름철 장 관리를 잘못하면 곰팡이가 피기 쉬운데 이럴 때는 위에 떠 있는 곰팡이를 걷어 내고 소금을 넣고 팔팔 끓인다. 달인 간장을 장독에 다시 부을 때는 먼저 장독을 소주로 헹궈 살균한 다음 햇볕에 바싹 말려서 사용한다.
장독에 벌레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항아리 입에 망사를 덮고 고무줄이나 끈으로 묶어 놓고 망사 덮개의 한가운데 굵은 소금을 한 줌 올려놓는다.
◈ 된장 관리
된장을 뜰 때는 반드시 마른 숟가락이나 주걱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양만 떠내고 빈자리는 채워서 꾹꾹 누르고 위를 편편하게 다지듯 하여 둔다.
여름철에는 망사나 거즈로 장독 입구를 덮어두고 고무줄로 묶어 두어 파리나 다른 벌레들의 접근을 막는다. 된장의 윗면에 랩이나 비닐봉지를 딱 들러붙게 덮어두면 된장의 색이나 맛이 변하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다.
된장에 물이 고이고 곰팡이가 생겼을 때는 먼저 곰팡이와 물을 떠낸 후 큰 그릇에 쏟아서 곱게 빻은 메주가루를 더운물에 버무려서 섞고 소금간도 약간 세게 맞춘다. 항아리는 씻어서 말렸다가 다시 버무린 된장을 담고 위를 잘 눌러 둔다.
♧ 묵은 된장은 이렇게 ♧
해묵은 된장의 맛이 나빠져서 곤란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멸치대가리나 고추씨를 바싹 말린 다음 빻아 가루로 만들어서 된장 속에 군데군데 넣는다. 1주일쯤 지나면 빛깔도 좋아지고 맛도 몰라보게 달라져 새 된장을 먹는 것 같다.
◈ 고추장 관리
간장이나 된장은 담근 후 바로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3∼4일쯤 후에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해 볕을 쬐기 시작하지만, 고추장은 하룻밤 김이 나가게 두었다가 다음날 뚜껑을 덮는다. 고추장은 익힌 재료를 바로 버무린 것이어서 곧 바로 덮어버리면 더운 김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습기가 찬다.
고추장 항아리는 되도록 입이 좁은 것을 택한다. 고추장이 공기에 노출되면 색이 검어지고 맛도 나빠진다. 또는 흰색의 "곱"이라고 하는 산막효모가 번식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을 때에는 뚜껑을 열어 햇볕을 쬐면 이를 방지할 수 있다.
고추장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넘칠 때는 고추장을 전부 솥에 쏟아 붓고 뭉근한 불에서 달이고 소금을 약간 더 넣어 주면 된다. 또는 고추장을 쏟고 더운 식혜를 넣어 불에 올려놓고 서서히 끓이면 맛을 되살릴 수 있다.
고추장은 단지에 담은 후에도 얼마 동안은 계속 저어 주는 것이 잘 익게 하는 방법이며, 끓어오르는 것을 방지하고 간도 고루 맞출 수 있는 비결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고추장에 곰팡이가 피기 쉬우므로 망사나 거즈로 항아리를 덮어서 가끔 햇볕을 쬐주고 장마철에는 반드시 웃소금을 얹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주의하여 관리한다.
[제공=농촌진흥청]
[리빙 앤 조이] 장(醬) 맛의 비밀과 과학
소금 성분 빼면 가장 완벽한 식품
된장·고추장에 함암효과
콜레스테롤 감소시키고
혈압·혈관질환에도 좋아
『 우리나라에서 간장ㆍ된장ㆍ고추장은 식재료나 조미료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먹을 것이 부족해 보릿고개를 근근히 넘기던 시절, 간장ㆍ된장ㆍ고추장은 서양으로 치면 소스(Source)나 반찬 이상의 중요한 식자재였다.
