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클래식

하이페츠 연주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번 /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경호... 2007. 11. 9. 09:59



* Jascha Heifetz Heifetz rehearsing at the Scottish Rite Masonic Temple in Los Angeles, September 8, 1963.
      JASCHA HEIFETZ PLAYS JOHANN SEBASTIAN BACH 하이페츠 연주: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번 /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Composer: Johann Sebastian Bach Performer: Jascha Heifetz Label(s): Istituto Discografico Italiano S.R.L. Year of production: 2002 Year of recording: 1953 Recording length: 71:44 Jascha Heifetz plays Johann Sebastian Bach 디스크 전곡듣기 J.S. Bach Concerto No. 1 in A minor BWV 1042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 단조 전악장듣기 1. Allegro 03"43 2. Andante 06"23 3. Allegro assai 03"49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제1악장 알레그로 a단조 2/4박자.
    이 악장에는 템포의 지시가 없으나 통례로 알레그로로 연주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비발디의 협주
    곡과 마찬가지로 '리토르넬로 형식', 즉 투티 부분과 독주 부분이 교대로 연주되는 형식을 답습하고
    있다. 제2악장 안단테 C장조 4/4박자.
    안단테로 되풀이되는 저음의 음형 위에 독주 바이올린이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한다.
    감미로운 이탈리아풍의 낙천적인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바흐의 엄격함이 나타나는 악장이다.
    이 악장에서는 이탈리아 작곡가의 낙천적인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바하의 엄격한 예술이 제시된
    다. 저음의 엄숙한 주제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바소 오스티나토를 이루어 똑같이 되풀이되며, 이 인
    상적인 악구에 대하여 다른 현악기군은 단속하는 8분음표로 선율을 들려준다. 마지막은 바이올린
    의 아름다운 3잇단음표의 악구로서 인상적으로 맺는다. 제3악장 알레그로 아사이 a단조 9/8박자.
    이탈리아의 쿠랑트 무곡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이 악장은 제1악장과 같은 리토르넬로 형식을 취하
    고 있다. 투티는 각 악기의 푸가토풍의 진행에 의한 것으로, 바하의 뛰어난 작곡 기법이 충분히 나타
    나 있다. 독주 바이올린은 이 리듬을 타고 나타나는데, 약간 엄격한 주제이다.
    1717년에서 1723년 사이에 쾨텐 궁정 악장 시절에 작곡되었다. 'a단조'의 협주곡은 일반적으로 '제1
    번'으로 알려진 것으로, 비발디의 같은 조의 협주곡과 그 주제가 닮았을 뿐 아니라 각 악장의 구조
    도 유사하다. 그리고 전곡에서 받는 느낌도 이탈리아풍의 감미로 것이지만, 복음악의 교치를 다한
    수법을 도처에서 볼 수 있어 바하의 엄격함을 느끼 된. 바하는 후에(라이프치히 시대) 이 곡을 쳄발
    로협주곡으로 편곡하였다.(BWV 1058).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제1악장 알레그로 E장조 2/2박자.
    이 제1악장은 리토르넬로 형식을 답습하고 있는데, 3부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중간부에서 제시된 주
    제의 갖가지 변주, 전개가 행해져 후의 소나타 형식에 가까운 형태로 되어있다.
    제2악장 아다지오 c#단조 3/4박자.
    이 느긋한 악장은 바소 오스티나토 위에 독주 바이올린이 장식적인 대위 선율을 연주하는 바하의 작
    품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친근해지기 쉬운악장이다. 제3악장 알레그로 아사이 E장조 3/8박자.
    리토르넬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악장은 상쾌한 기분에 찬 단순한 악장이다. 'a단조 협주곡'이 이
    탈리아풍의 리듬을 취하고 있는데 반하여 이 곡에서 바하는 프랑스의 발레, 론도의 형태를 이탈리아
    의 리토르넬로 형식과 복합시키고 있다. (연주시간 : 약 18분)
    이 'E장조'의 협주곡은 바하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또 그의 작품이 전혀 주목을 끌지않았던 시절에
    도 자주 연주되었었다. 이 'E장조 협주곡'은 'a단조'와 비교한다면 이탈리아의 작곡가에 의한 협주
    곡 형식의 영향이 아직 강하게 나타나 있고 리토르넬로 형식이 그대로 제1악장, 제3악장에 답습되
    어 있다.
