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圜悟)스님께서 풍주(灃州)의 협산(夾山) 영천선원(靈泉禪院)에 주석하시면서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의 송고(頌古)에 대하여 평창한 말씀의 핵심.
- 벽암록 中
제46칙 경청의 미혹되지 않음(鏡淸不迷)
- [垂示]
垂示云. 一槌便成超凡越聖, 片言可折, 去縛解粘.
如冰凌上行, 劍刃上走, 聲色堆裏坐, 聲色頭上行.
縱橫妙用則且置, 刹那便去時如何. 試擧看.
[수시]
한 번의 망치질로 범부·성인을 초월하고, 반 마디의 말로써 속박을 풀어버렸다.
얼음 위를 걷고 칼날 위를 달리듯 하며, 현상의 세계[聲色]속에서 현상에 따라 행한다.
종횡무진한 오묘한 작용이란 그만두더라도
찰나에 대뜸 떠나버렸을 때는 어떠한가? 거량해보리라.
[본칙]
擧. 鏡淸問僧, 門外是什聲. 僧云, 雨滴聲. 淸云, 衆生顚倒, 迷己逐物.
僧云, 和尙作生. 淸云, 不迷己. 僧云, 不迷己 意旨如何.
淸云, 出身猶可易, 脫體道應難.
거론하다.(擧.)
경청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가 나느냐?”(鏡淸問僧, 門外是什聲.)
- 무심하게 낚시를 드리웠다.
귀머거리도 아니면서 무얼 하려고 묻는가?
“빗방울 소리입니다.”(僧云, 雨滴聲.)
- 참으로 진실하군. 좋은 소식이다.
“중생이 전도되어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구나.”(淸云, 衆生顚倒, 迷己逐物.)
- 일삼는구나. 자기 편할 대로 하는 데는 익숙하군.
갈고리와 오랏줄이로다. 그에게 본분의 솜씨를 돌려줘라!
“스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렵니까?”(僧云, 和尙作生.)
- 과연 지고 말았군.
창끝을 돌려 덤벼드는구나. 참으로 감당키 어렵다.
도리어 창을 잡고 거꾸로 사람을 찌르는구나.
“하마터면 자신을 미혹할 뻔했느니라[洎不迷己].”(淸云, 不迷己.)
- 쯧쯧! 결국 밝히려 해도 하질 못하고 마는군.
“자신을 미혹할 뻔하시다니 무슨 뜻입니까?”(僧云, 不迷己 意旨如何.)
- 이 늙은이를 내질렀군. 사람을 핍박하는구나.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 편인데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몸을 빠져 나오기는 그래도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란 어렵다.”
(淸云, 出身猶可易, 脫體道應難.)
- (빼어난) 자식을 기르게 된 인연이다.
그렇긴 하지만 덕산스님과 임제스님은 어디로 갔느냐?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면 무슨 소리라고 하랴? 결국 밝히지 못하고 마는군.
[평창]
여기에서 또한 잘 알아야 한다.
옛사람이 말한 한 기틀[一機], 한 경계[一境]는 수행자를 지도하고저 함이었다.
하루는 경청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顚倒)되어 자신을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구나.”
다시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비둘기 울음소리입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업을 부르지 않으려거든
여래의 바른 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라.”
다시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는 소리입니다.”
“중생에게 고통이 있으리라고 짐작했더니 고통받는 중생이 참으로 있었구나.”
이 말은 앞의 공안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납승이 여기에서 깨칠 수 있다면 현상의 세계 속에서도 자유롭겠지만
깨치지 못한다면 현상의 세계의 구애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공안은 총림에서 ‘단련어(煅煉語)‘라 한다.
만일 단련이라 한다면 마음의 분별을 이룰 뿐
옛사람의 수행인을 지도한 참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를 현상의 세계에서 깨우치게 함[透聲色]이라 하기도 하는데,
첫째는 도안(道眼)을 밝힘이요, 둘째는 현상세계를 밝힘이요,
셋째는 심종(心宗)을 밝힘이요, 넷째는 망정(忘情)을 밝힘이요,
다섯째는 교화 제도함[展演]을 밝힘이라고 한다.
대단히 자세하기는 하지만, 집착함이 있는 걸 어찌하겠는가.
경청스님이 “문 밖에 무슨 소리가 나는가?”하고 묻자,
스님은 “빗방울 소리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경청스님은 문득 “중생이 전도하여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잘못 알고 고의로 사람을 떠본 것이라고 말들 하나
틀린 소리이다.