쌀이나 보리가 없어도 산에서 캐어 온 푸성귀만 있으면 장으로 비벼 반찬을 했고, 그렇게 만든 음식은 그 자체로도 식량이 됐다.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오늘 날에도 장(醬)류는 오히려 그 존재 가치를 더 하고 있다.
특히 한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음식은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고, 그 근저에는 한국의 우수한 장류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최근 고추장에 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입 소문을 타고 고추장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기도 했다.
이렇듯 그 깊고 오묘한 맛에 더 해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갖가지 효능이 밝혀지면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은 형제지간이다. 셋 다 콩과 소금물을 재료로 ‘한 집’에서 출발, 발효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독으로 분가해 간장과 된장, 고추장으로 이름 붙는다.
한국인이 간장과 된장을 먹은 것은 최소 삼국 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297년)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장 담그기에 뛰어나다”는 기록과 함께 우리 장 냄새를 ‘고려취(高麗臭)’라고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왜 한국인은 그 옛날부터 장을 담가 먹었을까. 대답은 콩에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예전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 지방 및 동북 아시아는 콩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지역에서 가장 흔한 작물을 이용해 오랫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장류가 탄생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초기의 장은 된장과 간장이 분리되지 않은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한국의 생활 방식이 농경 문화에 기초했던 것도 장류 탄생의 한 이유다. 김중필 ㈜대상 식품연구소 개발1팀장은 “우리 민족이 한 곳에 머무르며 살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발효 및 숙성시켜야 하는 장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면서 “반면 유목민족들은 하루 이틀만 발효시키면 완성되는 요구르트 등을 만들어 먹었다”고 설명했다.
한 때 소금 과잉 섭취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던 장류가 웰빙식품으로 조명 받고 있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간장, 고추장, 된장은 우리 몸에 어떻게 좋을까.
이번 주 리빙앤조이는 매일 무심하게 먹고 지나치는 우리 전래의 먹거리, 장에 관한 보고서다. 』
■ 깊은 맛의 생명은 콩과 균
세계 각국의 발효음식이 대부분 그렇지만, 전통 장류의 맛 또한 몇 마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하고 깊은 맛을 가졌다. 간장과 된장의 맛을 가장 가깝게 설명하는 우리말이 ‘감칠맛’ ‘구수한 맛’ 정도다.
이런 깊은 맛은 콩과 균이 만들어 낸다. 콩의 단백질이 균에 의해 발효하면서 아미노산이 나오는데 이것이 오묘한 맛을 낸다. 숙성을 시킬수록 아미노산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묵은 장 일수록 퀴퀴한 고린내는 심하나 감칠맛은 더 난다.
그러나 ‘묵어야 장맛’이라는 옛말은 요즘 소비자들에게는 그저 옛말에 불과하다. 김 팀장은 “집에서 담그는 집된장을 제품화한 적이 있었으나 소비자들은 개량 된장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짜고 구린내가 심한 장류보다는 좀 더 가벼운 맛을 요즘 소비자들이 원한다는 뜻이다.
콩을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사들은 바로 세균과 곰팡이균이다. 메주를 ‘띄운다’는 과정부터가 균에 의한 발효를 의미한다.
모두가 집에서 장을 담가 먹던 시절에는 세균에 의한 발효를 자연의 손에 맡겼지만 요즘 장류를 만드는 기업들은 이를 철저하게 통제한다. 어떤 균으로 발효시켰을 때 안전하고 맛이 좋은 지를 연구한 결과에 따라 보통 몇 가지 균주를 콩에 인위적으로 접종시켜 콩을 발효시키는 식이다. 자연의 섭리에 발효를 맡겨 해마다 고장마다 장 맛이 조금씩 다르던 옛 문화에 비하면 다소 정감이 덜 가는 면이 있지만, 식품안전과 품질관리라는 현대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 된장과 간장의 영양학적 효능
된장은 끓인 뒤에도 항암효과가 살아있다.
