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산책]/한국화,동양화

구양수(歐陽脩) 추성부(秋聲賦) / 조정육 미술사가

경호... 2012. 11. 22. 00:17

그림, 詩에 빠지다 / 조정육 미술사가 

늦가을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구양수 추성부

 

 

가을 소리에 대하여 (秋聲賦)

 

구양수 (歐陽脩)

 

구양자가 밤에 책을 읽고 있는데 (歐陽子方夜讀書)
서남쪽으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 (聞有聲自西南來者)
섬뜩 놀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고 말하였다 (悚然而聽之曰)
“이상도 하구나! (異哉)”
처음에는 빗소리에 바람 소리 같더니 (初淅瀝以蕭颯)
느닷없이 물결이 솟구쳐 올라 부딪치는 소리 같다가 (忽奔騰而澎湃)
마치 파도가 밤중에 놀라고 비바람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듯하고 (如波濤夜警風雨驟至)
그것이 물건에 부딪쳐 쨍그렁거리며 쇠붙이가 울리는 듯하며(其觸於物也??錚錚 金鐵皆鳴)
마치 적지에 다다른 병사들이 재갈을 물고 내달리듯 (又如赴敵之兵 銜枚疾走)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不聞號令)
다만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것 같도다 (但聞人馬之行聲)
내가 동자에게 물었다 (予謂童子)
“이것이 무슨 소리냐? 네가 나가서 살펴보거라 (此何聲也 汝出視之)”
동자가 말하였다 (童子曰)
“별과 달은 환히 빛나고 (星月皎潔)
은하수는 하늘에 걸렸는데 (明河在天)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四無人聲)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납니다 (聲在樹間)”
나는 말하였다 (予曰)

“아아! 슬프도다 ! (噫?悲哉)
이것이 가을의 소리구나 (此秋聲也)”

 

 

안중식, <성재수간>, 종이에 연한 색, 24×36cm, 개인

 

 

찬란한 가을이 스러졌다. 장엄한 계절이 조락했다. 천지를 불태웠던 가을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본 선비의 심사가 못내 쓸쓸하다. 사람의 가을도 그와 같지 않겠는가.

선비는 밤이 깊어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책을 붙잡고 있자니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빗소리 같더니 파도 소리 같고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같더니 말 달리는 소리 같았다. 졸고 있는 아이를 깨워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라 일렀다.

눈을 비비고 나가 두리번거리던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무도 없는데요. 나뭇가지에서 나는 소리라면 모를까.”
   
가을 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올까
   
늦가을의 쓸쓸함을 탄식하다 ‘추성부(秋聲賦)’라는 절작(絶作)을 만든 시인은 구양수(歐陽脩·1007~1072)다. 그는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지난번에 감상한 ‘매미 울음 소리에 붙이는 글(鳴蟬賦)’을 지은 사람이다. 안중식(安中植·1861~1919)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은 바로 이 아이의 대답을 화제로 그렸다.

지금 아이는 마당에 서서 이 밤중에 행여 누가 찾아오지는 않았을까 확인하는 중이다. 사립문 곁을 봐도 하늘의 별과 달과 은하수를 봐도 소리의 정체는 찾을 수 없다.

안중식은 그림 제목을 눈에 띄지 않게 마루 벽면에 슬쩍 써 넣음으로써, 찾을 수는 없는데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를 암시하고 있다. 아이는 수수께끼 같은 소리를 찾기 위해 귀를 기울이며 사방을 둘러본다. 원인을 찾지 못한 아이의 옷자락이 바람에 심하게 휘날린다.

졸던 아이를 깨워 밖으로 내보낸 구양수는 방문에 그림자로만 비쳐졌다. 가느다란 선으로 분명하게 그린 아이와, 연한 먹이 번지듯 흐릿하게 그려진 구양수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아이는 일이 끝나면 방에 들어가 곤한 잠을 자겠지만 소리의 정체가 궁금하여 책을 읽을 수 없는 선비는 그 실체가 확인될 때까지 뒤척일 것이다.
   
‘추성부’는 조선의 많은 선비들과 화가의 사랑을 받았다. ‘추성부’를 화제로 삼은 그림은 여러 점이 전한다. 그중에서도 김홍도의 ‘추성부도’는 안중식의 작품보다 더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김홍도는 흐르는 바람 소리에 늦가을의 선득함을 담아 종이를 적셨다. 그의 작품에서는 구양수의 글보다 더 쓸쓸한 계절의 냉기가 전해진다. 감상자는 김홍도의 그림 앞에 서는 순간 가슴속에서 덜커덩, 하고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허둥지둥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지 못한 채 맞닥뜨린 가을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여간해선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다. 담담할 수가 없다. 감상자는 이런저런 심사가 뒤섞여 혼란스럽다.

