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청정한 마음경계 허공과 같다 (강의 - 4)
이와 같이 오음 육근 십팔계 등은
중생의 번뇌 업에 머무르지만
일체의 모든 번뇌 업이란 것은
옳지 못한 사유 속에 머무른다네.
‘오음 육근 십팔계’
예전에는 오음(五陰)이라고 했고
요즘에는 오온(五蘊 pañca skandhāh)이라고 합니다.
오온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입니다.
색(色 rūpa)은 흙, 물, 불, 바람으로 되어있고 하나 더하면 허공이 들어가겠죠.
수(受 vedanā)는 고(苦), 락(樂) 등의 감수작용(感受作用),
상(想 sañña)은 표상작용, 다른 말로 하면 사물을 취한다 해서 취상작용(取象作用),
행(行 sāṅkhāra)은 의지작용 및 그 밖의 형성작용,
식(識;viññāna)은 의식판단의 의식작용을 합니다.
색(色)은 육체, 물질이고
수(受)·상(想)·행(行)·식(識) 네 가지는 정신작용이죠.
물질인 육체와 네 가지 정신작용이 화합된 것이 인간이에요.
육근(六根 감각기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
육경(六境 감지 대상)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육식(六識 인식)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육근을 기능별로 세세히 분류 정리해보자면
눈, 안근(眼根)은 색·모양[色]을 만나면 안식[시각]이 생기고,
귀, 이근(耳根)은 소리[聲]를 만나면 이식[청각]이 생기고,
코, 비근(鼻根)은 냄새[香]를 만나면 비식[후각]이 생기고,
혀, 설근(舌根)은 맛[味]을 만나면 설식[미각]이 생기고,
몸, 신근(身根)은 촉감[觸]을 만나면 신식[촉각]이 생기고,
생각, 의근(意根)은 전념(前念), 법(法)을 만나면 의식이 생깁니다.
육근은 ‘나’라는 존재를 가리키고
육경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말합니다.
이 둘을 합해서 12처(十二處)라 하고
여기에 육식을 더한 게 열여덟 개의 경계, 십팔계(十八界)입니다.
이렇게 오온을 육근, 육경, 육식으로 풀 수가 있습니다.
오음, 육근, 십팔계, 이런 것들이 전부다 번뇌 업(煩惱業)이라는 말을 씁니다.
번뇌 업에 의지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번뇌 업에서 업은 습관입니다.
반복 된 습관 혹은 습기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반복된 습관적이고 맹목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오온, 육근, 십팔계를 모아서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오온을 얘기할 때는 자아와 관련이 있고
십팔계도 자아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온이나 십팔계를 나눠서 분석을 해 보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사람들은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색수상행식, 물질과 정신작용이 결합되어 있는 게 인간인데
분리 시켜보면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내’다 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요.
육체를 떼어 놓고 인간을 설명할 수도 없고,
정신작용 하나만 부실해도 사람이 이상하고 그러는데
분리 시켜 보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어요.
자아라는 게 없다는 말이에요.
이것이 번뇌업하고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밀린다왕문경』에 보면
희랍에 메난드로스(Menandros, 또는 Milinda) 왕하고
나가세나(Nagasena, 那先) 존자하고 대론을 벌입니다.
수많은 궁중 앞에서 대론을 벌이는데
대론을 벌이려면 통성명을 해야 되겠죠.
메난드로스 왕이 “존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는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대왕이시여.
나의 동료들은 그렇게들 부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내게 준 이름일 뿐,
나가세나든, 수라세나든, 비라세나든, 시하세나든, 그런 것들은
다만 명칭이고, 관념이고, 습관으로서 다만 이름일 뿐이지
거기 어떤 사람이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에 왕은 “분명히 내 앞에 나가세나 스님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없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수많은 궁중을 향해서 얘기를 합니다.
