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時事

종,친북 좌파들의 정체와 암약 활동

경호... 2011. 10. 17. 22:54

◎ 종,친북 좌파들의 정체와 암약활동  

 

*노판석과 권오석은 누구인가 ?

노무현의 아버지 노판석과 그이 장인 권오석 이야기


  노무현의부친 노판석은 6.25 당시 인민군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노무현의 고향은 전라남도 강진, 1953년 노무현이 5살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약 20~30명 가량의 사람들을 무고하게 살해했다고 전해온다.

  노판석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했다고 한다.


  노판석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가 철천지원수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은 좌익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할 때 못 본 체 했다.

  노판석은 왜 빨치산이 되었나?


  노무현의 조부가 일제시대 때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해방이되자 동네주민들로부터 엄청난 괄시무시를 당하게됐다.

  이에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앙심을 갖고 있다가 6.25 터지고 나서

  괴뢰군이 전남 강진을 점령하자 괴뢰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 동네 사람들

  에게 철저한 앙갚음을 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

  을 하게됐다고 한다.


  빨치산들에게 자발적으로 식량과 물품을 대줄 민간인들은
없었기 때문에 여느

   빨치산처럼 [노판석] 역시 지리산에서 가까운 남원 부근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지 않았겠나 하는 의혹이 있다 한다.


  1953년 아군 괴뢰군을 격퇴하고 남한 전역에 치안과 질서를
확립해 나가자

  [노판석]은 동네사람들에게 보복을 당하게 될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노무현]

  (5살)과 [노건평]을 데리고 목포항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고 야반 도주를

  했다 한다.


  동네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배편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가족을 데리고 부산항에 도착한 [노판석]은 산골 오지인 경남 진영으로 도망을

  간다. 그곳서 호적을 새로 만들었다 한다.


  당시에는 전란직후의 혼란기로 호적을새로만들기가 매우쉬웠다.

  그리곤 또 다시 김해로 도주를 했고 이후부터 [노무현] 집안은 경상도출신

  행세를 해온 것이라 한다.

  노무현은 김해에서 역시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
권오석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권오석 6.25 인민군 앞잡이로서 지역주민 11명을 살해한 경력이 있다.

  이후 노무현은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직을 채 1년이 못되게
하고 난 후 변호사

  개업을 한다.

  이때 노무현을 도와준 이가 김광일(부산) 변호사이다.
  김광일 변호사는 수습 변호사로 자기 사무실에 온 [노무현]에게
까지

  빌려주면서 노무현의 변호사 개업을 도와준다,


  이 때 빌린 돈은 불과 3개월 만에 다 갚았다. 김광일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시국사범들에 대한
인권 변론하는데,노무현 문재인을 참여 시키기도 했다.


  김광일 변호사 덕에 시국변론을 몇 번 하던 [노무현]은
[김광일] 변호사 덕에

  [김영삼] 민주당 총재를 알게 된다,


   YS의 추천으로 공천을 얻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 된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훨씬 지난 후 책을 출간했다.

   책에서 노무현 'YS로부터 봉투를 많이 받아서 원도 없이 써봤다' 라고 썼다.


   그리고 5공 청문회가 열렸다.
노무현은 이때 [전두환]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 던졌고 이 덕분에 호남지역사람들과 [DJ] 눈에 들게 됐다.


   얼마 후 민자, 민주,자민의 3당 합당 반대에 나서면서 이를
명분으로서

   합당 극렬 반대 했고, 꼬마민주당에 잠시 머물다 [DJ] 진영에 합류했다.


   이후 DJ 와 노무현의 관계는 양부, 양자 관계까지 발전을
하게 된다.


      노무현 장인 권오석의 정체


   권오석]에 의해 학살된 양민 유족 중에 [변재환]박사 (58세)가
있다.
   그는 “권오석에 의해 살해 유족회”의 대표이다.

