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미혹과 깨달음은 마음이다 (본문)

경호... 2011. 9. 29. 22:24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미혹과 깨달음은 마음이다 (본문) 55-9-183 問 隨境各立六識之名 此依五色根未自在說. 於自在位 如何分別. 答 若自在位中 則諸根互用. 如法華明鼻根卽能見色觀心等. 論云 若得自在 諸根互用 一根發識 緣一切境. 但可隨根 無相濫矣.1) 乃至 佛地經說 成所作智 決擇有情心行差別 起三業化 作四記等. 若不遍緣 無此能故. 釋云. 三業化 合有十種 佛地經云. : 경계에 따라 각각 육식의 명칭을 세우는 것은 오색근(五色根)이 자재하지 못한 지위에서 설하신 것입니다. 자재한 지위에서는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까. : 만약 자재위 가운데라면 모든 근이 상호간에 기능을 발휘하는 호용(互用)이다. 이것은 『법화경』에서 “비근(鼻根)이 색을 보고 마음 등을 관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같다. 『유식론』에서는 “자재위에서 모든 근이 상호간에 호용한다면 하나의 근이 식(識)을 발할 때에 일체 경계를 반연한다. 모든 경계가 단지 하나의 근을 따를 수 있으면서도 서로가 넘쳐 잘못되는 일은 없다”고 하였다. 『불지경』에서는 “자재위에서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유정(有情)의 차별하는 마음을 결택하여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일으켜 중생을 교화하고, 중생의 의문점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한다[四記]. 일체 인연을 두루하지 않는다면 이런 공능이 없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것을 풀이해 보자. 신구의 삼업을 일으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합하여 열 종류가 있으니, 이것은 『불지경』에서 말하였다. 身化有三.2) 一現神通化. 二現受生化. 三現業果化. 語化亦有三. 一慶慰語化. 二方便語化. 三辯物語化. 意化有四. 一決擇意化. 二造作意化. 三發起意化. 四領受意化. 領受化中 四記者. 一謂一向記. 二分別記. 三反問記. 四黙置記. 몸으로 하는 교화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통력을 나타내서 교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중생구제를 위하여 중생구제 원력으로 중생의 몸을 받아 나타나서 교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업에 대한 과보를 나타내서 교화하는 것이다. 말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에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축하하고 위로하는 말로 교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방편으로 하는 말로 교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사물의 이치를 지혜로 정확히 가려주는 말로 교화하는 것이다. 뜻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옳고 그름을 결택하는 뜻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뜻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구도심을 일으키기 위한 뜻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넷째는 상대방 질문의 뜻을 받아들여 해결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상대방 질문의 뜻을 받아들여 해결하여 교화하는 것 가운데에 사기(四記)라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묻는 자의 질문에 변할 수 없는 결정적인 답변으로 의문을 해결해 주는 일향기(一向記)를 말한다. 둘째는 묻는 자의 질문에 상대하여 경우를 따져 분별하는 답변으로 의문을 해결하여 주는 분별기(分別記)다. 셋째는 묻는 자의 질문에 대하여 질문의 의도를 되물음으로써 질문 자체를 반성하도록 하여 의문을 해결하여 주는 반문기(反問記)다. 넷째는 묻는 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난 후에 희론을 조장할까 염려하여 침묵으로 답변하는 묵치기(黙置記)다. 已上 六識之相 總成三業之門. 未轉依中 隨流徇境 發雜染之種 結生死之根. 唯起蓋纏 但縈苦集. 