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가곡

변훈의 ‘명태’ / 베이스 오현명

경호... 2012. 12. 9. 00:57

[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변훈의 ‘명태’…‘쐬주’ 생각나게 하는 한국 가곡

 

 

‘명태’의 작곡가 변훈(왼쪽)과 베이스 오현명.

 

 

마지막 곡은 ‘명태’였다.

공연 내내 진지했던 베이스 가수가 소주 한 병과 명태를 들고나왔을 때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가수는 노래를 시작했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 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며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술이, 그것도 소주가 절로 당기는 노래다.

술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소주가 생각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할까? 반드시 오현명(吳鉉明, 1924~2009년)의 익살맞으면서도 현학적인, 한편으로는 더없이 쫄깃쫄깃한 표현으로 불려진 ‘명태’여야 한다. 그는 우리나라 가수에게서 만나기 어려운 깊은 저음이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베이스다.

특히 ‘쐬주를 마실 때~’ 하며 오현명이 뱉는 감탄사 ‘캬~!’는 그가 아니고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생생함이라 들으면 들을수록 ‘명태=오현명’이라는 찰떡궁합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명태’는 외교관 출신이라는 독특한 경력의 작곡가 변훈(邊焄, 1926~2000년)이 만든 가곡이다. 전쟁으로 혼란했던 1951년에 작곡해 1952년 가을 부산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처음 발표했다. 당시 대구에서 UN군 제7군단의 연락장교로 복무하고 있던 변훈이 공군 정훈음악대 대원으로 활동하던 베이스 오현명에게 양명문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부르게 한 노래인데 출발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서정적인 노래 스타일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마치 만담과도 같은 ‘레치타티보(recitativo·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식의 노래는 생소했다. 급기야는 객석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까지 나왔다.

‘이것도 노래라고 발표하나’라고 혹평을 한 평론가까지 등장하자 큰 충격을 받은 변훈은 작곡해 놓았던 다른 가곡 악보까지 모두 찢어버리고 작곡가의 길을 접기에 이른다.

다음 해 외무부에 들어가 직업 외교관이 된 변훈이 다시 작곡의 길로 돌아온 것은 1981년. 주포르투갈 대사를 끝으로 28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치면서다.

‘명태’는 처음에는 혹평을 받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적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으로 재평가되며 인기 가곡 반열에 올랐다. 1967년에 나온 ‘한국가곡전사(韓國歌曲全史), 유니버살레코드사’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곡 68곡 중 하나로 수록될 정도였다.

이렇게 사랑받던 명태가 요즘은 수온 변화와 저인망 그물 때문에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이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대신 입속을 달래는 것이 이제 수입산이 돼버렸다. 하지만 ‘비록 너를 술안주로 먹지만 네 이름은 길이 남을 것’이라며 시인의 안주가 된 명태를 위로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명태’에 대한 추억과 애착은 오랫동안 변치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 변훈과 오현명, 양명문이라는 이름과 함께….

 

 

음악을 듣고 싶다면…

·CD

2006년 그리운 우리 가곡-한국 최고 예술 가곡집,

이정희, 김금한, 오현명, E&E Media

한국 가곡 시와 노래, 김성길, 오현명, 서울미디어레이블


 

 

최영옥 음악평론가

 

 

/ 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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