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종경(宗鏡)은 살아 있는 법문 (강의 - 1. 一念不生)

경호... 2011. 9. 11.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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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종경은 살아 있는 법문 (강의 - 1) 종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이 현재 있는 자리에서 증득하는 살아 있는 법문이다. 한번 들어감에 전체가 참법계로 다시 여기에 앞과 뒤가 없다. 종경(宗鏡)은 마루 종(宗)자, 거울 경(鏡)자, 거울에 자기를 되비춰본다는 뜻입니다. ‘참법계’는 분리 되어 있지 않은 모든 세계라는 말입니다. 법계에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 부처로서 십법계(十法界)가 있습니다. 지옥으로부터 천상까지의 6세계는 미혹의 세계인 범부의 세계이고 나머지 4세계는 깨달음의 세계인 성자의 세계입니다. 양쪽을 합하여 ‘6범4성(六凡四聖)’이라 합니다. 그럼 법계, 계(界)자는 세계인데, 법(法)이라는 글자를 왜 쓸까요? 여기에 이치가 있는 겁니다. 법이라는 것은 원인과 조건으로 생기는 것이 법이라 그랬죠. 지옥을 예를 들어 얘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지옥에 떨어지면 벗어날 수 있습니까, 못 벗어납니까? 벗어나죠. 물건을 탐하고, 화를 내고, 생명을 죽이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나쁜 짓 하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결과는 지옥에 가죠. 지옥 가서 고통을 당하면서 반성을 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고, 반성을 하고 있는데 지장보살이 나타나셨다면, 그것은 조건이 되죠. 그렇게 되면 결과는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원인과 조건에 의한 결과, 법이고 벗어나는 것도 법입니다. 그래서 법계라는 말은 결정되어 있는 세계가 아닌, 끊임없이 변하는 세곕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누가 만들었어요? 자기[마음]가 만든 겁니다. 똑같이 나쁜 짓을 한 다른 사람도 똑같은 지옥을 만들거든요. 같이 떨어져서 찌지고 볶고 하면서 태어나고 죽고 반복하다가 업장이 소멸 되어서 마음이 깨끗해지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벗어난다는 것은 지옥이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그게 법이기 때문에 마음이 만든 거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옥에 떨어져도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 ㅎㅎㅎ 나쁜 짓을 해서 지옥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고통을 받으면서 과보를 받으면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처럼 지옥 떨어지면 영원히 못 헤어난다, 그런 거 없는 거예요. 기독교의 교리는 공폽니다. 지옥 떨어지면 안 되니까 무조건 천국가야 되는 거죠. 무조건 천국 갈려면 무조건 예수님 안 믿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 배려 없어요. 불교든, 이슬람교든, 힌두교든 가리지 않고 안 믿으면 지옥 가는데, 이런 거 저런 거 가릴게 없이 빨리 예수님 믿으라면서 그렇게 사람들이 절규를 합니다. 그런데 불교적 시각에서 봤을 때는 그게 잘못된 견해로 그 고생을 하는 거예요. 원인과 조건은 생겼다가 소멸한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살생 같은 잘못을 해서 지옥에 떨어지는 과보를 받지만 잘못을 뉘우쳐서 참회를 하고 선행을 하면 지옥에 갈 씨앗이 쭉정이로 변하는 거예요. 그래서 흔적만 남아 있지 쭉정이가 싹이 틉니까. 그렇지만 흔적 때문에 여파는 있는 겁니다. 그 여파로 인해서 지옥에는 안 떨어지지만 사람으로 태어나도 몸이 약하거나 단명하거나 그렇다는 겁니다. 이렇게 지옥만 그런 게 아니고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다 그렇습니다.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세계죠. 그래서 법계라는 말이 그런 것을 얘기 하는 겁니다. 좀 어때요? 눈이 좀 열리고 귀가 좀 열립니까? ㅎㅎㅎ 제가 들어보니까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애.ㅎㅎㅎ 그래서 우리 불교 공부하는 사람은 죽음에 임박해서 두려움이 없다는 게 그것이에요. 죽으면 그 뿐이 아니다, 환생할 수 있다, 우리는 가능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한번 들어감에 전체가 참법계로 다시 여기에 앞과 뒤가 없다.’ 참법계는 결정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앞뒤가 없다는 말이죠. 혹 이 말을 믿지 못한다면 단지 고요하게 생각하여 보아라. 한 생각도 생겨나는 게 없다는 것을 본다면 자연 부처님의 말씀과 계합할 것이다. 이것은 『보살염불삼매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한 생각도 생겨나는 게 없다는 것을 본다면 자연 부처님의 말씀과 계합할 것이다.’ 일념불생(一念不生)인데, 한생각도 생겨나는 것이 없다, 이런 말에 딱 봉착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아이고 어렵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다면, 이게 무슨 말인가. 생각이라는 게 한 순간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하는데, 한 생각도 안 일어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죠?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방법[사마타], 집중해서 생각이 끊어져서 안 일어나는 선정이 있습니다. 선정도 초선정, 2선정, 3선정, 4선정까지만 가면 심해탈(心解脫), 마음해탈이 일어납니다. 두 번째는 위빠사나가 있습니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위빠사나를 통해서 꿰뚫어 보니까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곳이 없고, 사라져도 사라지는 곳이 없음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세계에서 일염불생이 일어나는 겁니다. 분명하게 생각이 일어났는데 일어난 곳과 사라진 곳이 없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지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면 공(空)이죠. 공의 입장에서 그 자리에 있으면 생각 일어남이 없는 거예요. 실체가 없음을 볼 때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한 생각 일으켜도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말을 해도 말 속에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말을 한 것이 아니죠. 그래서 침묵을 지켜도 갖가지 번뇌가 일어나면 말을 하는 것이고, 이런저런 말을 아무리 하더라도 번뇌가 없는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것과 똑같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 움직임을 「선문촬요」에서는 ‘마음이 움직이되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되 움직인다’고 얘기 하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더라도 부담이 안가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실체가 없는데 무슨 부담이 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