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삼경(三境)과 삼량(三量)의 분별(강의 - 5. 獨影境과 帶質境)
성경(性境)과 대질경(帶質境)과 독영경(獨影境)에서
오진(五塵)의 실법(實法)을 반연할 때에는 성경(性境)이다.
만약 뒷 생각이 일어나 길고 짧다는 등의
임시로 나타나는 색(色)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인연을 지을 때에는
진독영경(眞獨影境)과 사대질경(似帶質境)이다.
그 다음에 인식의 대상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성경(性境)과 대질경(帶質境)과 독영경(獨影境))에서
오진(五塵)의 실법(實法)을 반연할 때에는 성경(性境)이다.’
실법은 눈앞에 있는 효과 있는 대상을 실법이라 그럽니다.
성품 성(性)자 성경(性境)은 실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보세요.
찻잔이 우리 눈앞에 있죠.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성경(性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것이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주석(註釋)에 보면
진실한 경계로 반연하는 마음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랬어요.
그게 뭐냐 하면,
제팔식(第八識)의 상분(相分-種子 五根 器世間)과 전오식(前五識) 및
오구의식(五俱意識)의 상분등을 포괄한다. 이렇게 되어 있죠.
제8식은 아뢰야식이고
오구의식(五俱意識)은 전오식[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하고
같이 작용하는데, 이때는 오근(五根:눈, 귀, 코, 혀, 피부)을 의지합니다.
전오식에서 앞 전(前)자를 쓰는 것은
대상을 인식할 때 제일 먼저 앞에서 인식하기 때문에 그렇고
이것의 대상이 성경(性境)입니다.
제8식의 대상은 오근(五根, 有根身), 종자(種子), 기세간(器世間) 이렇게 세 갭니다.
오근은 몸을 얘기하고,
종자는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얘기 합니다.
이웃집에 누가 시집을 보냈다면
사람들이 ‘저 집 딸에 신랑은 어떤 사람인가’하고 가서 보죠.
그러고 나서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10년 뒤에 누군가를 길에서 탁 만났어요.
‘저사람 어디서 본거 같은데.....’ 하다가
“아! 10년 전에 이웃집에 딸래미 신랑이구만.”
그렇게 대화가 오고가죠.
10년 전에 스치듯이 한 번 봤지만 그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가
‘아! 이게 누구 아니냐’, 이렇게 되죠.
이게 종잡니다.
기세간(器世間)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계를 얘기합니다.
기는 그릇 기(器)자, 세(世)는 시간을, 간(間)은 공간을 얘기합니다.
시공간이 있는 눈에 보이는 이 세계는 그릇과 같은 거죠.
집을 보면, 집안 공간에 우리가 많이 들어와 있는 게
마치 무엇인가 담겨 있는 그릇과 같잖아요.
이와 같이 우주 삼라만상을 기세간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제8 아뢰야식의 대상[오근, 종자, 기세간]을
상분(相分)이라고 얘기 합니다.
상분은 모양 상(相), 나눌 분(分), 모양을 갖고 있는 부분인데
이렇게 모양을 갖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인식 대상이 되거든요.
이것은 사실 상식(相識)이라 해서 아뢰야식이에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다 아뢰야식이지만 그것도 인식 대상이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주관[見分]도 마음이고 객관[相分]도 마음이라는 뜻이에요.
주관의 마음이 객관의 마음을 안다,
주관의 아뢰야식이 객관의 아뢰야식을 본다는 거죠.
좀 어려운 부분이죠.
그래서 이런 것도 성경(性境)에 속한다는 겁니다.
성경은 실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 주석에 ‘진실한 경계로 반연하는 마음을 따라가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참 중요한 말이에요.
인식 했던 대상[찻잔]이
내가 마음을 돌려서 다른 것을 인식한다 해서 따라 갑니까?
안 따라가죠.
반연[인식]하는 마음은 안 따라갑니다.
그래서 실체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거죠.
성경에 저렇게 있는데
그러면 이게 실체로 존재하느냐 이거에요.
이게 실체로 존재합니까?
[찻잔] 던지면 깨지잖아요.
그러면 저 성품, 성경이라는 것이 진짜가 아니네, 그죠?