    제1악장에서는 그것이 확대되어 3부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중간부에서 주제의 변주, 전조를 행하
    여 나중의 소나타 형식에 있어서의 전개부와 같은 구실을 하게 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또 종
    악장은 론도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후의 작곡가들에게 계승되어 갔다. 그러나 이 협주곡
    의 최대의 특색은 제2악장에 있다.

    바흐의 세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의 아들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에 의해 보존되어, 1774년 루스
    트가 편찬한 "바흐 전집"의 '실내악곡집' 제4권에 수록되어 오늘날에 전해졌다. 두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는 다른 두개의 협주곡과 같이 쾨텐 시대의 작품이다. 두개의 바이올린을 독주악
    기로서 사용하고 있는것은 합주 협주곡의 영향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곡에서는 두개의 바이올린이
    합주부외 대립해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두 개의 바이올린이 서로 대립해서 진행하며, 합
    주부는 하모니적인 또는 리듬적인 반주에 지나지 않는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은 합주 협주곡
    보다는 앞선 새로운 기법에 의한 것이다.
    이 곡이 'E장조'의 협주곡과 더불어 자주 연주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는 것은 두 개
    의 바이올린이 얽혀서 진행되고 그 기법에도 다분히 비르투오소적인 화려한 장식이 주어져 있기 때
    문이며, 또 'E장조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제2악장에 매우 아름다운 선율이 노래 불리워져 근대의 협
    주곡이 가지고 있는 서정미에 가까운 친근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다른 2곡과 마찬
    가지로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3악장 형식을 취하고 반주에는 현 합주와 통주저음 악기가 배치되
    어 있다. 이 곡도 바흐는 후에 '2대의 쳄발로를 위한 협주곡' e단조 BWV-1062로 편곡하고 있다. [성립과 초연]
    쾨텐에서 레오폴드 공작가의 악장으로 지내던 1717년부터 1723년까지의 동안에 만들어진 작품으
    로 두곡의 솔로 협주곡보다 빠른 1718년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당시의 궁정 오케스트라에는 20여
    명의 악단원이 있었으며, 같은 무렵에 쓰여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등에서도 그 편성을 상상할 수
    있다. 초연의 일시는 불분명하지만 독주자는 수석 궁정 음악가인 요제프 시피스와 궁정 음악가 마르
    틴 마르크스가 담당했다고 생각된다. 악기 편성은 독주 바이올린2, 통주 저음, 현악 5부(첼로와 콘트
    라베이스는 같은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제1악장 Vivace
    이 악장도 현의 총주로 시작된다. 특히 푸가풍의 대위법을 구사하여 처리되고 있는데, 첫머리의 주
    제가 제1바이올린으로 제시된 후 5마디째부터 5도위에서 제1바이올린이 이 주제를 모방한다. 전 악
    장을 통해서 이 주제는 다섯 번 되풀이되는데 그 사이에 독주 바이올린도 이 주제를 취급하면서 서
    로 주고 받는다. 독주 바이올린은 먼저의 주제에서 파생한 새로운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것은 제1바
    이올린을 거쳐 제2바이올린이 모방한다. 그 뒤 합주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합주 협주곡풍으로
    첫머리의 주제의 단편을 내면서, 대위법적으로 독주부의 진행에 곁들여 곡을 진행하는 푸가풍의 모
    방으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두 개의 주제가 나온 후 힘찬 합주로 끝난다. 제2악장 Largo, ma non tanto
    이 악장은 E장조의 협주곡에서처럼 이 곡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연주 시간도 다른 곡
    에 비해 상당히 긴 악장으로, 흘러가는 듯한 아름다운 멜로디가 독주 바이올린에 의하여 제시된다.
