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지운스님 강의 : 『唯識』- 말나식(末那識)은 무엇인가 (강의 - 1. 사량식思量識)

경호... 2011. 8. 24.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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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말나식(末那識)은 무엇인가 (강의 - 1) 유식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유식이라는 것이 얼마만큼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제가 최근에 책을 하나 읽고 있는데, 중국 근대사상에 대한 책입니다.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이 청나라 말엽이니까 중국의 격동기입니다. 유식과 관련이 있으니까 하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의 불교는 은둔불교였습니다. 어느 스님이 이야기하기를 "만일 우리가 사는 총림에 한자(漢字) 삼백 자 이상 쓸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인즉슨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스님이 대부분인 겁니다. 아는 스님 중에 용호 스님이 중국에 가서 중국의 스님과 대화를 하며 무얼 얘기하냐면, "불립문자, 불립문자해가지고 그 피해가 너무 크다. 중국 스님들은 불교를 진짜 모른다."는 겁니다. 전혀 부처님 가르침도 모르고, 수행도 하는지 마는지 모르고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그게 1900년대인데 그 이전에는 어땠겠어요. 굉장했겠죠. 안휘성(安徽省)에 태평천국의 난이 생기면서 불교라든가 유교 전각들이 많이 불타 없어져요. 그때 즈음에 양런산(楊仁山 yáng rén shān)이란 거사가 등장합니다. 그 거사는 태평천국난을 피해 항주로 피난을 갑니다. 그 청년은 임신한 부인이 있어요. 피난 와서 옆집의 처녀를 보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거죠. 그러니까 주위에서 "그럼 뭐 부인을 두 명도 맞아들이고 그러는데 장가를 한 번 더 가면 되지."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청년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지금 며느리가 임신을 했으니 아기를 낳은 뒤에 생각을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아들을 낳으니까 어머니가 안 된다고 반대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양런산이란 이 청년은 그만 실의에 빠져서 강에 가서 빠져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사랑에 빠졌는데 성사가 안 되니까 세상 살 맛이 안 나는 거죠. 사랑에 빠지면 그런가 봐. 그래서 사랑보다 더 좋은 게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이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항주 서호(西湖) 근처에 있는 허름한 서점에서 「대승기신론」을 보게 됩니다. 「대승기신론」은 무너져 내리던 양런산을 온통 바꿔버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푹 빠져들어서 손을 놓지를 못하는 겁니다. 집에 와서 몇 날 며칠을 그 책을 들여다 보다보니까 어느새 상사병은 다 달아나 버리고 책에 푸욱 빠져 버렸습니다. 그 「대승기신론」안에 유식 부분도 있거든요. 중관(中觀), 유식(唯識), 멸(滅) 이 세 가지가 결합되어 있는 게「대승기신론」입니다. 그러니까 「대승기신론」을 보면서 환의심을 냈다는 얘기입니다. 불법이라는 게 사랑에 눈 먼 사람도 깨우게 하니 대단하지요. 양런산이란 사람이 발원을 합니다. “이렇게 좋은 불법을 그냥 놔두어선 안 된다.” 청나라 말기에 태평천국의 난이라 불교 관련 서적이 많이 불타 없어질 때 사신으로 영국에 방문하게 됩니다. 영국의 런던에서 일본 승려를 만나요. 일본 승려들이 불교학을 배우기 위해서 영국 유학을 온 겁니다. 그때는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해서 영국이나 독일이나 유학을 보내주었거든요. 거기서 일본 승려를 만나서 정보를 얻습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를 일본에 보내서 중국에 없는 경전을 가져옵니다. 역수입을 한 거죠. 이 양런산이란 분이 삼 년 동안 영국에 머물다가 귀국을 해서 유식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합니다. 불교를 만난 이후 양런산은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불전을 탐독했어요. 또한 여러 곳을 다니면서 불교전적을 찾는데 뜻밖에도 손에 넣을 수 있는 불전은 극히 적었죠. 