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碧巖錄

「벽암록(碧嚴錄)」 下 - 제74칙 금우의 춤(金牛作舞)

경호... 2011. 10. 10. 00:43

원오(圜悟)스님께서 풍주(灃州)의 협산(夾山) 영천선원(靈泉禪院)에 주석하시면서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의 송고(頌古)에 대하여 평창한 말씀의 핵심.


    벽암록 下

       제74칙 금우의 춤(金牛作舞)

      [垂示]
      垂示云. 鏌鎁橫按. 鋒前剪斷葛藤窠. 明鏡高懸. 句中引出毘盧印.
      田地穩密處. 著衣喫飯. 神通遊戲處. 如何湊泊. 還委悉麽. 看取下文.

      [수시]
      막야(鏌鎁) 보검을 종횡으로 어루만지니 칼날 앞에 언어 갈등의 소굴이 끊어지고,
      밝은 거울을 높이 거니 언구 속에 비로인(毘盧印)이 나온다.
      평온하고 정밀한 경지에서 옷 입고 밥 먹으니,
      신통력 부리는 곳에 무엇 하러 머물랴.
      분명히 알았느냐? 아래의 글을 보아라.


      [본칙]
      擧. 金牛和尙每至齋時, 自將飯桶, 於僧堂前作舞, 呵呵大笑云, 菩薩子喫飯來.
      雪竇云, 雖然如此, 金牛不是好心.
      僧問長慶, 古人道, 菩薩子喫飯來, 意旨如何. 慶云. 大似因齋慶讚.

      거론하다.(擧.)
      금우(金牛)스님은 언제나 점심 때[齋]가 되면
      몸소 밥통을 가지고 승당 앞에서 춤을 추면서 껄껄대며 말하였다.
      “보살아! 밥 먹어라.”(金牛和尙每至齋時, 自將飯桶, 於僧堂前作舞, 呵呵大笑云, 菩薩子喫飯來.)

      - 낚싯대 끝의 실이 그대가 움직이는 대로 흔들흔들 거리지만,
        맑은 물결 어지럽히지 않으니 그 뜻이 남다르다.
        제호와 독약을 동시에 활용한다. 옳기는 옳다.
        모든 보배가 일시에 나열되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적은 것을 어찌하랴.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금우스님은 마음씨가 좋지는 않다.”(雪竇云, 雖然如此, 金牛不是好心.)

      - 도적이 도적을 알고 망상꾸러기가 망상꾸러기를 아는구나.
        찾아와 시비하는 놈이 정말 시비하는 놈이다.

      어떤 스님이 장경(長慶)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보살아 ! 밥 먹어라’고 한 뜻은 무엇입니까?”
      (僧問長慶, 古人道, 菩薩子喫飯來, 意旨如何.)

      - 참으로 의심스럽네. 원래 귀결처를 몰랐구나.
        장경스님이 무어라고 말할까?

      “재(齋)로 인하여 축하하고 찬양하는 것과 똑같다.”(慶云. 大似因齋慶讚.)
      - 분위기에 걸맞게 장단을 맞추네.
        죄상에 의거하여 판결을 한다.

      [평창]
      금우스님은 마조스님 회하의 큰스님이시다.
      점심때가 되기만 하면 밥통을 들고 승당 앞에서 춤을 추면서 껄껄대며 웃고 말하였다.
      “보살아! 밥 먹어라.”
      이같이 줄곧 20년 동안 하였는데, 말해보라, 그의 뜻은 어디에 있었는가를.
      이를 단순히 ‘밥 먹어라’라는 뜻으로 생각한다면
      평소에 목어(木魚)를 두드리고 북을 두드리는 것도 또한 밥 때를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밥통을 들고 와서 숱한 재주를 피우는 것일까?
      이는 그가 미친 게 아닐까? 아니면 법문을 하는 것인가?
      만일 이를 법문을 하는 것이라 한다면
      왜 보화왕좌(寶華王座 : 설법상) 위에서 선상을 두드리고 불자를 세우지 않았을까?
      이처럼 해서 무엇 하려는 것이었을까?
      요즈음 사람들은 옛사람의 뜻이 말 밖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왜 그들은 달마조사가 처음 붙인 제목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지 않을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교(敎) 밖에 따로이 전하여 오직 심인(心印)만을 전한다”고 하였다.
      옛사람의 방편이란 그대들에게 대뜸 알도록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은 헛되이 스스로 헤아리면서
      “거기에 뭐 대수로운 일이야 있었겠나.
      추우면 불 쪼이고, 더우면 시원한 바람 쏘이며,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잔다”고 말들을 한다.