   그는 권오석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權오석]씨는 태생부터 장님은 아니었다. 막걸리를 공업용
알콜에 섞어

   마시다가 실명된 것이다. 실명한 [權] 6.25 일어나기 전인 1948년에

    남로당에 가입했다.


   당시 우리 숙부님인 [변백섭] 면장이었고 [권오석]
면서기였다.
   권씨 사상관계로 의심을 받아 다른 에 있다가 쫓겨 와,변백섭 면장 밑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이후 6.25가나자, [권오석]은 창원군 진전면의 치안대장이 되었다.
   눈이 먼 권씨는 동네 사람들의 손바닥을 만져보고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를

   등급별로 판정했다."


   2002 5 3일,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은 장인의
묘소에

   참배를 하면서 “장님(장인 권씨)이 부역을 하면 얼마나 했겠느냐”,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것이 무슨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같은 시기에 권양숙은 아버지 권씨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때 나는 어려서 부모님 일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태생이 장님인 사람은 혼자서도 잘 다니지만, 후천적으
실명 권씨 경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권씨의 경우 장님이 된지 얼마 안 되었고 남편이 양민을 등급별
로 손으로 판정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부축했던 사람이 바로 노무현의 장모였다.


   노무현 부부의 거짓말에 대해 변씨는 이렇게 반박한다.


   “장모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 되나. 나는 [권양숙]씨와
동갑이다.
   나도 아버지를 통해 숙부님의 학살사건을 낱낱이 듣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어렸다는 이유로 모른다는 것인가?


    더욱 아버지가 감옥에 있을 당시 권양숙은 15살이었는데
아버지가 왜 감옥

    갔는지 들었을 것 아니냐?

     우리가 알고 있는 3.1운동이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아서 안 것은 아니지 않나.”


    “학살당한 11명의 유족들은 궁핍하게 살았다. 6.25 이후 부모
두 사람이 있어

    도 어려운 살림인데 아버지 없이 산 유족들은 그야말로 피눈물 흘리는

    세월이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했더라면 유족들은 부모형제의 죽음 가슴에 묻고

   살았을지 모른다.

   노무현 부부와 장모는 죄 없이 죽은 11명의 양민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제대로 알리고 사과해야 한다”

   권오석의 좌익 부역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대검찰청이 발간한

    좌익사건실록’에 있다.


   피해자측 증언들에 따르면 [권오석] 일제시대 공무원시험
합격해 면서기

   일했을 정도로 똑똑해서 양민 학살하기로 결정한 인민재판에서 검사,

   변호사, 판사 역할 등 1 3역을 한 유일한 재판관이었고,그의 말 한 마디로

   양민 생사를 가름하였다고 한다.

 

   '실록' 책자에는 [권오석]이 죽인 피해자가 9명으로 돼 있다.
    그러나 피해자 측 주장은 11명이다.

      卞百燮(43, 농업) 창원군 진전면 양촌리
    卞先燮(34, 농업) 창원군 진전면 일암리
    卞曾燮(33, 농업) 창원군 진전면 양촌리
    金玉甲(53, 농업) 창원군 진전면 일암리
    金万祚(32, 농업) 창원군 진전면 시락리
    金聖甲(46, 농업) 창원군 진전면 창포리
    朱正浩(28, 군인) 창원군 진전면 봉암리
    朴宗洙(51, 區長)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朴周漢(47, 농업)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鄭奉柱(32, 농업) 창원군 진전면 광촌리
    權五乾(28, 군인) 창원군 진전면


   피해자 유족의 주장 중에는 [권오석]이 얼마나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기에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선전부장으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치안대가 되었겠는가?

   눈이 멀쩡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시각장애인 간부로

   기용한 사실은 [권오석] 좌익사상이 투철하였고 좌익활동 적극적이었음을 

   방증하고  있다고 한다.


    *[송정호] 법무장관은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


   「양민학살 수감 중이던 [권오석] 자유당 정부 시절인

    1956 폐결핵등의 질병 때문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고,

    5 .16 이 나기 두 달 전인 1961327재수감됐다는 요지로 답변했다.