전통 종교에 적대적이었던 태평천국 운동이 강남을 쓸고 갔기 때문에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가족과 함께 난징[南京(남경)]으로 옮겨온 양런산은 동료들과 불교연구를 본격화했습니다. 그리고는 금릉각경처(金陵刻經處), 경전을 새기는 곳을 세운 거예요. 그래서 전란에 의해 소실된 경전은 전부다 새겨서 경판을 만들었습니다. 「대승기신론」을 비롯해서 유식이 거기서부터 꽃을 피웁니다. 양런산의 뒤를 이어서 어우양징우(歐陽竟無) 제자가 대를 이어서 유식의 대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참 대단한 거죠.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모두 다 유식을 배워갑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유식 사상을 배우는 거예요. 유교도 유식을 배움으로써 유가(儒家)가 다시 형성되고 그런 겁니다. 이것이 사상의 바탕이 되고 사회를 개혁하는데 바탕에 유식이 깔려 있는 거예요. 참으로 굉장한 거죠. 어우양징우(歐陽竟無)의 제자 중에 뤼청(呂徵)이란 사람이 있는데 원래 이 사람은 화가인데 각경처에서 경전 조감을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니까 사천성으로 피해요. 사천성에서 다시 각경처를 만들어 놓고 활동을 하면서, 그때는 경전 조감하면서 이해 안 되고 이상하면 이런 부분을 티벳 경전에서 가지고 와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티벳 경전을 연구하는 데 없잖아요. 그런데 1900년대 초기에 벌써 티벳 경전을 열람하고 그걸 근거로 조정을 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스님들이 아니고 거사들이예요. 양런산 거사 밑에 태허(太虛)란 스님이 나옵니다. 그 스님이 무창(武昌)불교를 일으켜요. 그러니까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배워서 불교를 다시 일으켜서 새로운 불교를 피우는 거죠. 이 분이 대만 앞까지 가서 무창불학원(武昌佛學院)세우고 활동 중에 제자를 키우는데 돌아가신 분 중에 인순법사(印順法師) 대표적인 분이고 살아계신 분은 성운대사(星云大師) 같은 분이예요. 대만에는 유명한 분들은 대부분 이 스님[太虛] 제자입니다. 그런 분들이 불교를 혁신적으로 해서 포교라든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남다릅니다. 가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발달되어있어요. 중국불교는 재가, 출가 이렇게 나누어서 활발하게 그렇게 하면서 중국의 사상계를 이끌어가는 데, 그 중심에 유식이 들어가 있는 거죠. 당(唐), 송(宋), 명(明) 내려오면서 유식은 힘도 없고 별 볼일 없어서 사장돼버리는데 청나라 말기에 와서 학자들에 의해 유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는 벌써 유식을 볼 수 있는 학문적 바탕이 이미 돼있다는 거죠. 이런 내용이 김영진 교수가 쓴 책에 나와 있습니다. 동화사 유식반에는 나날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잘하면 개혁이 되겠습니다. 유식 때문에 중국 사상계가 요동을 치고 새롭게 일어났는데, 한국의 사상계가 유식 때문에 안 바뀔는지 모르겠네요. 안 그래요? 자 이제 공부를 합니다. 말나식은 무엇인가 말나식이란 것은 마나스(manas), 생각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걸 번역하면 생각할 사, 헤아릴 량자, 사량식(思量識)인데 우리가 보통 ‘이웃을 사랑합시다’, ‘부부가 사랑을 해야지’할 때 ‘사랑’이란 글자가 이 ‘사량(思量)’에서 나온 겁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거고 생각을 많이 한다면 사랑이 깊다는 얘기죠. 사랑이란 정체는 저 말[思量]에서 나왔다는 거죠. 남을 항상 생각하는 마음, 그게 사랑입니다. 이게 사량식 할 때 ‘사량’에서 나왔습니다. 양런산이란 사람도 이웃처녀에게 사랑에 푹 빠져가지고 그만 불법을 만나서 유식학에 꽃을 피웠잖아요. 그러고 보면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사량식이라는 게 무의식이라고 불리는 아뢰야식을 일체종자식이라고 하는데 이 아뢰야식 전부를 사랑하는 게 말나식[思量識], 자아의식입니다. 항심사량(恒審思量), 이것은 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아느냐? 환히 안다, 자세히 안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항심, 항상 아는 마음이죠. 항상 하다는 것은 말나식의 특징입니다. 6식(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중에 전 5식(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보면 이건 항상 하지 않아요. 그런데 말나식은 항상 하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6식은 육체나 사물의 강한 영향을 받으면 시시각각으로 변하거나 정신이 가끔 가버리기도 하고 이러는데, 이 사량식은 안 가는 거예요. 