      이와 같은 상정(常情)으로 뜻 풀이를 하고 주석을 붙이면[義解詮註]
      달마의 일종(一宗)은 땅을 쓸어버린 듯 없어질 것이다.
      이는 옛사람이 하루 종일 끊임없이 잊지 않고
      이 일을 밝히려 했다는 점을 모른 것이다.

      설두스님이 한 “그렇기는 하지만 금우스님은 마음씨가 좋지 않다”는 한 구절을
      많은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다.
      이른바 으뜸가는 제호의 맛이란 세상에서 최고인데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도리어 독약이 되는 경우이다.

      금우스님은 한 수준을 낮추어서 사람을 지도하였는데,
      설득스님은 무엇 때문에 “마음씨가 좋지 않다”고 말하였을까?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말하였을까?
      납승이라면 반드시 쌩쌩한 정신[生機]이 있어야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사람은 옛사람의 경지에 이르지도 못하고서
      오로지 “무슨 마음을 보며, 무슨 부처를 보랴”고 말들을 한다.
      이런 견해를 지닌다면 금우 노작가를 헐뜯는 일이니,
      반드시 자세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입으로만 지껄인다면 깨칠 기약이 없을 것이다.

      그 뒤 장경스님이 상당 법문을 하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은 ‘보살아! 밥 먹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은 무엇입니까?”
      “재(齋)로 인하여 축하하고 찬양하는 것과 똑같구나.”
      존숙께서 너무도 자비로움이 많아 적잖은 허물을 지었다.
      (대답이) 옳기는 옳지만 “재로 인하여 축하하고 찬양했다”하니,
      그대들은 말해보라. 축하하고 찬양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설두스님의 송을 살펴보라.


      [송]
      白雲影裏笑呵呵. 兩手持來付與他. 若是金毛獅子子. 三千里外見誵訛.

      흰 구름 그림자 속에서 껄껄거림이여,(白雲影裏笑呵呵.)

      - 웃음 속에 칼이 있다.
        열을 내서는 안 되지.
        천하의 납승들이 귀결점을 모르는구나.

      두 손으로 가져다가 그대에게 전해준다.(兩手持來付與他.)
      -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금우스님을 비방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밥통이라 말  해서야 되겠느냐.
        본분 납승이라면 이런 밥은 먹지 않겠지.

      황금빛 사자 새끼라면(若是金毛獅子子.)
      - 반드시 격식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가 안목을 갖추었다고는 인정하지만 안목이 바르지 못할까 걱정이다.

      3천 리 밖에서도 어려운 곳을 알아차리리라.(三千里外見誵訛.)
      - 반푼 어치도 안 된다. 한바탕 실수로군.
        어려운 곳이 어디에 있느냐? 이 장님아!

      [평창]
      “흰 구름 그림자 속에서 껄껄거림이여”라고 하니,
      장경스님은 “재로 인하여 축하하고 찬양한다” 말하였고,
      설두스님은 “두 손으로 가져다가 그대에게 전해준다”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이는 그에게 밥을 먹으라고 가져다 준 것일까,
      (아니면) 따로이 기특한 것이 있을까?
      이를 분명히 안다면 황금빛 사자의 새끼일 것이며,
      황금빛 사자 새끼라면 다시는 금우스님이 밥통을 가지고
      춤추며 껄껄댈 필요가 없을 것이며,
      곧바로 3천 리 밖에서 그의 잘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거울은 기틀(언어) 이전에 있어서 약간의 조작도 필요치 않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납승이라면 평소에 격식 밖에서 활용해야
      비로소 본분종사라고 불리울 것이며,
      언어에 의거한다면 허물을 면치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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