쥐를 암에 걸리게 한 뒤 된장을 먹였더니 그렇지 않은 쥐 보다 암 조직의 무게가 최고 80%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한암예방협회의 ‘암예방 15개 수칙’ 가운데는 된장국을 매일 먹으라는 항목도 있다. 된장의 항암 효과는 국내외적으로 공인을 받는 추세이며, 된장은 항암효과외에 암세포 성장 억제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된장에 있는 히스타민-류신 아미노산은 두통을 경감시키고 혈압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또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혈관을 탄력 있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된장은 간 독성 지표인 아미노기 전이효소의 활성도를 떨어뜨려 간기능을 강화시키기도 하며, 해독작용, 골다공증 예방, 당뇨 개선, 심장병 및 뇌졸중 예방, 기미 주근깨 제거 등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메주를 원료로 한 고추장의 효능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고추장은 발효ㆍ숙성 기간이 길수록 암 예방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고추장 항돌연변이 항암효과
고추장은 된장, 간장에 비해 늦게 생겨났다.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유입됐기 때문이다. 고추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만초(蠻椒),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 왜초(倭椒) , 랄가(辣茄), 당초(唐椒)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지봉유설’(芝峰類說,1614년)에 따르면 “만초(蠻椒)는 일본을 거쳐 온 것으로서 ‘왜개자’라고도 한다”라는 문구가 있고, ‘성호사설’등에도 번초(蕃椒)는 일본에서 임진왜란 때 들어왔다고 기록돼 있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매콤 쌉싸름한 맛으로 유명한 순창고추장의 비결은 메주와 함께 섞는 쌀에 있다.
순창고추장은 메주를 띄우고, 찹쌀로 죽을 쒀서 숙성시키는데, 떡을 쪄서 하는 경우도 있고, 식혜 처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추장은 메주 띄우는 시기에 맞춰서 담그는게 보통인데 순창지방에서는 여름에 하기도 한다.
고추장도 된장이나 간장 못지않게 영양이 풍부한데 단백질, 지방, 비타민 B2, 비타민C , 카로틴 등과 같은 우리 몸에 유익한 영양성분이 많다.
또 고추장은 항돌연변이 및 항암효과가 있다. 이는 고추장이 생리 활성화와 항산화 물질 등을 함유하고 있는 메주와 찹쌀, 고춧가루 등의 기본 원료가 발효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capsaicin) 성분이 체지방을 연소시켜 비만방지 효과가 크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일본엔 왜간장이 없다
메주를 띄워 만든 간장을 양조간장이라고 부른다. 간장이 검은 이유는 당(糖)과 아미노산이 결합해 색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흔히들 왜간장, 조선간장 하는 식으로 간장을 구분하는데 이는 제조 방식의 차이다. 왜간장은 2차 대전 때 일본에서 개발됐다. 전선에 나선 군인에게 간장을 보급해야 하는데 전통 양조 방식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염산으로 산화시킨 뒤 가성소다로 중화시켜 3일만에 간장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 것이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와 ‘왜간장’으로 불렸고, 우리 전통 방식 간장이 상대적으로 ‘조선간장’이 됐다.
그러나 이제 일본에는 왜간장이 사실상 없다. 시판되는 간장의 95% 이상이 양조 간장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 중에는 왜간장 특유의 톡 쏘는 맛에 익숙한 사람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 염도를 낮춰라
김 팀장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 식품 중 가장 완벽한 게 전통 장류라고 본다”고 말했다. 단, 염분 과다 섭취에 대한 염려를 제외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전통 장류에 소금을 많이 넣는 이유는 잡균 번식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옛날 식일수록 염도가 높다.
