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마지막을위한이야기

날마다 좋은날

경호... 2008. 11. 16. 17:57

바람 불고 추운 날씨가 거듭되길래 봄이 다시 물러가는가 했더니, 날씨가 풀리면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봄비는 어쩐지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촉촉한 봄비를 맞으면, 동백꽃은 어느새 살아납니다. 한없이 움츠려 꼭꼭 수줍게 여미었던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져 새파란 꽃잎에 새빨간 꽃을 피우니, 저절로 마음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산사에서의 비는 정감이 있습니다. 나뭇잎과 흙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낙숫물 소리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지요. 다양한 운곡을 만들어내어 한 편의 음악을 듣는 듯 황홀하기까지 합니다.게다가 이번처럼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는 더욱 고맙게 느껴집니다. 죽죽 쏟아져 봄 가뭄을 완전히 해갈시켜주기만 바랄 뿐이지요.  비 내리는 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가장 경치가 좋은 때는 비가 개인 때입니다. 운치 있는 비가 마음껏 쏟아져 초목을 골고루 적시고 물러가면 하얀 안개구름이 뭉글뭉글 피어오릅니다. 산아래에서 산허리를 타고 서서히 올라가며 은은한 자태를 연출해내지요.맑은 날씨만 계속된다면 이런 비온 후 날씨의 쾌청함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흐리고 비가 내린 후에야 갠 날씨의 쾌청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매일 맑은 날만 있으면 이 세상은 사막이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생살이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날만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면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황량한 사막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으며, 때로는 비도 쏟아지고 해야 아름다운 자연을 연출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맑은 날과 흐린 날이 함께 있어야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날씨가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만,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는 본래 없습니다.단지 맑은 날과 흐린 날, 비오는 날과 바람 부는 날만이 있을 뿐입니다. 소풍 가는 이에게는 맑은 날이 좋은 날이지만, 말라가는 작물을 지켜보는 농부에게는 비오는 날이 좋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두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나막신을 팔았고, 다른 아들은 짚신을 팔았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나막신은 안 팔리고, 비가 내리면 짚신이 안 팔리니 어머니는 매일 걱정이었지요.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파는 아드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고, 비 오는 날에는 짚신 파는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생각을 바꾸니, 즐거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맑은 날은 짚신 파는 아들을 생각하며 기뻐했고, 비오는 날은 나막신 파는 아들을 생각하며 즐거워 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상황을 전혀 바꾸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바뀌고 운이 좋으면, 혹은 좀 더 부자가 되거나 좀 더 건강해지거나 좀 더 명예로워지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좀 더 부자가 되거나 건강해지거나 명예로워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진짜 바뀌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입니다.

 

운문 스님이 대중에게 일렀습니다.

"15일 이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의 일을 한마디 일러보라." 그리고는 스스로 말했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니라.(日日是好日)" 보름달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초승달도 아름답습니다. 초승달은 초승달대로 보름달은 보름달대로 운치가 있지요. 이는 달이 좋은가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여질 뿐입니다.

어느 달이 좋은 달이며, 어느 날이 좋은 날이겠습니까?

 

나의 마음이 극락에 있을 때, 내가 있는 이곳도 극락입니다. 삶이 너무 힘겹다고 느껴질 때는 가만히 눈을 감아보십시오. 그리고 가만히 자신을 보십시오. 당신은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