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삼경(三境)과 삼량(三量)의 분별 (강의 - 4. 現量, 非量, 比量)

경호... 2011. 9. 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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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삼경(三境)과 삼량(三量)의 분별(강의 - 4) 전 시간부터 의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복습해 보면, 제6의식은 현량(現量), 비량(非量), 비량(比量)이라고 얘기 합니다. 현량은 직관이고, 추리도 하니까 비량(比量)이고, 잘못된 추리도 하니까 비량(非量)이다. 또 성경(性境), 대질경(帶質境), 독영경(獨影境), 이것을 오늘 공부할 겁니다. 그런데 의식에는 네 가지가 있어요. 명료의식이 있고 독두의식(獨頭意識)이 있는데, 독두의식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의식이라 해서 몽중의식(夢中意識), 선정 상태에서 인식하는 의식으로 정중의식(定中意識), 그리고 독산의식(獨散意識)이 있습니다. 이 독산의식은 흩을 산(散)자를 쓰는데, 마치 허공에 꽃을 보는 것 같은 그런 것을 얘기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실질적인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게 아니고 우리 의식 안에 있는 독견(獨見)이라 해야 되겠죠. 이게 개념인데 이걸 인식하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명료의식이라는 공부를 했습니다. 명료의식이라는 것은 각각의 문[五根]을 통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의식을 얘기합니다. 그 의식은 아시다시피 직관, 현량입니다. 먼저 공부한 내용 중에 ‘처음 한 생각이 오근(五根)과 더불어 같이 인연지어질 때에 인연지어지는 처음 순간의 마음에서 오직 현량(現量)으로 실지 오진의 경계를 반연하는 것이다.’ 이랬어요. 그래서 인연 짓는 처음 순간의 마음이라 하는 것이 솔이심(率爾心)이라 그러는데, 공부하다 보면 뒤에 나옵니다. 주석(註釋)에 보면 ‘심식(心識)이 경계를 반연하여 상속하는 데는 솔이심(率爾心)과 심구심(尋求心)과 결정심(決定心)과 염정심(染淨心)과 등류심(等流心)의 다섯 가지가 있다.’ 이랬어요. 이것은 대상 인식하는데 있어서 심리가 다섯 단계로 변해가는 모습을 얘기하는 겁니다. ‘솔이심은 홀연히 경계를 반연하는 첫 찰나의 마음을 말한다.’ 이것은 눈으로 사물을 보고 탁! 인식하는 거, 귀를 통해가지고 소리를 탁! 인식 하는 것처럼 첫 번째 인식하는 것이 솔이심이에요. 첫 찰나에 인식하기 때문에 선악이 없습니다. 그냥 바로 반연하는 마음이에요. 그 다음에 일어나는 게 심구심(尋求心)이에요. ‘심구심은 반연하는 경계가 무엇인지 찾고 살피는 마음이다.’ 척! 보고 저것이 무엇이라고 인식하면서 다시 저게 무엇이다하고 살펴보는 거죠.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사람을 볼 때도 척! 보고난 뒤에 다시 살피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세 번째는 결정심(決定心)입니다. ‘결정심은 찾고 살피는 마음에서 판단을 내리는 마음이다.’ 아! 이건 누구다, 이건 무슨 물건이다, 하고 판단을 내리죠. 판단을 내리면 다음에 오는 게 염정심(染淨心)이에요. 물들 염(染)자, 깨끗할 정(淨)자를 씁니다. ‘염정심은 판단내린 마음에 좋고 싫음이 개재되는 마음이다.’ 판단 내린 마음에 선악을 구분하는 거죠. 선악이 구분되어 있으면 그냥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저 사람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하고 끝나지 않죠?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나고, 그 다음날도 생각나고, 이런 것을 등류심(等流心)이라 그럽니다. ‘등류심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세력을 가지고 같은 흐름으로 이어지는 마음이다.’ 마음이 계속 이어져 간다 이거죠. ‘여기서 솔이심은 한 찰나에 이루어지지만 나머지는 여러 찰나에 걸쳐 형성된다. 솔이심은 무기성(無記性)이다.’ 여기는 솔이심은 선악이 아닌 무기(無記)의 성품이라고 했는데, 대상을 첫 번째 찰나에 탁! 인식하는 마음, 그걸 현량, 직관이라 그럽니다. 자! 이제 본문을 봅시다. 그러나 이 순간을 지나 뒷 생각으로 이어지면 추론해 아는 비량(比量)과 잘못 아는 비량(非量)에 다 통한다. 길고 짧다는 등의 임시로 나타나는 색(色)을 반연하여 아는 것은 비량(比量)이요, 혹 오진의 경계 위에서 집착을 일으킬 때에는 비량(非量)이다. 곧 명료의식은 앞과 뒤로 이어지며 현량(現量)과 비량(比量)과 비량(非量)에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을 지나 뒷 생각으로 이어지면 추론해 아는 비량(比量)과 잘못 아는 비량(非量)에 다 통한다’ ‘뒷 생각’이라는 것은 심구심, 결정심, 염정심, 등류심 이런 거죠. 추론은 추리죠, 추론해서 비교해서 헤아리는 것과 잘못 아는, 아닐 비(非)자, 비량에 통한다. 량(量)은 헤아릴 량자, 대상을 인식한다고 지난번에 배웠죠. 여기서 현량하고 비교할 비(比)자 비량하고, 아닐 비(非)자 비량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되겠죠. 