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청정한 마음경계 허공과 같다 (강의 - 1)
‘청정한 마음경계 허공과 같다’
청정한 마음은 성품을 얘기합니다.
요즘에는 인식 대상을 경계라 하는데,
청정한 마음을 객관적으로 보니까 그 마음이 텅 비어서 허공과 같다,
허공에 비유해서 하는 말이죠.
앞에서 자타(自他)을 했죠.
다른 사람이 타가 되면 자기는 자가 되고,
몸이 타가 되면 마음은 자가 되고,
그 다음에는 번뇌는 타가 되고 번뇌를 인식하는 지혜는 자가 되고,
지혜도 대상을 인식해서 소득이 있는 지혜는 타가 되고
소득이 없는 지혜는 자가 되고,
또 그 무소득의 지혜를
청정한 지혜는 타가 되고 더 청정한 지혜는 자가 되죠.
그 다음에는 주객이 없는 공을 얘기 했죠.
여기 와서는 텅 비어 있는 것을 다시 들여다보니까
텅 비어 있는 것은 청정하드라.
이 때 청정이라는 것은 번뇌망상이 다 사라진 거죠.
뿐만 아니라 있다, 없다하는 견해도 없는 그 자리,
성품에 도달한 것을 얘기 하죠.
그래서 여기에서는 성품의 본질에 대해서 얘기 합니다.
그럼 순서가 딱 맞죠?
자, 봅시다.
『불모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이여, 눈이 색을 보지 않고 귀가 소리를 듣지 않으며 코가 냄새를 맡지 않는다.
혀가 맛을 보지 않고 몸이 촉감을 느끼지 않으며 마음이 법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깨달음 자체도 여의었기 때문에
눈과 색의 경계를 벗어났고 귀와 소리의 경계를 벗어났으며
코와 냄새의 경계를 벗어났다.
혀와 맛의 경계를 벗어났고 몸과 촉감의 경계를 벗어났으며
마음과 마음으로 아는 법의 경계를 벗어난 것이다.
경계라는 말이 어려우면 여기서는 빼도 됩니다.
‘이와 같이 깨달음 자체도 여의었기 때문에’
이 말이 본문에는 ‘여시보리리(如是菩提離)’
‘이와 같이 깨달음을 여읜 까닭으로’ 이런 얘기에요.
‘눈과 색의 경계를 벗어났고’ 는 ‘눈과 색을 떠났고’
‘내지보리리(乃至菩提離)’ ‘내지 보리[깨달음]을 떠난 까닭으로’
‘고의법리등(故意法離等)’ ‘의와 법을 떠난, 여의었다 등’ 이런 말이죠.
이렇게 본문을 다시 풀어 놨는데,
여기 경계라는 말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혹시 헷갈릴까 싶어서 경계라는 말을 제거하고 볼 수가 있다 이 말이죠.
여기서 ‘마음이 법을 알지 못한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주객이 없는 공을 얘기 하는 거죠.
그럼 여기에서 갑자기 왜 깨달음을 얘기하느냐.
이상하죠?
우리가 깨달았다 하면,
깨달을 주체와 깨달을 객체를 얘기할 수 있는데
벌써 주객이 떠나버렸다면
깨달음을 여의었다는 말을 쓸 수가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눈과 색을 여의었다, 귀와 소리를 여의었다, 이런 얘기를 하죠.
내지 몸과 촉감을 얘기하고, 마음과 법을 얘기 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떼놓을 리(離), 주객이 다 떠났다.
우리가 깨달음이라는 것은
대상을 보고 무엇이다 하고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어야 되겠죠?
실체가 없다, 자아 없이 비어 있다,
이렇게 무아, 공을 보면 깨달음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깨달음 속에 들어가 봤을 때는
깨달음 자체가 공이기 때문에 깨달았다하는 주객이 없습니다.
주객이 없으니까 깨닫기는 깨달았는데
깨달음을 떠나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깨달음 자체도 여의었기 때문에
눈과 색의 경계를 벗어났고 귀와 소리의 경계를 벗어났으며
코와 냄새의 경계를 벗어났다.
혀와 맛의 경계를 벗어났고 몸과 촉감의 경계를 벗어났으며
마음과 마음으로 아는 법의 경계를 벗어난 것이다.’ 이렇게 얘기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텅 비어 있는 자리는 주객이 없다 이거죠.
『입능가경』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흐르는 강물이 말라버리면
파도와 물결이 일지 않듯이
흐르는 의식이 멸해버리면
여러 가지 분별이 사라진다네.
이게 중요한 얘기에요.
여기서 파도와 물결이라는 말은 마음을 비유한 말인데,
우리 마음[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이
땀구멍이라든지 털구멍을 통해서 파도를 친다, 마음이 일어난다,
이래서 파도치는 것에 비유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대상 따라 일어난다는 거죠.
그렇지만 마음 자체가 소멸해 버리면
경계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누가 비난하거나 칭찬하더라도
마음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흐르는 의식이 사라져 버리면
여러 가지 분별이 사라진다고 하는 겁니다.
모양이 있으면 눈을 통해서 마음[시각]이 일어나고,
소리가 있으면 귀를 통해서 마음[청각]이 일어나고,
향기가 있으면 코를 통해서 마음[후각]이 일어나고,
맛이 있으면 혀를 통해서 마음[미각]이 일어나고,
접촉이 있으면 몸을 통해서 마음[촉각]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개념이 떠오르면 그로인해서 의식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마음이라는 것은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고
반드시 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겁니다.[依他起性]
그래서 인식 대상이 텅 비어버리면
인식이 멈춰져 버리는 판단중지가 일어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의식이 소멸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텅 비어 있지만
중생이 구원을 요청하면
텅 빈 마음에서 자극이 일어나서 구제할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이 색신을 나타내어 부처님 같은 분이 출현하셔서
중생을 구제하시는 겁니다.
중생이 구원을 요청했기 때문에 나타나셨지만
활동하는 그 속에는 마음이 실체 없고 자아가 없는
텅 비어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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