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지운스님 강의 : 『唯識』-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대한 게송 (강의 - 1. 아뢰야의 연기)

경호... 2011. 8. 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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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아뢰야식에 대한 게송 (강의 - 1) 산스크리트어로 아라야 비즈나나(आलयविज्ञान ālaya vijñāna)라는 아뢰야(阿賴耶)는 번역하면 장(藏)으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장식(藏識)이라고 합니다. 장(藏)은 창고를 말합니다. 창고가 있다면 집어넣어야 되죠. 이 창고에는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능장(能藏)은 잘 알다시피 보고 듣고 하는 모든 정보를 능동적으로 아뢰야라는 창고에 잘 담는 겁니다. 두 번째 소장(所藏)은 그 정보들이 창고에 머물고 의지하게 되는 거죠. 세 번째는 집장(執藏)이 있습니다. 부자들이 창고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욕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러움의 심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집착의 대상 입니다. 이렇게 아뢰야는 그런 의미가 있는데, 아뢰야식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여기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봅시다. 우리 몸이 왜 안 썩을까? 몸이 썩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 마음이 요물이라고 하는데 이 마음이 몸을 떠나면 바로 썩습니다. 그러니 안 썩는 게 이 아뢰야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몸도 아뢰야식의 한 부분 이예요. 그래서 살아있을 때는 몸은 안 썩습니다. 그리고 아뢰야식은 잠자는 예가 없어요. 24시간 늘 깨어있는 마음입니다. 즉 근본식, 근본마음이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몸만 그런가 하면 보이는 자연계, 이 우주 전체가 아뢰야식이에요. 그리고 아뢰야라는 마음은 너무나 미세해 가지고 보살의 경지에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은 보기 힘듭니다[不可知]. 그리고 아뢰야식의 특징은 창고에 저장 되어있던 것들도 방출을 하죠. 그래서 아뢰야식은 ‘생기게 하는 마음’이다. ‘생기게 하는 마음’인데, 아뢰야식에서 생긴 마음은 몇 개나 될까요. 아뢰야식에서 생겨난 마음은 일곱 개나 됩니다. 저장되어 있는 게 현행하면 마음이 되는데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 전부 아뢰야식에서 나온 겁니다. 여러분들이 감도 못 잡겠다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단지 아하~ 그렇구나, 이렇게 알아 듣기만하면 됩니다. 다만 아뢰야식을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아뢰야식은 생기게 하는 마음인데, 생긴 마음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이에요. 생긴 마음이 다시 정보를 아뢰야식에 심는데, 이것을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이라 합니다. 이제 유식강의가 되네요. 그래서 아뢰야식에 있는 종자가 현행해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나타나서 이게 활동을 하면서 다시 종자로 심습니다. 그래서 이걸 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라 얘기 합니다. 말나식에서 현행한 것이 종자로서 심는 거죠. 이렇게 왔다 갔다 합니다. 자 우선, 종자생현행 할 때 일곱 개의 마음이 나온 것을 전식(轉識 :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식·말나식)이라 하는데 구를 전, 나올 식, 아뢰야식에서 굴러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만일에 몸에 강한 충격을 받으면 의식이 가잖아요. 의식이 가면 어떻게 됩니까? 의식이 소멸해 버리죠. 의식이 소멸해 버리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도 거의 소멸하죠. 그러다가 다시 의식이 살아나죠. 살아날 때 종자에서 현행해서 의식이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이제 이해됩니까? 그런데 생기게 하는 마음과 생긴 마음, 이 둘 관계는 인과의 관계라서 늘 주고받고 합니다. 종자생현행, 현행훈종자. 그래서 생긴 마음은 육체의 영향을 받거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요. 음식의 영향도 받습니다. 의식에 영향만 받는 게 아니고 말 한 마디에도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이 일곱 개(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식·말나식)의 마음은 영향 받고 반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아뢰야식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요. 설사 자동차가 몸을 들이받아도 아뢰야식은 끄떡도 안합니다. 이 아뢰야식이라는 게 묘한 거예요. 여기 게송을 공부 하다 보면 아뢰야식이 몸이기도 하고 우주이기도 하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인과관계라는 걸 좀 더 설명을 할까요? 종자생현행에서 종자는 원인[因]이고 나타난 것들은 과(果)죠. 인과(因果) 맞죠. 일곱 개의 마음이 다시 아뢰야식에 종자를 심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 일곱 개의 마음은 인(因)이 되고 심어진 종자는 과(果)가 되죠. 인과(因果)입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항상 인과를 갖습니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아뢰야식은 어떻게 발견이 됐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비달마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한 일을 하면 선한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하면 악한 결과가 오지만 그 과보가 금방 오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지나야 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내가 남을 한 대 탁 때리면 왜 때리느냐고 하면서 즉시 한 대 맞는 것처럼 바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가 힘이 약하면 10년이든 20년이든 상대는 힘을 길러서 보복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이생에 받는 경우도 있고, 다음 생에 받는 경우도 있고, 그 다음 생에 받는 경우도 있듯이 과보 받는 것은 시간 차이가 있는데, 그럼 내가 지은 업은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 이게 관심거리 아니겠어요? 의식하면 의식은 저장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다가 발견한 게 아뢰야식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기억의 저장창고죠. 이렇게 기억하는 것은 아뢰야식 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비달마에서 일미온(一味蘊 : 미세한 식의 구심점이 있다는 뜻),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하다가 유식에 와서 정식으로 아뢰야식이라 이름 합니다. 이제 아뢰야식에 대한 게송입니다. 『밀엄경』 게송에서 말하였다. 이 때에 금강장 보살께서는 다시금 대중에게 말씀하기를 제팔식인 아뢰야가 무시이래로 쓸데없는 희론으로 훈습되어서 모든 업에 매이고 묶이어지니 굴러가는 모습이 끝이 없어라. 쓸데없는 희론으로 훈습됐다는 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라식에서 훈습됐다는 거죠. 훈습 되었다는 말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영향을 받아서 모든 업에 매여가지고 굴러가는 것이 끝이 없다. 그런데 아뢰야식 자체는 무공, 무기이기 때문에 진리를 장애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이 또한 비유하면 큰 바다에서 바람으로 풍랑이 이는 것 같아 되풀이 생겨났다 또한 멸하니 단멸이나 항상함도 아니로구나. 이게 아뢰야 연기라 그럽니다. 큰 바다는 아뢰야식을, 바람은 무명을 이야기합니다. 큰 바다에 무명의 바람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해서 풍랑이 이는 것 같이, 풍랑이 바로 일곱 개의 마음[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라식]입니다. 진리가 하나인 줄 모르는 무지 바람 때문에 되풀이 생겨났다 또한 멸하니… 이 부분은 무상을 말합니다. 무상은 단멸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 얘기를 아뢰야 연기라 합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네요. 유식은 어렵고 재미없죠. 참 이상해요. 이 어려운걸 뭐하러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어요.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