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가로등을 말함
/ 석여공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비 오는 저녁 일주문 밖의 가로등이 고개떨궈 눈 감지 못하는 것은
눈 감으면 거기 그대로 주저앉아 얼굴 파묻고 싶어져서 그대에 대하여 영영 캄캄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막을 견디는 것만큼 쓸쓸한일 어디 있으랴 그리움이란 전봇대 울음 우는 흐린 바다로 온다거나 노을 붉은 무렵의 밀물의 뻘밭으로 온다거나 새벽을 가로질러 온 찬 뺨이라든가 하는 것 아닌가
그리운 마음의 앞섶, 빗물에 젖은 가슴일랑 차마 눈 들어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늘보다 멀리 키 큰 그리움으로 오는 그대여
눈멀도록 창백한 우주로 새벽을 풀고 있는 그대여
비 오는 날 빗물에 젖은 가로등이 눈 감지 못하고 마음을 세우는 것은
정녕,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
'#시 > 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차를 기다리며 / 천양희 (0) | 2012.01.20 |
---|---|
외로운 술잔 / 김낙필 (0) | 2012.01.20 |
그런 일이 어딨노 경(經)...박규리 (0) | 2012.01.19 |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0) | 2012.01.19 |
강/ 황인숙 (0) | 2012.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