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클래식

드보르자크 /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경호... 2007. 9. 8. 00:16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

드보르자크 /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Antonín Dvorák 1841∼1904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고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안겨 주는 음악을 '건강한 음악'이라 할 때, 서양 음악사에서 '건강한 음악'을 쓴 작곡가로 헨델, 하이든, 드보르자크를 꼽는다. 헨델의 웅대하고 장려함, 하이든의 질서 있고 명쾌함, 그렇다면 드보르자크는 어떤 특색을 지니고 있을까? 아마도 소박하고 향토적이라는 데에서 드보르자크 음악의 건강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을 감상할 때 골을 싸매고 미간을 찌푸려가며 들을 필요는 없다.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에 의해 창시된 체코의 국민음악을 더욱 확대해 세계에 내놓은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역시 <신세계 교향곡>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불려왔지만 정확한 곡명은 <교향곡 제9번 E단조 (신세계로부터) 작품 95>이다. 이 교향곡 속에는 1892년부터 1895년까지 3년 동안 그가 미국에 초빙되어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신대륙에서 받은 인상, 느낌과 원주민이나 흑인들의 노래에서 얻은 영감이 고향 보헤미아의 민요와 함께 융합되어 있다. <신세계 교향곡>은 보헤미아나 미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야릇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왜 그럴까? 가령 제3악장의 제1트리오, 플루트와 오보에의 선도로 나오는 주제를 들으면 "늴리리야…"로 시작하는 우리 나라 민요와도 어딘지 모르게 흡사한 느낌을 주어 금새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제1악장의 제2주제 속에는 흑인 영가 <장미장사 모제스 노인>, <스윙 로 스위트 챌리엇> 등에서 따온 듯한 가락이 나온다. 흔히들 그의 음악, 특히 미국에서 쓴 곡들에는 짙은 향수가 깃들여 있다고 한다. 듣는 이들도 확실히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데서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향수가 자기 고향에만 연연하는 국수주의자의 편협한 향수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향수라는 사실이다. 타고난 건전한 정신과 넓은 견식, 풍부한 인스피레이션으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세계화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전곡 연속듣기

작품해설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는 1893년 드보르자크가 미국에 머물던 3년이라는 기간에 만들어진 곡으로 그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보헤미아의 이주민이 사는 촌락 등을 찾아 다녔으며 거기에서 그들에게 유행하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흑인의 민요를 연구, 그 당시 미국인들도 잘 알지 못하던 흑인영가를 이 교향곡에 사용한다.

'From the New World'라는 이름은 당시 원장으로 있었던 뉴욕 국립 음악원의 창설자 자넷 사바 부인의 제안에 의해서 붙여지게 된 것으로 여기서 신세계는 미국을 의미한다. '신세계로부터' 교향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실린 곡은 이중 제2악장 라르고이다. 5음 음계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선율은 이 교향곡을 유명하게 하였으며 드보르자크의 향수를 느낄수 있다. 잉글리시 호른에 의해 연주되는 약간은 쓸쓸한 이 선율은 흑인 영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드보르자크는 뉴욕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심한 향수에 빠져 견딜 수 없었으므로, 미국의 일부이긴 했으나 고향 보히미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이오와주의 스필빌에서 시끄러운  도시를 피해 요양하고 있었다. 창작에 몰두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인데, 「신세계로부터」는 여기서 완성되어 1893년12월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제 1악장 Adagio
짧은 서주부 뒤에 조용하고 낮은 현악기가 주제를 나타낸다. 맑고 투명한 관악기가 이에 응하면, 이어 최강주(最强奏)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진다. 주제의 전개에 플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부주제가 나타난다. 아메리카 인디언 음악의 조각은 이 부분에서부터 엿보이기 시작하였고, 작은 노래를 바탕으로 해서 하나의 완성이 이루어졌다. 흑인의 노래인「낮게 튀어라, 내가 탄 마차」의 가락은 독주의 플루트로 이끌려 나온다.