    제2바이올린에 나타난 주제는 2마디 늦게 제1바이올린에 의하여 5도위에서 모방하여 부드러운 2중
    주를 연주한다. 여기에 반주부는 두 악기의 대화에 화음을 간단히 붙이는데 지나지 않는다. 다음에
    새로운 인상적인 동기가 부드럽게 합주되는데 이동기는 그 후 종종 나타나서 주요 주제와 함께 서정
    미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중간부에서는 주제에서 발생된 동기를 더하여 독주 악기들이 아름답게 곡
    을 전개하며 가끔 단조로도 조바꿈하여 기분을 전환시킨다. 그리고는 우아한 코다를 거쳐 곡은 끝난다. 제3악장 Allegro
    이 악장은 끝악장답게 독주부와 합주부가 멋있게 어울려 쾌활한 가운데 무게있게 연주된다. 곡은 힘
    에 넘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총주로 시작된다. 이 주제는 카논 형식으로 곧 모방되어 다음 동기로 옮
    겨진다. 이 두 개의 동기로서 총주가 있은 후, 제1바이올린이 나중 동기에서 파생한 주제를 연주한
    다. 두 개의 독주 바이올린이 겹친음 주법으로 하모니를 계속하는 아래에서, 합주가 동기를 거듭 반
    복해서 연주하는 인상적인 부분이 따른다. 전체적으로 쾌활한 춤곡풍의 악상이 대위법적으로 모방,
    전개되는 악장인데 힘찬 총주로 끝을 맺는다.
    야샤 하이페츠 (1899 - 1987) 전성기의 하이페츠
    20세기 바이올린의 황제, 바이올린의 전설 등으로 불려지는 야샤 하이페츠는 86년의 생애중 83년
    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60년 이상을 세계 각지를 돌며 무대에 섰고 200만 마일 이상의 연주여행
    을 하였으며 많은 청중들에게 경악과 감동을 안겨준 반면,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좌절하게 만
    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이페츠의 생애
    하이페츠는 1901 년 2월 2일 제정 러시아의 빌나에서 태어났다. 유태인 계열의 바이올리니스트였
    던 아버지 루빔 하이페츠에게 세살때부터 4분의 1 사이즈 바이올린으로 기초를 배웠고, 일곱살에 멘
    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첫 공개 연주회를 가졌다. 당시 청중들은 "매끈하고 둥근 음색과 완
    숙한 솜씨로 작은 손가락이 매우 어려운 음표들을 유려하게 짚어나가는 모습에 마법에 걸린 듯 황홀
    하였다" 고 한다.
    1910년, 아홉살의 나이로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당대 최고의 스승
    인 레오폴드 아우어 교수에게 사사하였다. 러시아는 유럽의 음악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들을 많
    이 배출하였는데, 특히 러시아 바이올린의 역사는 19세기말 유태인혈통의 음악가들에 의해 시작되
    었으며, 그 대부가 바로 아우어 교수였다.1886년에서 1918년 사이에 나타난 숱한 명 바이올리니스
    트들 - 예프렘 짐발리스트, 미샤 엘만, 나탄 밀스타인, 에디 브라운, 막스로젠 등등 - 이 모두 아우어
    의 제자들이었다. 하이페츠 또한 아우어 교수의 탁월한 음악교육에 찬사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신동으로 대접받는 것은 질병과 같은 것이며 치명적인 것이다. 나는 운좋게도 겨우 살아남
    은 몇 안되는 신동이라 불리우던 사람이었으며, 이는 전적으로 위대한 음악선생인 아우어 교수와 음
    악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덕분이었다."
    아홉살에 아우어의 문하에 들어간 하이페츠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지 2년만에 아르투르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
    다. 이듬해인 1913년에 하이페츠는 라이프찌히에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였는데, 이
    당시 관객석에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크라이슬러와 짐발리스트가 참석하였었다. 12세
    소년의 연주를 듣고난 후 크라이슬러는 짐발리스트에게 말하기를 "자네나 나나 이제는 바이올린을
    내던져 박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네" 라고 하였다.
    하이페츠는 1917년 10월에 시베리아와 일본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카네기 홀에 데뷔했다. 이
    때 그가 보여준 초인적인 기교와 뛰어난 음악성으로 인해 그는 하룻밤 사이에 미국 음악계의 우상으
    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미국 데뷔 첫 해에 그는 뉴욕에서만 30여회의 독주 무대를 가질 정도가 되었
    다. 저명한 비평가 쵸치노프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열여섯살의 이 소년은 홀을 꽉 채
    운 청중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태연히 무대에 걸어나와서는 이 유서 깊은 홀에서조
    차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기교와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이 당시 제정 러시아는 공산당 혁명으로 붕괴되고 있었기에 하이페츠 일가는 많은 고생 끝에 뉴욕으
    로 이주하여 미국에 정착하였으며, 이후부터는 미국을 본거지로 하여 그의 음악활동이 펼쳐지게 되
    었다. 그는 1925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된다.40대에 이르러 그는 캘리포니아의 비벌리 힐즈에 편
    안한 자택을 구하였고 여생을 마칠때까지 거기서 머물렀다.