대상은 염분 함류량을 간장 15%, 된장 10.5%, 고추장 6.5%으로 설계했다. 전통식 간장이 약 23%, 된장이 15% 이상의 염도인 것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때 이보다 염도를 더 낮춘 저염간장도 출시한 적이 있으나, 주부들이 외면했다. 어차피 요리에 간을 하려면 별도로 소금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세상에 밥도둑이라는 이름이 붙은 반찬들은 다 짜다”면서 “장류는 밥도둑이 아니라 조미료기 때문에 지나치게 짜야 할 이유가 없으며 앞으로는 염분 과다 섭취를 막는 쪽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최근 업게는 장류의 소금 함량을 무조건 떨어뜨리는 대신, 짠맛을 내는 대체 물질을 개발해 소금 대신 넣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잡고 있다.
■ 용도 많은 고추장 시장규모 1위
대상의 경우 연간 고추장 5만 톤, 된장과 간장은 각각 3만 톤을 생산한다. 매출은 고추장 1,000억 원, 된장과 간장이 각각 500, 500억 원 정도로, 장류 합계 2000억 원 수준.
CJ 해찬들은 전체 매출액은 대략 2,000억 원. 이 가운데 고추장이 1,000억 원, 된장, 쌈장이 600~700억원, 간장이 80억 원 ~ 100억 원 정도. 나머지는 주문자 상표로 생산되는 자잘한 제품의 매출이다. 생산량으로 보면 고추장이 연간 4만5,000톤, 된장ㆍ쌈장이 4만9,000톤, 간장이 7,200톤.
고추장의 생산량이 된장을 앞서는 것은 가정에서든 업소에서든 고추장이 훨씬 범용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된장은 국, 찌개용 등으로 용도가 제한되는데 비해 고추장은 찌개, 국 등은 물론이고 비빔밥, 탕, 볶음 등 사용 범위가 넓다는 얘기다.
한편 우리나라의 가정에서 대량 제조된 장류를 사 먹는 비율은 간장 90%, 된장 30%, 고추장은 50%다.
된장 완제품의 판매 비중이 낮은 이유는 지역 마다, 집안 마다 입맛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 직접 담가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밖에 과거에는 대형 업체에서 제조하는 된장 품질이 고추장에 비해 떨어진 탓도 있다.
한때 된장에서 피는 곰팡이에서 생성되는 발암물질 아플라톡신(Afflatoxin)의 유해성 여부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은 식약청으로부터 아플라톡신 검사를 철저히 받는데 반해 가정에서 만든 된장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김팀장은 “아플라톡신이 모든 된장에서 100% 검출된다는 것이 아니라 곰팡이 독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며“메주를 띄울 때 생성되는 아플라톡신은 숙성 과정서 대개 없어지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상 안전센터에서 전통 제조 방식으로 제조돼 유통되는 된장을 검사한 결과 재래 된장의 아플라톡신 함량이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식약청은 2007년부터 아플라톡신 허용 기준치를 만들어 적용할 예정이다.
● 장류 세계화의 과제
일본 기코만 간장 대륙마다 제조공장…우리도 '소스化' 서둘러야
간장과 된장은 김치와 함께 한국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세계화라는 면에서는 간장과 된장이 김치에 크게 뒤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장류 생산 업계에 따르면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전통 장류의 수출 물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시장은 일본이 가장 크고, 다음이 미국과 중국 순이다.
특히 일본에는 고추장이 가장 많이 나가는데, 절반은 교포들이 사 먹고 나머지 절반은 일본인이 사 먹는다. 일본에서 패스트푸드화에 성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비빔밥(일본인들은 비빈파라고 부름)에 고추장이 필수 양념으로 들어가는 것도 고추장 판매량 증가에 한 몫을 했다. 또한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최근 한국 음식의 제 맛을 내려면 한국산 고추장을 수입해서 써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상태다.
식문화 전문가들은 전통 장류를 세계화하기 위한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장을 활용한 세계적인 음식을 발굴하는 痼隔?둘째는 장을 세계적인 입맛으로 바꾸는 것이다.
