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는것 외에 따로 진리 없다"고
옛 선사들은 화두를 들고 오랜 씨름을 하다가
한 순간 홀련히 들려오는 소리로써 깨침을 얻었다 하는데
이를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 한다.
우리의 생각은 늘 집착이 떠나지 않는다.
뻐꾹이가 뻐꾹거리는 소리나 까마귀가 까욱거리는 소리를
그냥 듣지 못하고 우리가 과거에 그에 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의 자료(고정관념)에다가 내 주관적 판단을 감미해서
뻐꾹이 소리는 아름답고, 착하고, 평화롭고.
까마귀 소리는 추하고, 악하고, 불길하다고 느낀다.
사실 뻐꾹이나 까마귀는 자기의 특성(사물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나타냈을 뿐인데....
뻐꾹이가 슬프다고 엉엉 소리를 낼수 있는가?
까마귀가 기쁘다고 하하하 웃음소리를 낼수 있겠는가?
그들의 언행(言行)을 인간의 구미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인간 우월주의의 집착 때문이다.
그래서 소리에 집착하지 말고 그 본성을 보고 들으라 했는데
요즘 생각하면 옛날 우리 노래가락에
"아침에 우는새는 배가곱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새는 임이그리워 운다."는 가사가 나를
깨우치는것 같다.
모든 생명은 식욕과 성욕이 본능이라
자고 일어나 배 곱프니 먹이를 찾는 새의 마음과
저녁에는 사랑하고픈 본능을 우리가 보고 들으라는
깊은 뜻이 아니겠는가?
쏴~! 하고 철썩~! 하는 파도소리는
(사실 인간들만의 표현이지만 )그 소리를 듣고
"시원하다!" "위험하다!" 고 생각하는데
그 소리의 본성을 따라 깊이 드러가 보면
태초의 우주의 생성과 사물의 조형적 특성(佛性)을
깨달을 수 있다고 선사들은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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