    하이페츠는 솔리스트로서의 활동외에 루빈스타인, 포이어만과 더불어 이른바 '백만불짜리 트리 오'
    를 결성하여 실내악 연주활동도 하였다. 이 트리오는 1942년 포이어만이 사망한 후에도 피아티고르
    키를 영입하여 수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명성과는 달리 이 트리오의 연주는 그다지 깊은 조화를
    들려주지 못하였는데, 루빈스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순전히 하이페츠의 음색과 고집 때문" 이었다.
    그는 1962년부터 남캘리포니아 대학에 교수로 취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점차 연주활동을 줄
    여나가 1972년 10월 23일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연주계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이후 그는 주로 후
    진양성에 힘쓰다가 1987년 12월 11일 자택에서 8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하이페츠의 음악
    사진이나 비디오로 남아있는 하이페츠의 연주 모습을 보면 매우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꼿꼿
    이 선채로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고 거의 무표정한 상태을 끝까지 유지하며 연주에 몰입한다. 그래
    서인지 하이페츠의 연주는 "차갑다"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RCA사의 찰스 오코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의 정교한 손놀림 때문일 것이
    고, 또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가리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
    은 하이페츠가 언제나 음악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본능과 같은 분석력이 있기 때문에 나
    온 말일 것이다. 그래도 또 누군가가 그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그렇다, 그는 차가운
    사람이다" 라고 말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처럼 자신의 감정을 탁월하게 조절하는 음악가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이페츠의 활잡는 방식은 활을 팔목 상부에 놓고 집게 손가락의 누름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아우어
    교수의 방식이었다. 몸에서 떨어진 좌우 팔꿈치가 현에 강한 압력을 더해 주었다.거기에다 팔목과
    팔을 움직여 내는 비브라토가 더해져 강렬한 빛을 발했다. 이같은 연주법상의 개성과 함께 하이페츠
    는 극도의 집중력과 대담함, 가까이 하기 힘든 위엄, 완벽한 콘트롤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그의
    소리는 힘이 넘쳤고 당시의 바이올계에 따라다니던 애수어린 감상적인 소리를 제거해 버렸다.
    그의 연주는 너무나도 완벽한 기교와 정확한 음정을 자랑하였으며, 이것만으로도 그는 다른 바이올
    리니스트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요제프 베흐스부르크 라는 사람은 하이페츠와의
    만남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해준다.
    "나는 비버리 힐즈에서 하이페츠와 긴 대화를 나눈 후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그 협주곡의
    어려운 패시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저를 비롯한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수수께끼입니다' 그
    러자 하이페츠는 태연히 바이올린을 집어들고 나를 위해 지독하게 어려운 패시지를 매우 빠르고도
    쉽게 연주해보였다. 나는 그가 어떻게 연주했는지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기에 한번 더 연주해달라
    고 했다. 그는 한번 더 연주해주었지만, 그래도 나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멍청한 표
    정을 보더니 슬픈 듯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그가 어떻게 그 패시지를 처리했는지 아
    직 모르고 있다."
    하이페츠의 기교적 측면은 두말할 필요없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예술성을 파악하기
    는 쉽지가 않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를 하든 싸구려 연습용으로 연주를 하든 똑같은 소리
    를 내었다고 한다.하이페츠를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꼽는 이유는 아름다운 음색과 감정의 깊이
    를 음악안에 담을줄 아는 능력과 예리한 보잉(활을 쓰는 주법), 흠잡을데 없는 심미안 등등이다. 하
    이페츠는 정확한 기교구사 이상의 예술가로서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의 연주는 냉정함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그의 연주회장에 참석한 사
    람들은 그가 들려주는 극도의 서정적인 표현 때문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하이페츠의 다소 과장된 빠르기와 극적효과를 위한 슬라이딩 주법 등은 때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음향은 비판으로 일관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했다. 맑게 트인 톤과 명
    확하면서도 거침없는 프레이징이 그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경우는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하이
    페츠의 빠른 템포가 어색함을 주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라 여겨진다.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했
    던 칼 플레슈의 말을 인용하자면 "역사적으로 절대 완벽한 연주자는 아직 없었다.그래도 완벽에 가
    까운 사람이라면 하이페츠가 유일한 예다."

      흐르는 곡 : 바이올린협주곡 2번 2악장 아다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