背淸淨之覺性 合界處之妄塵. 立三有之垣牆 作四流之波浪. 至轉依位 冥眞返流. 隨智慧行 成無漏善. 道諦所攝 正理相應. 現妙觀察心 決四生之疑網. 爲成所作智 起三輪之化原. 若也究之於心 塵勞爲菩提之妙用. 失之於旨 常樂作生滅之苦輪. 위에서 말한 육식(六識)의 모습은 전체가 신구의 삼업(三業)을 이루는 문이었다. 육식 자체가 깨달음으로 바꾸어지지 않은 중생의 지위에서 번뇌의 흐름을 따르고 경계에 끄달리는 것은 더러운 법의 종자를 발아시켜 생사의 근원을 맺게 하는 것이다. 오직 오개(五蓋)3)와 십전(十纏)4)을 일으켜 단지 고통과 고통의 원인만을 얽히고 설키게 하는 것이다. 청정한 깨달음의 성품을 등지고 십팔계(十八界)와 십이처(十二處)의 허망한 티끌번뇌에 계합한다.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담벼락을 세우고 태란습화(胎卵濕化)의 사생(四生)으로 흘러가는 파도의 물결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육식의 모습도 수행으로 바뀐 깨달음의 자리에서 진여에 명합하고 잘못된 흐름을 돌이키는 것이다. 지혜를 따라 행하는 수행으로 무루선(無漏善)을 성취한다. 도(道)의 진리에 섭수되는 것으로 바른 이치에 상응하는 것이다. 묘관찰심을 나타내어 사생(四生)의 흐름을 만드는 의심의 그물을 결단한다. 성소작지가 되어 청정한 신구의 삼업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근원을 일으킨다. 만약에 마음을 궁구한다면 티끌번뇌의 노고로움이 보리의 미묘한 작용이 되나, 마음의 종지를 잃는다면 항상 생멸의 고통을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이다. 故知 染淨非他 得喪在我. 似手反覆 如人醉醒. 何者. 反亦是手 覆亦是手. 要且反時非覆時 覆時非反時. 然俱不離手. 醉亦是人 醒亦是人. 要且醉時非醒時 醒時非醉時. 然不離醉有醒 亦不卽醉是醒. 如迷亦是心 悟亦是心. 要且迷時非悟時 悟時非迷時. 然迷悟非別 卽時節有異. 唯在般若 轉變臨時 一體匪移 千差自別. 迷之枉遭沈沒 念念成凡 悟之本自圓明 心心證聖. 그러므로 알아야 할 것이니 더럽거나 청정한 것이 남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자기한테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손바닥을 엎었다가 뒤집는 것과 같고, 사람이 술에 취했다가 깨어나는 것과 같다. 무엇 때문인가. 뒤집은 것도 손이며, 엎은 것도 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손을 뒤집었을 때는 엎은 때가 아니며, 손을 엎었을 때는 뒤집은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모두 손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도 사람이며, 깨어나도 사람이다. 요컨대 술에 취할 때에는 깨어 있을 때가 아니며, 술에 깨어 있을 때는 취한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취한 사람을 벗어나서 깨어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술에 취해 있는 그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이것은 마치 미혹도 마음이며, 깨달음도 마음인 것과 같다. 미혹할 때에는 깨달은 때가 아니며, 깨달은 때에는 미혹한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미혹과 깨달음은 다른 것이 아니니, 시절인연이 다를 뿐이다. 이것 모두가 오직 반야에 있으면서 전변하여 시절인연에 임할 때에. 하나의 바탕을 옮기지 않으면서 천 가지 만 가지 차별을 스스로 분별하는 것이다. 미혹하면 잘못된 만남으로 생사에 침몰하여 생각 하나하나에 범부가 되나, 깨달으면 본래 스스로가 원만하고 밝아 마음 하나하나에 성인의 자리를 증득하는 것이다.
    註釋┠─────────────────────────────────────────
      1) 但可隨根 無相濫矣는 K본 S본 C본에는 但可隨根 無相濫失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2) 佛地經云 身化有三은 K본 S본 C본에는 佛地經說 身化有三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3) 오개(五蓋)는 탐(貪)과 진(瞋)과 치(癡)와 도회(悼悔)와 의심(疑心)을 말한다. 본문으로... 4) 십전(十纏)은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와 질(嫉)과 간(慳)과 회(悔)와 면(眠)과 도거(掉擧)와 혼침(昏沈)과 분(忿)과 복(覆)을 말한다. 본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