깨진다면 실체가 아닌데
왜 성경은 실제적인 경계로 얘기를 하고 있느냐.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러분들 지금까지 유식 공부하면서 배운 게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가짜다,
변하고 깨질 수 있고 그런 대상이라고 배웠는데
성경은 왜 실제적인 것이라고 했느냐 이거죠.
말씀을 드리죠.
찻잔을 실체가 아닌데 실체로 인식된다 이거죠.
진실이 아닌데도 던지면 깨지고 부서지는데도 마치 안 부서지는 것같이
모양과 색깔이 그대로 있는 것같이 이렇게 보이는 것은
아뢰야식의 종자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그 아뢰야식의 종자는 실체라 하는 종잡니다.
실체라는 종자가 바깥에 탁 나와 가지고
마치 실체와 같이 이렇게 보이는 거예요.
결국 실체라고 느껴지는 것은 내 안에 종자가 발현되어 가지고
실체 노릇을 하니까 실제로 느껴지는 거예요.
이해가 됩니까?
정리를 하면,
성경의 특징은 마음 따라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은 종자에서 왔다.
종자는 아뢰야식 종잔데 그것도 실체라는 종자에서 왔다 이거죠.
실체에서 나왔다, 이게 전오식에 나타나는 성경이에요.
성경은 뭡니까?
색깔 있죠, 모양도 있고, 이것만 있습니까?
소리, 맛, 향기, 촉감 같은 거죠.
그러면 몸은 어때요?
몸도 객관적으로 물질적으로 인식 되죠?
그래서 아뢰야식의 대상인 유근신도 우리가 봤을 때는 성경이라 할 수 있는 거죠.
종자도 기세간도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대상이에요.
그렇다면 전오식의 대상이 성경인데,
이게 알고 보면 기세간을 얘기하는 거죠.
우리 몸을 얘기 하는 거라면
이 아뢰야식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바로 상분입니다.
그래서 성경(性境)이라는 것은
모양을 이루고 있는 부분, 상분(相分)이에요.
모양을 이루고 있는 부분은 아뢰야식이 객관화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그렇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어렵지요?
할 수 없지 뭐. ㅎㅎㅎ
그 다음에 대질경(帶質境)은 도대체 뭐냐.
주석(註釋)에 보면
마음이 경계를 반연할때 나타나는 모습에,
반연하는 본질이 있으면서도 경계의 본래 모습을 얻지 못한 것이다.
경계의 본래 모습을 얻지 못하다는 것은
손으로 쥘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거죠.
잡아서 확인이 안 되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이 경계는 마음과 경계의 두 가지 힘이 합해져 성립된다.
성경(性境)과 독영경(獨影境)의 중간에 위치한다.
이것은 제칠식이 제팔식 견분이 상분을 반연하는 것과
제육식이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어렵죠?
쉽게 얘기 하죠.
대질경(帶質境),
띠 대(帶), 본질 질(質), 경계 경(境)자를 씁니다.
대질경은 본질을 띠고 있을 뿐이지
그것을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의식상에서 대질경은 도대체 무엇이냐 이거죠.
보통 말나식이 잠재된 자아의식이라 했죠.
의식의 심천에는 말나식이 있는데,
말나식의 견분이 아뢰야식의 견분을 인식하는 겁니다.
견분(見分)은 내가 대상을 보는 부분이죠.
보는 부분이 있고 보여 지는 모양의 부분, 상분(相分)이 있죠.
말나식이 아뢰야식의 견분을 인식하니까 보여 지는 상분으로 바뀌어 버리죠.
그러니까 말나식 안에 있는 것이 자아의식인데
이것은 의식상에 드러나지 않는 겁니다.
이 마음[자아의식]이 아뢰야식의 견분을 보고
‘저것은 내다’하고 인식하는 거예요.
상분화 하는 거죠 .
그러면 말나식은 견분이 마음이죠?
제8식의 견분도 마음이죠?
그러니까 잠재의식 속에서 마음이 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이것을 진(眞)자를 써서 진대질경(眞帶質境)이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잠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상에서는 몰라요.
이런 것은 인정은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여러분이 체험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수행을 하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식의 대질경은 뭐냐 이거죠.