그림은 짐짓 모른 체 시치미를 뗀다. 심하게 부는 바람을 그렸으면서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천둥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적요롭다. 그 명징한 적요 앞에서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감추기는 힘들다. 
   
이것이 내가 김홍도의 명작 대신 안중식의 ‘성재수간’을 취한 변이다. 담담하기에는 이른 나이 때문일 것이다. 아니라면 이 나이 되어서도 여태껏 흔들리며 사느냐고 너무 많은 나이를 탓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안중식의 ‘성재수간’은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다 덜 부담스럽다. 그림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휙휙 불고 있어 적당히 묻혀 가면 감상자의 누추한 마음쯤이야 들킬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을의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다
   
구양수의 ‘추성부’는 가을의 소리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소리가 어찌하여 왔는지 어떤 모습으로 왔는지 그리고 왜 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밤이 깊어 가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마침내 구양수는 ‘만물이 성할 때를 지나면 마땅히 죽게 되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인생의 무상함에 절로 탄식한다.

주인의 수심이 깊거나 말거나 동자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오직 사방 벽에서 찍찍거리는 벌레 소리만이 구양수의 탄식 소리를 더해주는 듯하다.
   
‘추성부’는 늦가을에 버석거리는 바람 소리를 통해 삶의 유한성이라는 진리에 이르는 철학적인 글이다. 가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구양수에게도 아이에게도 똑같은 무게로 찾아왔다. 그러나 가을을 맞이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해답은 달라진다. 아직 인생이 봄인 아이에게는 가을이 와도 건성으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인생이 겨울에 가까운 사람에게 가을은 그 느낌이 예사롭지가 않다. 행여 이 가을이 내 인생의 마지막 가을이 아닐까. 겁부터 덜컥 난다. 그렇게 사람은 여러 차례의 가을을 보내면서 잠이 없어지고 고민은 깊어간다. 이래저래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사람에게 밤은 길고 수심은 깊다.

긴 밤과 깊은 수심을 보낸 후에 맞이한 아침이야말로 진심으로 귀하고 소중한 날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나이 들어갈수록 더욱 더 진지해지고 겸손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세월이 가르쳐 준 지혜로움이다

 

/ 주간조선

 

조정육,

http://blog.daum.net/sixgardn

 

 

 

김홍도(金弘道,1745년~1806년?)

 

추성부도(秋聲賦圖) 1805년

 

 

 

화면 우상(右上)에 유인(遊印)으로 부정형백문인(不定形白文印)‘일집초경반부서’라는 도서가 있고 그 아래 또 백문장방인(白文長方印)‘쟁산□□ □□□□’라는 도서를 찍었다. 나중의 것은 이인문(李寅文)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에 보이는 것과 같은 것임이 주목된다.

화폭 말미에 구양수(歐陽脩:1007~1072)의 <추성부(秋聲賦)>전문이 적혀 있다.

 

그 첫머리의 유인(遊印)은 백문타원인(白文?圓印)‘경우방자’이고, 작가인은 백문방인 ‘김홍도인’ 과 주문방인이나 흐려서 판독이 불가능하다. 먼저 화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추성부> 구양자가 밤에 책을 읽고 있다가 서남쪽에서 오는 소리를 들었다. 섬짓 놀라 기울여 들으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낙엽지고 쓸쓸한 바람부는 소리같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일고 파도치는 소리같이 변한다. 마치 파도가 밤중에 갑자기 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가 하면, 물건에 부딪혀 쨍그렁 쨍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또 마치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몰고 질주할 적에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듯 했다.

 

내가 동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네 좀 나가 보아라” 동자가 말하였다.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는데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아, 슬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로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저 가을의 모습이란, 그 색이 암담하여 안개는 날아가고 구름은 걷힌다. 가을의 모양은 청명하여 하늘은 드높고 태양은 빛난다. 가을의 기운은 살이 저미도록 차가와 피부와 뼛속까지 파고들며, 가을의 뜻은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해진다. 그러기에 그 소리가 처량하고 애절하여 울부짖는듯 떨치고 일어나는 듯한 것이다.

 

풍성한 풀들이 푸르러 무성함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들은 울창하게 우거져 볼만 하더니, 풀은 가을이 스쳐가자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자 잎이 떨어진다. 그것들이 꺾여지고 시들어 떨어지게 된 까닭은 바로 가을이라는 한 기운이 남긴 매서움 때문이다.

