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1822~1824년 초연: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 실질적인 지휘는 움라우프가 한다. 독창은 헨리에테 존탁(소프라노), 카롤리네 웅거(알토), 안톤 하이칭거(테너), 자이베르트(베이스) 출판: 1826년 헌정: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편성: 피콜로,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파곳2, 콘트라파곳, 호른4, 트럼펫2, 트롬본3, 팀파니, 심벌즈, 트라이앵글, 현5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의 각 독창, 혼성 합창 연주시간: 약 70분
■개요 ■
이 곡은 베토벤 예술의 최고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고금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품의 하나이다. 베토벤이 항상 공감하고 애독했던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drich Schillers)의 장시 <환희의 노래> 에 의한 합창 붙임을 가진 교향곡이며, 네 사람의 독창과 대합창이 교향곡에 사용된 최초의 음악이다. 23살의 젊은 베토벤은 <환희의 노래>를 읽고 음악으로 옮기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실제로 <환희의 노래>가 교향곡에 담겨 완성된 것은 31년 뒤인 1824년이다. 베토벤이 처음으로 교향악과 칸타타의 결합을 시도한 것은 1808년의 《합창 환상곡》작품 80번에서였으며 이 시도 가 후에 《합창》교향곡이란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곡을 작곡할 때 베토벤은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음향의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무한한 고통과 싸워야 했 고, 육체적인 건강의 악화와 가난 때문에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그는 고뇌를 맛본 환희를 영원히 노래 부르고 음으로써 표현한 것이다. 그는 예술에 의해 인간의 고난을 극복했으며 역경에 놓일수록 그것을 이겨나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제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운 포코 마에스토소 d단조 2/4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소나타 형식. 1주제를 분리시키는 듯한 움직임의 서주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조성의 장, 단을 결정하는 3도가 아니라 주제 동기의 단편이 4도, 또는 5도로 하강하는데 이것은 막연한 분위기를 지니며 이후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어 힘을 증대시켜 가면서 단편을 모아 모든 악기의 합주로 제1주제가 장대하게 연주된다. 이것이 다시 한번 되풀이되어 제1주제가 반복되면서 경과부로 들어가고 잠시 후 제2주제가 가볍게 목관악기로 연주된다. 제1주제에 기초한 제시부가 끝나면 발전부는 저수의 막연한 악구로 시작되며, 기교를 구사하여 제시부의 소재들을 사용해 나간다. 당당하며 훌륭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재현부는 서주의 악구로 시작되는데, 이번에는 3도 음을 덧붙여서 조성이 확립되므로 아주 힘차다. 대체로 소나타 형식에 따른 재현을 마친 후, 코다로 들어가며 제1주제에 의한 클라이맥스로 장대하게 악장이 마무리된다. 이 제1주제에 의한 종결 방법은 <교향곡 제8번>의 제1악장과, 또한 바소 오스티나토를 코다에 두는 것은 <교향곡 제7번>의 제1악장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제2악장 몰토 비바체 d단조 3/4 Molto vivace
3부 형식. 스케르초 악장으로서 제1부와 제3부는 소나타 형식을 취하며, 중간부는 자유로운 변주형을 따르고 있다. 또한 소타나 형식의 제1주제는 푸가토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 베토벤이 고안한 스케르초 양식은 여기에서 정점에 달하며, 팀파니의 사용법도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제3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 Bb장조 4/4 Adagio molto e cantabile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 개의 주제를 갖는 자유로운 변주곡이다. 두 마디의 따스한 느낌의 동이게 이어서 제1바이올린이 다른 현악기를 대위법적으로 반주시키면서 조용히 제1주제를 연주한다. 이에 대한 관악기의 네 마디씩의 에코(메아리)도 효과적으로 평화로운 인상을 준다. 이 주제의 제시가 끝나면 속도가 아다지오 마에스토소(D장조 3/4)으로 조금 빨라지며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동경을 품은 듯한 제2주제를 연주한다. 곡은 이 두 개의 주제를 한 번 변주하며 제1주제의 변주가 두 번 이어진다. 아름다운 천국의 꿈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듯할 즈음 코다에서 금관이 경고하는 듯한 예리한 악구를 연주한다. 그러나 변주는 계속되며, 여기에서 다시 경고가 나온다. 이어서 제1주제의 단편으로 악장은 조용히 마무리된다.
제4악장 프레스토 Presto-Allegro assai-Andante maestoso-Allegro energico, sempre ben marcato
혼란 스러운 듯한 악구가 연주된 저음역의 현에서 레치타티보와 같은 악구가 나타난다. 이어서 제1악장의 첫부분이 나온다. 이어 다시 저음역의 현, 그리고 제2악장의 주제의 단편, 다시 저현, 그리고 제3악장의 제1주제의 첫부분이 나타난다. 이어서 목관악기가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한다. 여기에는 매우 반항적인 저음역의 현도 함께 화합한다.
