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벽과 문 / 천양희

경호... 2012. 4. 19. 16:17

벽과 문

 

 

천양희

 

 

 

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 되는

오늘이 있을 뿐이지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이지요

벽만이 벽이 아니라

때론 결벽도 벽이 되고

절벽 또한 벽이지요

절망이 철벽 같을 때

새벽조차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지요

세상에 벽이 많다고 다

낭비벽이 되는 건 아닐 테지요

벽에다 등을 대고 물끄러미 구름을 보다보면

벽처럼 든든한 빽도 없고

허공처럼 큰 문은 없을 듯하지요

이 세상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

 

자, 그럼 열쇠 들어갑니다

벽엔들 문을 못 열까

문엔들 벽이 없을까

 

 

*인도의 선각자 비노바 바베의 말.

 

 

 

 

- 시집『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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