 

가을은 형관(刑官)이요, 때로 치면 음(陰)이요, 전쟁의 상(象)이요, 오행(五行)의 금(金)에 속한다.

이는 천지간의 정의로운 기운이라 하겠으나, 항상 냉엄하게 초목을 시들어 죽게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하늘은 만물에 대해 봄에는 나고 가을에는 열매맺게 한다. 그러므로 음악으로 치면 가을은 상성(商聲)으로, 서방(西方)의 음을 주관하고, 이칙(夷則)으로 칠월의 음률에 해당한다.

 

상(商)은 상(傷)이란 뜻이다. 만물이 이미 노쇠하므로 슬프고 마음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夷)는 륙(戮)의 뜻이다. 만물이 성한 때를 지나니 마땅히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아! 초목은 감정이 없건만 때가 되니 바람에 날리어 떨어지도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영혼이 있는 존재이다. 온갖 근심이 마음에 느껴지고 만사가 그 육체를 수고롭게 하니, 마음 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이 흔들리게 된다.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그 지혜로는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게 되어서는, 마땅히 홍안이 어느새 마른 나무같이 시들어 버리고 까맣던 머리가 백발이 되어 버린는 것도 당연하다 할수 있다.

 

금석(金石)같은 바탕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저들을 죽이고 해하고 하는가?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하는가?“

 

동자는 아무 대답 없이 머리를 떨구고 자고 있다. 단지 사방 벽에서 벌레우는 소리만 찌륵찌륵 들리니, 마치 나의 탄식을 돕기나 하는 듯 하다. 을축년 동지 지난 후 3일에 단구가 그리다.

 

출처;http://danwon.org/main.htm (단원 전시관 홈페이지)

 

 

 

...

 

 

秋聲賦


歐陽子方夜讀書, 聞有聲自西南來者, 悚然而聽之,

曰:"異哉!"

初淅瀝以蕭颯, 忽奔騰而(石+平)湃;如波濤夜驚, 風雨驟至.

其觸於物也,(金+從)錚錚, 金鐵皆鳴;又如赴敵之兵, 銜枚疾走,

不聞號令, 但聞人馬之行聲.

予謂童子:"此何聲也?汝出視之."

童子曰:"星月皎潔, 明河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

予曰:"噫(口+喜), 悲哉!此秋聲也,

 

 

아래 연결된 시

 

胡爲而來哉?

蓋夫秋之爲狀也;其色慘淡, 煙?雲斂;

어찌하여 온 것인가?

저 가을의 모습이란, 그 모양이 어둡고 쓸쓸하여 안개는 오르고 구름은 걷힌다.

 

其容淸明, 天高日晶;

其氣慄冽, ?人肌骨;

其意蕭條, 山川寂寥.

그 모양은 청명하며 하늘은 드높고 태양은 빛난다.

그 기운은 살이 저미도록 차가워 피부와 뼛속까지 파고 들며,

그 뜻은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해진다.

 

故其爲也, 凄凄切切, 呼號憤發.

豊草綠縟而爭茂, 佳木蔥籠而可悅;

그러기에 그 소리가 처량하고 애절하며 울부짖는 듯 떨치고 일어나는 듯한 것이다.

풍성한 풀들은 푸르러 무성함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들은 울창하게 우거져 볼 만하더니,

 

草拂之而色變, 木遭之而葉脫;

其所以?敗零落者, 乃其一氣之餘烈.

풀들은 가을이 스쳐가자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자 잎이 떨어진다.

그것들이 꺾여지고 시들어 떨어지게 되는 까닭은 바로 한 가을 기운이 남긴 매서움 때문이다.


夫秋, 刑官也, 於時爲陰;又兵象也, 於行爲金,

是謂天地之義氣, 常以肅殺而爲心.

가을은 형관이요, 때로 치면 음의 때요, 병가의 상이요, 오행의 금에 속한다.

이는 천지간의 의로운 기운이라하니, 항상 냉엄하게 시들어 죽음을 본성으로 여김이다.

 

天之於物, 春生秋實.

故其在樂也.商聲主西方之音, 夷則爲七月之律.

하늘은 만물에 대해 봄에는 나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므로 음악으로 치면 가을은 상성으로, 서방의 음을 주관하고, 이칙으로 칠월의 음률로 한다.

 

商, 傷也;

物旣老而悲傷.

夷, 戮也;物過盛而當殺.

'상(商)'은 '상(傷)'이다.

만물이 이미 노쇠하므로 슬프고 마음 상하고.