연주 : Berlin Philharmony 지휘 : Herbert Von Karajan 4악장만 올립니다.
병마와 육체적 피로, 마음의 아픔과 같은 악조건에 둘러싸인 베토벤에게 1818년 영국으로부터 최신식 브로드우드 피아노가 기증되었고, 이를 계기로 베토벤의 피아노 음악에 대한 의욕이 다시 타오르게 된다. 또한 그해 가을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빈을 벗어나 이전부터 있었던 초청을 받아들여 런던의 필하모니 협회에서 교향곡을 초연하려는 계획도 진척시키고 있었다(그러나 이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장엄 미사>(미사 솔렘니스)의 작곡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이처럼 1818년 초여름에 베토벤은 창작의 힘을 되찾았다. 그리고 런던 필하모니 협회로부터 두 곡의 교향곡을 작곡해달라는 의뢰도 받는다. 앞서 말한 두 곡의 교향곡 작곡 계획은 이와 연관된 것이다. 베토벤은 한 곡을 기악만으로, 다른 한 곡은 성악을 함께 사용한 곡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장엄 미사>는 원래 루돌프 대공의 대주교 취임을 위한 곡이었으며, 예정보다 2년 정도 늦어진 1822년에 완성되었다. 베토벤은 자신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평화와 세계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이 곡을 열심히 썼으며, 피아노 소나타로 기분을 전환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곡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렇게 대곡 미사가 완성되자 중단했던 교향곡 작곡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런던에 있던 제자 리스에게 새로운 교향곡의 작곡료 등에 대해 필하모니 협회와 다시 이야기를 진척시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결과 런던의 이 협회는 1822년 11월 작곡료를 결정하였고 베토벤도 이것을 받아들인다.
베토벤은 그때까지 구상하고 있던 을 협회를 위해 진행시키기로 하고 기악만 사용한 교향곡으로 작업하게 된다. 그러나 합창을 덧붙인다는 아이디어도 버린 것은 아니어서, 또다른 [독일 교향곡]이라는 작품에 합창을 삽입할 예정이었다. 이것은 당시 민족 의식의 고양이라는 흐름에서 독일인으로서의 자각에 입각하여 계획된 것으로, 그 마지막 악장에 실러의 [환희에 부침]에 토대를 두고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구축하려는 구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d단조 교향곡 제3악장은 바덴의 자연 속에서 작곡되어다. 이 악장에 안정되고 따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바로 그런 환경 탓이었다.
베토벤은 이 두 교향곡을 함께 작곡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아이디어를 하나로 합쳐 하나의 교향곡을 쓰기로 계획을 바꾸게 된다. 현재의 <교향곡 제9번>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전곡은 1824년 2월에 완성되며, 역사적인 초연은 빈의 케른트너토어의 궁정극장에서 이루어졌다. 곡이 끝났을 때,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은 알토 독장자가 알려주어 간신히 청중의 박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 연주회에서 돌아온 수입은 예상 외로 적었다고 한다.
이 <교향곡 제9번>은 확실히 베토벤의 위대한 산물이다. 베토벤은 <장엄 미사>에서 자신의 내적인 평안과 외적인 평화를 기원하였고, 마지막 곡 <아뉴스 데이>에서는 내적인 평안은 확신하였지만 외적인 평화에 대해서는 스케치나 초고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을 보충하는, 또는 환결짓는 것이 바로 이 교향곡이다. 모든 인류가 함께 실현시켜야 할 평화를 이상주의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또한 베토벤의 신념이었던 [고뇌를 통한 환희]라는 말은 그대로 이 교향곡 작곡 과정에서도, 그리고 곡 자체의 진취적인 자세에서도 확실히 부각되어 있다. 오스트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불온한 반동정치도 베토벤에 의해 불멸의 예술 작품으로 귀결되었다.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뇌를 통한 환희]라는 주제를 놓고 볼 때, 앞의 세 개의 악장은 제4악장의 전제로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 악장에서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앞의 세 개의 악장을 총괄하는 새로운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제1악장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공허한 시작 방법, 충실하고 장대한 코다, 제2악장 스케르초에서의 소나타 형식과 푸가토를 혼용하는 대규모의 구성법, 제3악장의 두 개의 주제를 지닌 변주곡이면서도 자유롭게 정돈된 방법,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의 변주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형식. 이 모든 것은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특징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끊임없이 큰 영향을 주었다. 악기 편성에서도 종래의 교향곡보다 수준이 높으며, 타악기 종류도 늘어나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윌리엄) 3세(1797-1840)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1806-07년의 나폴레옹 전쟁에서 참패하여 엘베 강 서쪽 지방을 모두 잃었다. 1815년 빈 회의에서 라인 지방과 베스트팔렌 그리고 작센을 대부분을 되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