항심사량이란 것은 제8식 아뢰야식을 상대합니다. 이 아뢰야식의 견분(見分, 주관)을 항상 의식하면서, '이것은 내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살피는데, 이게 중요해요. 일반적으로 사랑할 때도 그렇죠.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 여자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유심히 관찰을 합니다. 시선을 항상 떼지를 않아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런 거예요. 하지만 도가 지나치게 되면 문제가 되죠. 그래서 이 사량식도 그런 겁니다. 제 8 아뢰야식을 한 층 높여서 자세하게 내다보며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가장 곤혹스러운 게 무엇인가 하면, 누가 저를 굉장히 사랑한다 그러면 부담이 되기 때문에 도망갑니다. 남이 나를 주시하면서 계속 살핀다 하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말나식이 그런 겁니다. 우리는 그런 게 있어서 ‘내다’하는 자아에 대한 집착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이 강한 거예요. 그래서 항심사량이라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도 대충 보고 지나치는데 말나식은 제 8 아뢰야식을 항상 '내 사랑', ‘내다’라고 고집하면서 붙들고 있는 겁니다. 이걸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아주 골치 아픕니다. 이 골치 아픈 말나식이 오염의 근원입니다. 이 말나식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도 다 오염시키고, 제 8 아뢰야식에도 자아관념[종자]을 심죠. 그래서 염오식(染汚識)이라고 합니다. 물들 염, 더러울 오자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얘기할 게 하나 있습니다. 의식은 들어 나는데, 말나식은 인식하더라도 잠자는 것 같아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잠재되어 있는 거죠. 그럼 원래 등장도 안 하는데 어떻게 발견하느냐.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하다가 말나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친보살이 유식 삼십 송에서 말나식이 전면 등장하게 됩니다. 그전에는 말나라는 말만 썼지, 식이라는 말은 안 붙였거든요. 이것이 오염의 근원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오염의 근원은 말나식이다. 그래서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너무 갖지 마시라는 것, 그것은 안 좋은 것입니다. 관심을 너무 많이 가지면 상대가 부담을 느낍니다. 둘이가 똑같이 사랑한다면 문제가 다르겠죠. 똑같이 콩깍지 쓰였으니까 그것은 괜찮은데 한사람은 깨어있고 다른 한사람은 콩깍지 쓰였다면 이것은 불을 본 듯 헤어지는 것은 분명 하지만,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래서 아뢰야식은 생각도 안 하는데 말나식이 항상 아뢰야식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게 문제예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사량식이 우리가 인식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가 있냐 하면 현량(現量)이 있는데 요즘말로 직관입니다. 비교하는 비량(比量)이 있는데 추리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닐 비를 쓴 비량(非量)이 있습니다. 이 말나식에는 직관도 없고 비교하는 비량도 없습니다. 아닐 비자 비량만 있습니다. 이 량(量)자는 인식인데 아닐 비(非)자가 들었어요. 항상 바르게 인식하는 법이 없어요. 그래서 사랑하지 말아라, 괴로우니까. 사량식이 빠져버려야 돼요. 자아관념이 빠져버리면 그만큼 윤회에서도 벗어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죠. 완전히 빠져버리면 윤회에서 벗어나는 거고. 아마도 젊은 남녀들은 별로 안 좋아할 거예요. 사랑이 얼마나 좋은데 사랑을 하지 말라 하고, 사랑의 근원인 사량식을 없애버려야 된다고 하시나, 이렇게 생각하겠죠? 그거 오해입니다. 아직 젊어가지고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걸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지 결혼하고 애 낳고 살면서 온갖 어려움에 처하면서 비로소 사랑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죠. 법구경에도 나옵니다. "사랑하지 말아라,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