    [김일성]이 죽기 전 남조선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동지들과

     의형제, 그리고 막내동생과 그리운 여인. 이들 4명을 가장 만나고 싶어했다고

    한다.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은 일본의 左派 거물 정치인 [우스노미야] 參의원

     과 [김일성] 사이에 19749평양 대동강 별장에서 23 회담을 하고

    남긴 [김일성-우스노미야] 단독회담 보고서'라는 비밀 보고서

    일본 공안 조사청 지하실과 평양 [김일성] 궁전 비밀금고남아 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김일성은 우스노미야] 를 통해

   [우스노미야]선생과 나는 형제간이고 내가 2살 더 많으니 형이 되는 셈이지요. 

   또 아우님 남조선[김대중]형제지간 이라고 하니 우리는 3형제가 되는

   셈입니다.


  우리 3형제가 손을 잡으면 아시아에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우님께서 일본총리가 되시고 막내 아우님[김대중]남조선 대통령

   되면 우리 3형제가 손을 잡고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항, 큰소리 치는

   아시아의 이 될 것 입니다" 라고 말했다.


  [김일성]이 또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韓完相] 대한적십자

  총재이며,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여인 前 YWCA 총재지낸 [孫寅實] 여사

   였다.


   [김일성]회고록 '세기를 넘어서' 를 보면 [손인실] 여사
대한 그리움

    애정이 상당부분 묘사돼 있는데 한때는 남조선으로 밀사를 보내 북한으로

    탈출시키려고 까지 했었다.


   그 다음으로 꼭 만나고 싶어한 - 평양으로 탈출까지 시키려
했던

   인물 있었으니 바로 북한 로동당·빨치산 혁명투쟁 교육시간에 등장하는

   '남조선 남로당 [권오석] 동지의 투쟁사'의 그 [권오석]이다.


   [권오석] 동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임에도 6.25 민족

   통일전쟁(?) 에 앞장서 남조선 반역자들을 가려내 처단하는데

   혁혁한 을 세웠으며, 馬山지구 전투에서 미군 몇 명을 포로

   잡아 오는데도 큰 을 세웠다.


   그는 패전 후 [이승만] 정권에 체포됐으나 끝까지 사상 전향을 하지
않은 채

    북조선 조국을 배신하지 않겠다며 감옥 안에서 최후를 맞은 영원히 수령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남조선 빨치산 투쟁 영웅' 이었다.


   그 위대한 '남조선 빨치산 투쟁영웅'의 사위가 남조선 대통령이

   되고 그 딸이 청와대 안주인이 되어 입성 하는 날,

 

    평양방송은 며칠 동안
   [권오석] 동지의 공로와 그 영웅의 사위와 딸이 남조선 대통령이

   된 사실방송하며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정신이 승리했다'고

    열 올리며 광분했다.


   또 금강산에 "[김일성] 수령님이 가장 사랑하는 남조선 영웅

    [권오석] 동지의 청와대 입성" 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까지

    크게 만들어 걸어 놓았는데 한국 국회에서 말썽이 일자 이를 철거했다는

     소문도?


* 종,친북 좌파들의 달갑지 못한 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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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비교해 보니,
대한민국의 역적, ´친북인사(빨갱이)´들이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 = "6자회담 이후 남쪽의 남북연합제와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합한
통일의 제1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며
북한의 연방제통일 동조, 6·15 정상회담 대가로
김정일에 5억 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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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국무총리) = "8·15 행사 때 보수단체들의 인공기
훼손·소각 행위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여 인공기 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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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광복 60주년 행사에 태극기,
대한민국 연호 사용금지, 국민적 합의없이 200 만 KW
(10년간 20조원 상당) 對北송전 약속으로 국익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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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전 KBS 사장) = 북핵개발 비호, 좌익폭력시위 비호,
편파보도, 사회갈등 국론분열 부추키는 프로그램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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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 = 주한미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남북평화 위해 한미동맹 포기가능, 버시바우 대사의
소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 등 발언으로 북한을 옹호, 국보법폐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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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전 친일진상위 위원장) =6·25를 '김일성에 의한 침략전쟁'이 아닌
'남과 북의 통일전쟁' 이라고 강변, 김일성을 독립운동가로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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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 (전 과거사정리위원장) = 80년대부터 주한미군철수 주장.