이것은 의식이 보는 부분 견분이 있고, 보여지는 부분 상분이 있어요.
마음이 물질되어 있는 형상을 인식하는 거예요.
이것은 사대질경(似帶質境)이라 그럽니다.
그러면 의식이 대상을 인식할 때 진짜 실체같이 본질 같은 게 나타나는데
본질이라는 게 높다 낮다, 크다 작다하는 색을 띠고 있는 모양이 있어요.
이게 색을 띠고 있는 경계다 이거죠.
색을 띠고 있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실제 색은 아니에요.
그럼 이게 뭐냐 하면 과거기억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거죠.
여러분들은 10년 전, 20년 전에 결혼할 때 모습이 떠오릅니까, 안 떠오릅니까?
떠오르죠?
보세요, 결혼할 때 모습이 강력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떠오르는 겁니다.
과거 기억이 떠오르는데, 모양과 색깔을 갖고 있죠.
그러면 그 모양과 색깔이 마치 있는 것 같이 나타난 거예요.
띨 대(帶), 띤다하는 것은 나타난다 이거죠.
그것을 사대질경(似帶質境)이라 그럽니다.
사(似)라는 것은 비슷하다 이거예요.
진대질경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거죠.
여기서는 의식상에서만 얘기하기 때문에 사대질경만 얘기 합니다.
자! 그러면 독영경(獨影境)은 뭐냐.
홀로 독(獨)자, 영상 영(影)자, 홀로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주석(註釋)을 보면
반연하는 마음에 의지해 허망한 분별로 일어나는 경계.
달리 본질이 없고 영상일 뿐이다.
제육의식의 허망분별로 나타나는 토끼뿔이나 거북이털 및
허공의 꽃과 같은 것이다.
영상은 영상인데 과거를 회상해서 기억하는 영상은 아니고
현재 나타나는 영상이에요.
우리가 의식을 견분과 상분, 둘로 나눕니다.
의식의 상분을 오진(五塵 : 형상, 소리, 향기, 맛, 촉감)이라 그랬죠.
이것을 인식하는데 견분이 인식하죠.
그런데 우리 안에 견분에서 바로 영상이 나타나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견분이 홀로 영상을 나타낸다 이거죠.
실제 바깥 대상을 인식하는 게 아니고
견분(주관) 자체가 바로 영상으로 객관화 되어서 나타나는 걸 독영,
홀로 나타난다 이거죠.
이런 것은 착각을 얘기 합니다.
독영경은 착각이에요.
전 시간에 얘기 했지만 새끼를 보고 뱀으로 착각하는 것,
이때 뱀이 독영경입니다.
그러면 뱀으로 착각했을 때 뱀이 있다고 보는 의식은 어떤 거예요?
현량입니까, 비교할 비자 비량입니까, 아닐 비자 비량입니까?
이것은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이 되는 거예요.
눈병이 나서 허공을 봤을 때 꽃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독영이죠.
그래서 ‘만약 뒷 생각이 일어나 길고 짧다는 등의
임시로 나타나는 색(色)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인연을 지을 때에는
진독영경(眞獨影境)과 사대질경(似帶質境)이다.’
진독영경(眞獨影境)은 현재에서 일으키는 영상이고,
사대질경(似帶質境)은 색을 반연하기는 하는데,
과거의 생각 속에 나타나는 영상입니다.
자비수관 하신 분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실 겁니다.
수행할 때 몸을 관찰 하는데
자비손으로 어머니가 아기를 쓰다듬듯이 몸을 쓰다듬어 줍니다.
쓰다듬어줄 때 심리를 촉이라 그럽니다.
촉이라는 심리가 일어나니까 접촉이죠.
그 다음에 느낌이 일어나면 수(受)라는 감각이 일어나요.
느낌이 딱딱한 느낌이 있고 부드러운 느낌이 있죠.
그리고 마치 물이 흐른다든지, 밀고 당기는 느낌이 오죠.
진동도 일어납니다.
딱딱한 것은 흙의 요소고, 밀고 당기는 것은 물의 요소고,
진동은 바람의 요소에요.
그것만 있는 게 아니고
냉기가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온기가 일어나는 사람이 있죠.