장을 세계적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는 ‘소스화’가 중요하다. 실제로 최근의 요리가 갈수록 퓨전화 되면서 선진국일수록 세계 각국의 소스를 다양하게 이용한 음식이 많고, 특히 중국과 일본의 양념이 세계 소스 시장에서 최근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 전통 장을 기본으로 해 소스화에 성공한 것으로는 간장을 주재료로 한 불고기 양념이 대표적이다. 맵지 않고 달콤한 맛 때문에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고기 양념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콩을 이용한 간장과 된장(미소)을 먹는 일본은 장류의 세계화에서 한국에 비해 크게 앞서 있다.
가장 큰 계기는 일본 요리가 일찌감치 세계화 했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적인 음식이 된 생선초밥만 해도 간장없이는 먹을 수 없는 요리이며, 데리야키 소스 등 세계화된 일본식 양념 또한 간장이 들어간다.
김중필 대상 개발1팀장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간장 브랜드인 기코망의 경우 대륙마다 생산 공장이 있으며 일본 내 판매량 보다 글로벌 매출액이 더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전통 장류 중 세계화 잠재력이 큰 것은 된장과 고추장이다. 된장은 일본 된장과는 달리 묵직하고 깔끔한 맛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가고 있으며 고추장은 특유의 매운맛으로 어필하고 있다. 비빔밥 불고기 등 전통 음식이 글로벌화 되는 것도 장류의 세계 진출을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 장에 관한 궁금증 Q&A
왜간장은 속성 제조 방식, 일본서는 더이상 안 만들어
불과 20여년전 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이 된장을 비롯한 간장, 고추장을 집에서 담가 먹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라 식품업체들은 장류 제품을 경쟁적으로 출시, 젊은 부부가 세대를 이루는 가정에서는 완제품을 사먹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전통장을 담그려는 독자들을 위해 장에 관한 궁금증을 문답식으로 정리해보았다.
-전통장은 담그는 시기와 방법은.
11월에 메주 음력 정월에 간장을 담가서 3월에 분리한다. 메주는 콩을 쪄서 알갱이가 너무 많이 부서지지 않게(통기성) 으깬 후 성형을 해서 겉말림을 한다. 성형을 해서 일주일간 말린 후 곰팡이를 띄우는데 짚을 깔고 띄우는 경우도 있다. 음력 정월이 되면 메주에 소금물을 붓고, 2개월 그냥 놔둔다. 숙성은 6개월간 시킨다.
- 메주 띄우는 데 지푸라기가 중요한가.
메주를 띄우려면 통기가 생명이다. 일반적으로 장맛이 안 좋으면 지푸라기가 안좋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대형 제조업체들도 지푸라기를 써서 제조해봤지만 곰팡이 균의 일관된 관리가 불가능해 포기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은 안전하고 검증된 균주들 만을 사용하고 있다.
-식품회사도 겨울에 한 번만 장을 담그나.
가정에서 겨울에 장을 담그는 이유는 잡균 번식을 막기 위한 것이다. 요즘 대형 업체들은 균주를 특성에 맞게 배양해 일년 내내 담근다.
-간장의 종류는.
▦크게 국간장, 진간장, 양조간장이 있다. 국간장은 소금물에 발효시킨 메주에서 검은 물을 빼낸 것으로 단 맛이 없다. 양조간장은 콩화고 소맥하고 섞어서 발효를 시킨 것이고, 진간장은 보통 3년 이상 묵은 간장을 의미한다. 이밖에 일본에서 유래한 왜간장은 2차대전 때 군인들에게 간장을 보급하기 위해 속성으로 만든 간장이다. 이 방식은 염산으로 끓여 가성소다로 중화시킨 뒤 사카린 넣어 만드는데 3일이면 만들 수 있다.
/리빙앤조이팀
/도움말=김중필 ㈜대상식품연구소 개발1팀장
/자료제공=㈜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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