지난 5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철수하기 위해서는

서울 정부와 평양 정부가저 사람들(미국) 몰래라도

긴밀하게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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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렬 (전국연합상임의장, APEC반대 국민행동공동대표) =
11월18일 부산 아펙반대집회 때 "오직 농민·노동자,
오직 민중만이 여러분의 벗이다. 이제 우리끼리 하자.
민중의 自主정부를 우리 손으로 세우자. 진보정당을 키우자.
事大매국노와 帝國主義를 밀어버리자!"라고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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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동국대 교수) = 6·25 남침 비호 망언,
맥아더는 집달리, UN군은 점령군' 발언으로 한미동맹 관계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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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린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명예의장) =
남조선노동당 가입, 간첩, 빨치산 묘지 준공식에서
"경기도 보광사 이땅은 미제국주의가 점령하고 있는 점령지인데,
우리가 동지들을 이곳에 모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반드시 진정한 우리 조국땅에 모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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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렬 (통일연대공동대표) =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이적단체 대표.지난번 무단 입북후

갖은 행사장에서 우리정부 맹비난 판문점으로  다시 넘어와 복역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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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범 (전 의문사진상규명위 위원장) = 간첩,
빨치산 출신을 민주인사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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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전 한겨레신문 비상근이사, 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
이승만 정권을 "잔인 무도한, 포악한, 타락한, 파탄한" 등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의 배반자, 천황숭배자, 기회주의자, 변절자" 등으로 매도.
반면, 북한의 '공산화숙청'을 "사회혁명의 열기가 충천한 것"으로 미화,
"以北에서는 새 나라 건설을 위해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민족기기가 넘쳐 있는데 같은 시각 남한은 '썩은 술을 낡은 부대'에
그대로 담고 있는 꼴이었다"고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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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림 (통일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대표,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 =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 한총련을 愛國愛族단체로 호칭,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폐지 주장, 탈북자 입국 北에 사과 요구,
金日成 참배 방북저지 사죄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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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복 (전국연합지도위원) =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
남측본부준비위원회 실행위원장(93~94), '주한미군철수' 주장하는 단체인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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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민노당 전 대표) = 북한 애국열사릉 참배.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길이 새기겠다'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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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국정원 과거사위 성공회대 교수) = 金日成 노골적 찬양,
2004. 7. 8「한겨레21」에 「20세기형 민족주의자 金日成」이라는
글에서 김일성을 "우리민족의 가장 암울한 상태에 혜성같이 나타나
참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지도자", 한겨레신문의 '역사이야기 김일성에서
"해방된 조선에서 만주벌판에서 백마를 타고 일제를 무찌르던
전설의 명장 金日成 장군의 업적을 의심하거나
그를 비난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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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화 (한나라당 의원) = 국보법폐지 주장,
간첩·빨치산 묘비 철거를 '시대착오적 행동'으로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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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민노당 의원, 전국연합 대의원) = 홍콩 원정시위 주도,
국제외교관계 훼손 국가보안법 폐지, 미군철수 주장. 데모마다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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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 낮은단계 연방제 및 남북연합 통일 방안 주장,
對北 현금 지원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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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범죄는 생계형 범죄라고 변호한 조기숙. 크크크...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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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三代獨裁體制를 非難 反對하지 못하고 從北하는
당신들은 어느나라 국민이냐?

대한민국 사법당국의 종북자 관용은 언제까지 갈것인가?

 나라를 잃는 것도 개의치 않겠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