'이(夷)'는 '륙(戮)'의 뜻이니 만물이 성한 때를 지나니 마땅히 죽는 것이다.

 

 

嗟乎, 草木無情, 有時飄零.

人爲動物, 惟物之靈.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有動於中, 必搖其精.

아! 초목은 감정이 없어 때가 되니 바람에 떨어져 흩날리는구나.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영혼이 있으니 온갖 근심이 마음에 일어나고 

만사 그 나타남이 힘들고, 마음에 움직임이 있으니 반드시 그 정신이 흔들리게 된다.

 

而況思其力之所不及, 憂其智之所不能;

宜其渥然丹者爲槁木, ?然黑者爲星星.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그 지혜로는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게 되어서는,

홍안이 어느 새 마른 나무같이 시들어 버리고 까맣던 머리가 백발이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하다

 

奈何以非金石之質, 欲與草木而爭榮?

念誰爲之?賊, 亦何恨乎秋聲!"

쇠,돌 같은 본성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저들을 죽이고 해하고 있는가?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탄하는가?"


童子莫對, 垂頭而睡.

但聞四壁蟲聲??, 如助余之歎息.

동자는 아무 대답없이 머리를 떨구고 자고 있다.

다만 사방 벽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찌륵찌륵 들리는데, 마치 나의 탄식을 돕는 듯하구다.

 

 

【古文觀止】宋 歐陽修:秋聲賦

 

歐陽子方夜讀書,聞有聲自西南來者,悚(音:聳)然而聽之,曰:「異哉!」初淅瀝以蕭颯(音:薩),忽奔騰而?湃;如波濤夜驚,風雨驟至。其觸於物也,??(音:?)錚錚,金鐵皆鳴;又如赴敵之兵,銜枚疾走,不聞號令,但聞人馬之行聲。

余謂童子:「此何聲也?汝出視之。」童子曰:「星月皎潔,明河在天,四無人聲,聲在樹間。」

 

余曰:「噫?,悲哉!此秋聲也,胡?而來哉?蓋夫秋之?狀也,其色慘淡,煙?(音:非))雲斂;其容?明,天高日晶;其氣慄冽(音:力列),?(音:邊)人肌骨;其意蕭條,山川寂寥。故其?聲也,??切切,呼號憤發。?草綠縟(音:入)而爭茂,佳木蔥籠而可悅;草拂之而色變,木遭之而葉脫;其所以?敗零落者,乃其一氣之餘烈。

 

夫秋,刑官,於時?陰:又兵象也,於行?金,是謂天地之義氣,常以肅殺而?心。天之於物,春生秋實。故其在樂也,商聲主西方之音,夷則?七月之律。商,傷也;物?老而悲傷。夷,戮也;物過盛而當殺。

 

嗟乎!草木無情,有時飄零。人?動物,惟物之靈。百憂感其心,萬事勞其形。有動于中,必搖其精。而況思其力之所不及,憂其智之所不能;宜其渥然丹者?槁木,?(音:衣)然黑者?星星。奈何以非金石之質,欲與草木而爭榮?念誰?之?賊,亦何恨乎秋聲!」

 

童子莫對,垂頭而睡。但聞四壁蟲聲??,如助余之歎息。

 


悚然:吃驚恐懼的樣子。
淅瀝:形容風雨、霜雪、落葉等聲音。
蕭颯:風急的聲音。
??錚錚:金屬器?撞之聲。
銜枚:古代行軍襲敵時,令軍士把箸橫銜在口中,以防喧譁,稱?銜枚。
明河:天河、銀河。
慄冽:因畏寒而戰慄。
?:刺。
縟:繁多、繁?。
蔥籠:?翠茂密。
刑官:周禮分六官,秋官司寇,掌刑法邦禁之事。
於時?陰:古人以宇宙間有陰陽二氣。陽主生育,陰主肅殺,春夏?陽,秋冬?陰。
兵象:兵象主肅殺,秋令亦主肅殺,故以??。
行:五行。
天地之義氣:謂秋天象徵天地間尊嚴之氣。
商聲主西方之音:商聲,五聲之一。古人以五聲配季節,春?角,夏?徵,季夏?宮,秋?商,冬?羽,秋位西方,故曰商聲主西方之音。
夷則?七月之律:夷?十二律之一,配應七月。
殺:?殘減退之意。
必搖其精:言必耗損其精神。
渥然丹者?槁木:言紅潤之容?忽然枯槁。渥然,形容色澤鮮紅光潤。
?:黑色。
星星:頭髮斑白。
金石之質:比?質地堅固如金石。
?賊:傷害。
??:形容蟲鳴聲。

 

 

 

 

 

秋夜<鄭澈> / 추야. 정철

 

蕭蕭落葉聲 錯認爲疎雨

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

 

蕭蕭落葉聲(소소낙엽성)
錯認爲疎雨(착인위소우)
呼僧出門看(호승출문간)
月掛溪南樹(월괘계남수)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 잎소리

성글은 빗소리로 착각하고서

아이 불러 문밖에 나가 보랬더니

달이 시냇가 나뭇가지 남녘에 걸렸다 하네

 

蕭蕭(소소) [의성] 새가 울거나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  蕭 쓸쓸할 소.