이는 경청스님에게 수행인을 지도하는 솜씨가 있어,
대담하게 한 기틀, 한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각별히 눈썹[眉毛]을 아끼지 않고 말로 설명해주었다는 점을 모른 것이다.
경청스님인들 빗방울 소리인 줄 몰라서 또다시 물었겠는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옛사람은 학인을 제접하는 수단으로써
이 스님을 시험하려고 했다는 것이며,
이 스님도 멋지게 받아서 대뜸 “스님께서는 뭐라고……”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침내는 경청스님이 방편을 써서 그에게
“자신을 미혹할 뻔했네”라고 말하였다.
그 스님이 자기를 미혹하여 외물을 좇은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경청스님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미혹했을까?
그를 시험하는 구절 속에 몸을 해탈하는 곳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스님은 너무나 멍청하여 아예 말을 끊어버리고자 다시 묻기를
“자기를 미혹할 뻔하시다니 무슨 뜻입니까?”라고 하였다.
덕산스님과 임제스님의 문하였다면 방(棒)·할(喝)을 하였으련만
경청스님은 한 가닥 (방편의) 길을 터주어 그에게 설명을 하느라 다시 말하였다.
“몸을 빠져 나오기는 그래도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란 어렵다.”
그와 같기는 하지만 옛사람(동산스님)이 말하기를
“계속 이어가기가 매우 어렵다”하였으니,
경청스님은 다만 한 구절로 이 스님에게 본분의 큰 일을 밝혀주었던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虛堂雨滴聲. 作者難酬對. 若謂曾入流. 依前還不會. 曾不會. 南山北山轉[雨/汸]霈.
빈 집의 빗방울 소리여!(虛堂雨滴聲.)
- 예로부터 지금까지 끊어졌던 적이 없다.
모두가 이 속에 있느니라.
작가 선지식도 대답하기 어려워라.(作者難酬對.)
- 예상대로 모르는군. 산승은 원래 작가가 아니다.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으며, 놓음도 거두어들임도 있으며, 죽이고 살리며,
사로잡고 놓아주기를 마음대로 한다.
만일 성인의 무리 속에 들어갔다[入流]고 한다면(若謂曾入流.)
- 머리를 (들러붙는) 아교통 속으로 처박는다.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면 무슨 소리라 하겠는가?
여전히 모르리라.(依前還不會.)
- 산승이 몇 번이나 물었던가?
이 먹통아! 구멍없는 쇠망치를 나에게 가져와라.
알건 모르건(曾不會.)
- 두 쪽을 모두 꼼짝 못하게 한다.
둘로 나눌 수 없다. 양쪽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남산·북산에 도리어 세찬 비가 쏟아진다.(南山北山轉[雨/汸]霈.)
- 머리 위, 머리 아래가 온통 (비투성이다). 빗방울 소리라 한다면 장님이며,
빗방울 소리라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리라 하겠는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참된 경지를 밟아야만 한다.
[평창]
“빈 집의 빗방울 소리여! 작가 선지식도 응수하기 어렵다”는 것은,
빗방울 소리라 한다면 이는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 것이라는 것이다.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 한다면 또한 어떻게 외물에 자재롭게 대처하겠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작가라 하더라도 응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마조스님)은 “스승과 같은 견해를 지니면
스승의 덕을 반감시키는 것이니 견처가 스승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스승의 뒤를 전수 할 만하다”하였으며,
또한 남원(南院)스님은 말하였다.
“방망이 아래 무생법인(無生法忍)이여! 기연(機緣)에 임하여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네.”
“만일 (성인의) 무리 속에 들어갔다 한다면 여전히 모르리라”고 하였는데,
교학[敎中 : 능엄경]에서는 말하기를
“처음 듣자마자 성인의 무리로 들어가, 들어가는 자신도 들어간 곳도 고요하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모습이 절대로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빗방울 소리라 해도 옳지 않고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해도 옳지 않다.
앞(제11칙 송)에서 나온 “두 번 할하고 세 번 할 함이여!
작가이므로 인연에 딱 맞출 줄 알았다”는 송은 바로 이 송과 같다하겠다.
이는 현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해도 옳지 않고
현상의 세계라고 해도 여전히 그 뜻은 모른 것이다.
이를 비유하자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 것이지
달이란 손가락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알건 모르건, 남산·북산에 도리어 더욱 세찬 비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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