이것은 불의 요소고,
그 다음에 몸에 진종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바람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어요.
이것은 기를 얘기합니다.
또 몸이 텅 비어지는 허공의 요소가 있죠.
자비수관 수행하면 다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 이때,
부드럽다, 딱딱하다 하는 것은 전부다 감각이죠.
이런 데서 나타나는 영상이 있는데, 이게 독영경입니다.
이런 영상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이미지)이라는 심리가 있습니다.
딱딱하고 부드럽고 밀고 당기고, 이런 현상이 생기는데
이것이 영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상작용입니다.
감각을 통해서 영상화 된 거예요.
독영경이죠.
그런데 이런 영상이 과거와 매체되어서 나타나는 것은 대질경입니다.
독영경은 흙, 물, 불, 바람, 이게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나요.
이것이 과거가 아니라면 독영경이에요.
자비수관 수행하는 사람 중이 이런 사람이 있어요.
자비손이 팔은 지나갈 때
40년 전, 7살 무렵에 팔을 부러뜨렸던 영상이 나타나면서
심한 통증이 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겁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 다친 그 팔에 자비손이 갔을 때
피부 속에, 세포 속에 있는 여러 가지 정보가 영상으로 나타나고
아픔이라고 저장되어있던 영상이 어우러져서
그 당시 상황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것은 과거죠?
과거니까 대질경이라 그럽니다.
이런 것은 대개 독두의식(獨頭意識)에서 나타납니다.
다음 시간에 이것을 공부 하겠는데,
우리가 수행을 하면 이런 식으로 느낌을 통해 가지고
생각 상이라는 이미지로 나타나는 영상에는
독영경과 대질경, 두 가지가 있다 이런 말이에요.
이렇게 이 분이 수행하는 중에 땀이 날 정도로 통증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까 40여년 전에 일을 보게 된 거죠.
평소에 부딪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 있었는데
그 체험을 통해서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40년 전의 사건이 현재까지 영향을 줘서 사람을 두렵게 했지만
그것이 뭔지 몰랐던 것이죠.
그런데 수행을 통해서 그 영상을 보면서 거기서 벗어난 거죠.
또 이런 경우도 있어요.
몸이 다 사라졌는데 영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영상은 알고 보니까
현재의 영상이 아니고 전부 과거의 영상들이에요.
과거 전생을 보는 거죠.
이분은 이유도 없이 늘 마음이 불안했던 거예요.
그러다가 수행을 하면서 그 불안한 이유를 알게 되는 겁니다.
전생에 영상이 나타나는 거죠.
그 영상이 자기 전생의 가족관계가 적나라하게 나타난 겁니다.
나타나고 그것을 봄으로서 불안이 해소된 거예요.
자기가 왜 불안했던가를 그 영상을 통해서 알게 된 거죠.
이런 것은 전부다 사대질경에 속합니다.
이렇게 수행을 하다보면 과거의 영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수․화․풍․공 5대가 결합되어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면
그것은 응당 독영경일 가능성이 있고,
그 내용이 과거의 것이라면 그것은 대질경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귀신같은 것을 보는 사람도 있거든요.
귀신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귀신도 영상이이고 독영이죠.
그런데 그것을 점검을 안 해주면 점치러 갑니다.
굿을 하거나 스님한테 가면 당장 천도하라 그럽니다.
그런데 귀신도 영상일 뿐이에요.
영상은 가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영상에 많이 속죠.
남자들은 잘 안 속는데 여자들은 거의 90% 속습니다.
그래가지고 굿을 하고 천도를 하고,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죠.
우리가 귀신에 씌었다 하면 그 증상이 있습니다.
그 증상을 보고 천도도 하고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단지 영상으로 나타난 것을 가지고 얘기 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거죠.
그래서 우리가 법문을 듣고 제대로 진실을 알면 지혜가 생겨서
그런데 매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오늘 내 이야기 듣고 천도한 사람들은 생각하겠네요.ㅎㅎㅎ
완전히 이거 잘못알고 천도 했는지...
아이고 돈만 버렸다 이렇게 생각 하지 말고
그래해도 뭐 영가가 하나라도 걸려서 천도 안 되었겠나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 지니까 그래 생각 하세요.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