제 2악장 Largo
관악기의 장중한 화성이 세 번 반복된 뒤, 현이 약음기를 달고 가장 여린 연주로 반주하면, 잉글리시호른이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주제를 불기 시작한다. 이 가락은 울적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라르고 (Largo)
무겁고 장중하며 느린 속도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이론적으로는 라르고(메트로놈 매분 40-69박)와 라르고의 축소어 라르게토(69-100)는 아다지오(100-126)보다 더 느린 것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구별이 항상 지켜지지는 않는다. '라르고'라는 말은 악곡의 악장의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헨델의 라르고>라 불려지는 가장 유명한 라르고 중의 하나는 오페라 <세르세>의 아리아로서 이 곡은 각종 악기를 위하여 편곡되어 왔다.

제3악장 Scherzo
비애와 환희의 중간과 같은 감정이 있다. 가락은 명백히 비애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리움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기쁨으로 넘쳐 있다.

제 4악장 Allegro con fuoco
짧고 힘찬 서주 뒤, 호른과 트럼펫이 다른 악기의 도움을 받으며 대담하고 발랄한 행진곡 풍의 주제를 힘차게 연주한다. 이 제 1주제의 반복 후 가장 아름다운 제2주제가 태어난다. 여신의 청초한 모습이 화원속에서 생동하는 것처럼, 클라리넷의 맑은 울림은 다른 악기를 압도하고 있다.

드보르자크 Dvorak, Antonin Leopold 1841~1904 체코의 작곡가.

여관과 정육점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장남으로 프라하 근교 넬라호제베스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때에 가업을 계승시키려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프라하의 오르간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하였다. 이시기에 극장과 음악회를 다니며 베를리오즈와 리스트, 바그너의 음악을 감상하였다. 졸업후 레스토랑 등에서 비올라 주자로 생활하였고, 1862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 가설극장 관현악단에 입단하여 10년동안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1866년 이곳에 부임한 스메타나의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아, 스메타나 이후 체코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다. 1861년부터 실내악을 작곡하기도 하였으며, 1865년에는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1873년 그가 3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민족적 애국시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을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1874년 성 아다르베르트교회의 오르간주자가 되어 단막극 《완고한 자들》로 가설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1875~77년까지 1남 2녀를 차례로 잃는 슬픔을 안게되었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 해마다 작품을 출품하였고 1877년 심사위원인 브람스로부터 작품을 높게 평가받아 베를린출판사에서 작품이 출판되어 국내외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84년 빈 궁정 오페라 총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단념하고 조국에 머물렀고, 1884년부터 수회에 걸쳐 영국을 방문하여 대환영을 받았다. 1891년 프라하 음악원 교수에 취임하고 1892년 뉴욕내셔널음악원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음악원장 및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세계 교향곡》 등 많은 걸작을 작곡하였다. 1895년 귀국하여 1901년 프라하음악원장으로 취임하고 같은 해 오스트리아 종신 상원의원으로 추대되는 등 만년에 영예를 얻었으나 1904년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초기작품은 베토벤, 슈베르트의 음악구성에 입각한 작품을 썼으며 다음으로 바그너와 브람스의 수법을 사용하였으나 후기까지 영향을 준 작곡가는 바그너였다. 드보르자크는 슈베르트와 비견될 만큼 다작으로, 샘솟듯 악상을 거침없이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음악은 19세기 낭만 음악을 대표하며 국민주의적 성향을 가지기도 하는데 즉 건전한 이념, 미래에 대한 희망, 신에 대한 경건, 자연과 조국에 대한 정열 등이 그의 작품에 기반을 이루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다양한 레파토리를 구사하고 체코 지방의 정서를 되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품으로 《신세계교향곡》 《현악4중주곡》 《아메리카》 《첼로 협주곡》 등의 명작을 남겼으며, 그 밖의 작품에 오페라 《루살카》, 관현악곡 《슬라브춤 무곡》, 피아노 3중주곡 《둠키》, 교회음악 《스타바트 마테르》 등과 교향곡 9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