현량, 직관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 직관이냐, 이걸 공부를 해야 됩니다. 전 시간에도 얘기 했지만 또 반복을 하겠습니다. 현량(現量), 현은 나타날 현(現)자, 량은 헤아릴 량(量)자죠?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현재 이 순간을 현(現)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현량은 현재 눈앞에 있는 것을 헤아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현량은 남이 모르고 인식한 자기만 아는 게 특징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가 아는 데 있어서 효과를 본다는 거예요. 눈앞에 이것이 무엇이다 하면 효과가 있는 거예요. 효과가 있는 대상을 인식한다 이 말이죠. 반대로 효과가 없는 대상은 직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분별이 없는 무분별 입니다. 분별함이 없다는 것은 선악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즉각적으로 대상을 반연하는 마음일 뿐이에요. 그런데 즉각적 인식인 현량은 의식만 있는 게 아니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도 현량에 속합니다. 하지만 말나식은 현량이 없습니다.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은 잘못 된 인식이기 때문에 대부분 말나식[잠재의식]에 일어나고요, 아뢰야식은 현량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의식, 아뢰야식은 현량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의식에서의 현량은 대체적으로 감각기관을 의지해서 같이 작용하기 때문에 오구의식(五俱意識)이라 그럽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같이 의식이 대상을 파악하는 거예요. 이게 현량이에요. 그리고 현량은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직접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직접지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매개를 의지해서 간접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게 아니고 바로 눈앞에서 증명될 수 있는 것을 인식 대상으로 한다는 거죠. 실험을 해봅시다. 이게 뭡니까? 찻잔. 여러분 ‘찻잔’이라고 이렇게 말을 하면 현량이 아니고 비량(比量)입니다. 왜그러냐 하면, ‘찻잔’이라는 언어를 의지해서 대상을 인식했기 때문에 이것은 간접인식이라 그럽니다. 추론한다, 추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매개를 근거로 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추론하고 추리하는 게 상당히 발전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생기면 생각이 막 일어나죠. ‘아! 그래서 저 사람이 그 때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했구나,’ 이렇게 추리를 하는 거죠. 눈앞에 대상이 없더라도 추리가 가능 한 것은 언어를 얘기하기 때문에 바로 그런 데 있습니다. 그래서 눈앞에 대상이 있더라도 언어를 얘기하면 그것은 전부다 비교할 비(比)자 비량(比量)이다 이겁니다. 그리고 언어를 의지해서 대상을 인식할 때는 자기만이 아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같이 알죠. 이건 뭡니까 물으면 ‘찻잔’입니다 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직관인줄 알지만 ‘찻잔’이라는 말을 내는 순간 다른 사람도 알아버리잖아요. 그 언어를 통해서 ‘찻잔’이라는 인식이 가능해진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다 알아들으면 그것은 추론입니다. 비량(比量)이죠. 그렇지만 자기만이 안다면 현량, 직관입니다. 그럼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은 뭐냐. 의식상에서 일어나는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은 착각을 얘기 합니다. 새끼를 보고 뱀으로 착각하고 솥뚜껑보고 자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입니다. 잘못된 인식을 얘기 합니다. 그런데 현량(現量), 비량(非量), 비량(比量)은 모두 의식상에 있기 때문에 사실 다 통합니다. 추리, 비량(比量)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항상 대상을 인식할 때 매개물을 이용 합니다. 두 번째 눈앞에 대상이 없어도 인식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식은 온갖 것을 다 인식 대상으로 하는 거예요. 그럼 예를 들어서 한 번 해보죠. 지금 미국 대통령이 누구죠? 버락 오바마죠. 그럼 여러분은 오바마가 누군지 압니까? 만나 본적도 없고 눈앞에도 없죠? 그런데 여러분은 오바마를 알잖아요. 