疎雨 가랑비. 掛 걸 괘.

微雲過河漢疎雨滴梧桐 

옅은 구름은 은하수(銀河水)를 지나고, 가랑비는 오동나무를 적시도다. -추구-

 

중과의 대화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송대(宋代)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추성부(秋聲賦)>의 표현방식을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秋聲賦>의 첫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구양자(歐陽子)가 밤에 책을 읽고 있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섬듯 놀라 귀기울여 들으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낙엽 지고 쓸쓸한 바람 부는 소리 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고 파도치는 소리같이 변하였다. 마치 파도가 밤중에 갑자기 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물건에 부딪쳐 쨍그렁 쨍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또 마치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듯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듯 했다. 내가 동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네 좀 나가 보아라”

동자가 말하였다.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가을밤에 들려오는 소슬한 낙엽 소리 등을 듣고 일어나는 감회를 동자와의 대화형식을 빌어 쓴 것으로 자연의 추이(推移)와 인생의 덧없음을 탄식한 작품이다.


송강(松江)의 <산사야음(山寺夜吟)>은 비록<秋聲賦>의 표현방식 중 일부를 빌어 쓴 작품이기는 하지만, 위에 나타난바와 같이<秋聲賦>에서 나타난바, 가을밤의 서정에 대한 세밀하고 구체적인 묘사나, 무겁게 표현된 가을의 처량한 분위기 등은 나타나 있지 않다.

 

오언절구(五言絶句)라는 짤막한 형식을 통하여, 오로지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대한 청각적 묘사를 통하여 가을밤의 정취와 자신의 초탈한 내면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정민 교수 해설]

 

가을밤에 시인이 산사(山寺)로 놀러와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좀체 잠은 오질 않고 정신은 점점 더 또랑또랑해져만 간다. 창밖에서 갑자기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좀 전까지 하늘이 맑더니 웬 비가 오는 걸까? 

 손님은 절의 꼬마 스님을 부른다.

"밖에 비가 오나 봐라."

 

스님이 대답한다.

"저기 시내 남쪽에 달님이 걸려 있는데요. 손님."

 

비는 무슨 비냐는 말씀이다.

손님은 비가 오느냐고 물었는데, 스님은 달이 걸렸다고 대답했다.

달이 걸렸으니 비가 올리는 없고, 그렇다면 좀 전에 내가 들었던 소리는 무슨 소리였을까?

그제서야 좀 전 방안에서 들었던 그 소리가 빗소리가 아니라 낙엽 지는 소리였음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처음에 시인은 비 오는 소리로만 알았는데, 사미 스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낙엽 소리였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손님의 물음에 뚱딴지같은 스님의 대답이 재미있다.

스님이 만약, "비 안와요. 낙엽 지는 소리예요. 손님!" 하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시가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직접 말하지 않고,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하는 것, 이것이 한시에서 말을 건네는 방법이다. 비가 안 온다는 사실을 입에 담지 않고, 달이 떴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리고 시인은 그 말을 듣고서, 달이 떴다면 빗소리는 아닐테고, 그렇다면 낙엽 지는 소리였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그런 중간 과정은 다 말하지 않은 채 생략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다 알아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방법이다


 

* 鄭澈

 정철(1536~1593) 조선(朝鮮)의 정치가(政治家), 문신(文臣), 시인(詩人). 호는 송강(松江) 시호(諡號)는 文淸(문청)

그는 정치가로서보다는 시인으로서 문명을 떨쳤으니 당대 歌辭文學(가사 문학)의 대가로서 時調(시조)의 尹善道(윤선도)와 더불어 한국 詩歌史上(시가 사상) 쌍벽을 이룬다.

思美人曲(사미인곡), 續美人曲(속미인곡), 星山別曲(성산별곡) 등 수많은 가사와 단가를 지었다.

저서(著書)에 [松江集(송강집)], [松江歌辭(송강가사)], [松江別追錄遺詞(송강별추록유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