이렇게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라고 아는 것을 비량(比量)이라 그럽니다. 눈앞에 없어도 오바마라는 이름을 통해서 얼굴이라든지 키라든지 대충 감 잡잖아요. 이게 비량입니다. 그렇게 어려운거 아니죠? 그 다음에 ‘길고 짧다는 등의 임시로 나타나는 색(色)을 반연하여 아는 것은 비량(比量)이요,’ 길다, 짧다, 눈앞에 색깔, 이런 것을 반연한다면 비량이라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길다, 짧다 하는 것이 추리가 가능한 거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임시로 나타나는 색’이라 했는데, 색깔이라는 것이 딱 눈앞에 결정 되어진 게 아니고 계속 바뀌어간다는 거죠. 어떤 조건에 의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게 색(色)입니다. 여기에는 이것을 가색(假色)이라 그랬습니다. 이 가(假)자는 거짓이란 뜻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빌린다는 뜻도 있어요. 색을 빌렸다, 진실한 색이 아니다 이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알기위해선 추리로 알 수밖에 없죠. 이렇게 추론해서 알기 때문에 비교할 비(比)자 비량(比量)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혹 오진의 경계 위에서 집착을 일으킬 때에는 비량(非量)이다.’ 오진(五塵 : 색깔, 소리, 향기, 맛, 촉감), 다섯 오(五)자, 티끌 진(塵)자인데, 내 밖에 존재하면서 그것이 변하기 때문에 티끌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집착을 일으킬 때 비량(非量)이다, 착각이다 이 말이죠. 아까도 얘기 했듯이 길을 가다가 뱀을 봤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까 그건 뱀이 아니고 새끼더라, 새끼를 착각해서 뱀으로 오인한 거죠. 이렇게 있지도 않은 뱀이 있다고 생각하고 인식했기 때문에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 잘못된 인식이다 그런 겁니다. 그런 경우가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영화 같은데 보면 그런 거 나오잖아요. 경찰이 도둑놈을 쫓아가는데 도둑은 안 잡고 도둑을 쫓는 시민을 잡아가지고 도둑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잡아가지고 취조를 해보니까 “아니 내가 도둑 잡으려고 뛰어갔는데 나를 도둑으로 몰다니..”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죠. 그 때 그 경찰관이 오인을 한 거죠. 그럼 그 경찰관의 인식은 비량(非量)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잘못된 인식을 하면 일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정확한 추리를 할 때는 비교할 비(比)자 비량(比量)인데, 그 추리가 맞지 않는 것은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이 되는 거예요.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이든, 비교할 비(比)자 비량(比量)이든 거기엔 분별이 있고 반드시 선악이 따릅니다. 윤리적이라는 거죠. 하지만 현량(現量)에는 무분별이기 때문에 선악이 없어요. 이것은 여기에는 안 나오는 건데, 우리가 직관하는 것은 어디서 일어납니까? 눈으로 보는 거죠. 곧을 직(直)자에 볼 관(觀), 곧게 본다는 거죠. 이 말은 분별이 없고 생각이 없이 바로 본다는 거죠. 어디서 일어나느냐? 눈앞이죠, 그렇죠? 눈으로 보는 것은 분별이 없어요. 그런데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이든, 비교할 비(比)자 비량(比量)이든 이런 인식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머릿속에서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선악의 구분이 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가 있는 거죠. 우리가 대화중에도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현량(現量)입니까, 비량(比量)입니까? 비량(比量)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대화하지만 언어를 매개로 해서 인식을 하기 때문에 비교할 비(比)자 비량(比量)인겁니다. 이렇게 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은 선악이 들어간다는 거죠. 그러면 심증적인 것은 어때요? 전 시간에도 얘기 했듯이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운다면 그건 현량(現量)입니까, 비량(比量)입니까? 현량(現量)? 현량(現量) 맞죠? ㅎㅎㅎㅎㅎ 울음은 언어와 결합될 수 있기 때문에 비량(比量)입니다. 우리가 의식이 무엇이다 공부를 하잖아요? 이런 공부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현재 작용하는 우리의 마음을 잘 알면, 여러분들이 잘해서 추리한다든지, 또 잘못 된 추리를 하고 있는지도 반성할 수 있는 계기도 되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