메난드로스 왕은 다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머리카락이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몸에 난 터럭이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손톱, 이빨, 피부, 근육, 힘줄, 뼈, 골수, 신장, 간, 지라, 폐,
창자, 복막, 위, 똥, 쓸개즙, 고름, 지방, 눈물, 땀, 침, 콧물, 연골,
오줌, 골 속의 뇌, 이런 것들이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존자여, 물질(色)이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감정(受)이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지각(想)이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의지(行)가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의식(識)이 나가세나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앞의 다섯 더미(五蘊)의 결합을 나가세나라 합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오온 밖에 따로 나가세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여기 내 앞에 있는 나가세나는 대체 누구입니까?”
메난드로스 왕은 곤혹스럽게 말했습니다다.
“존자여, 여러 질문을 했지만, 저는 나가세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나가세나’는 단순한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럼 여기 내 앞에 있는 나가세나는 대체 누구입니까.
당신은 제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진정 나가세나는 없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색·수·상·행·식으로 분리시켜서 봐도 없습니다.
이렇게 이름에 불과한 것이지
실체가 있는 ‘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의혹과 혼돈에 빠진 메난드로스 왕에게 존자 나가세나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이곳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수레를 타고 오셨다니, 그럼 ‘굴대’가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바퀴축’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바퀴가, 혹은 바퀴살이, 깃대, 빗장, 멍에 등등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여러 질문을 했지만, 저는 ‘수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수레’는 단순한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럼 무엇이 진짜 수레입니까.
대왕께서는 제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진정 수레는 없었습니다.
대왕께서는 전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십니다.
대체 누가 두려워서 진실을 말하지 않으십니까.”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하나 분리 시켜 봤을 때는 수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굴대, 바퀴축, 바퀴살, 깃대, 빗장, 멍에
이런 것을 전부 합해서 수레가 이루어졌지
수레라는 것이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십팔계를 나눠 보면
물질과 정신작용, 색신이법(色神離法)으로 나눕니다.
이게 결합되면 인간이에요.
그래서 사물을 인식하는 시각이라 하는 것도
눈과 형상이 없으면 안 생기는 겁니다.
귀와 소리가 없으면 청각이 생길 리가 없는 거예요.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죠.
만약에 귀 따로 소리 따로 라면 청각이 생길 리가 없죠.
이렇게 전부다 결합되어 있는 겁니다.
결국 ‘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오온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중생의 번뇌 업’이라는 것은
오온이나 육근, 십팔계가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고
인연 화합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진거죠.
이렇게 인연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을 모르면
전부 다 중생 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오온은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에서 얘기 했지만
소멸했다가 다시 생성이 됩니다.
이게 고통인데 왜 생성(환생)이 되느냐.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해체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나이가 들어 해체되어가는 과정에서 병이 생깁니다.
그래서 4대가 잘 안 맞고 해체되어 갈 때 몸이 아파요.
육체와 정신은 서로 의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몸이 망가지면 정신 이상이 오는 거예요.
치매 같은 현상이 그런 예입니다.
머리에 혈관이 막히면, 육체에 병이 나버리면
병이난 부분에 작용하는 마음이 비정상적으로 되는 겁니다.
그렇데 되면 치매증상이 생기는 거예요.
결국은 몸과 마음은 상호관계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따로 분리되어가지고
독립된 뭔가 있어서 말하고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인간 육체를 만들지 않으면
오온도 안 생기고 안 괴로울 텐데
인간은 그것을 몰라서 다시 부모의 연을 만들어서
또 육체를 만들고 괴로워하고 병들고 죽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생업에 의해서 오온이 생기고 십팔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겁니다.
정리를 하면,
오온, 육근, 십팔계는 인간을 얘기하죠.
동물도 오온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나 동물들이 오온, 육근, 십팔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번뇌 업[습관]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습관적으로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게 번뇐데,
왜 반복하는지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번뇌 업, 무지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정신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까 인연화합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이 우리 인간도 그렇고 모든 생명체도 그렇구나,
그런데 그 관계성 안에는 자아라는 것이 없다,
이렇게 알면 되는 겁니다.
만약 자아가 있다면
중풍걸린 사람이 손 떠는것을 멈출 수 있어야 되고,
감기 들은 사람은 기침을 멈출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정신과 결합된 육체를 만들어서
인간, 생명체로 살아간다는 게 고통이구나,
이렇게 알면 아라한의 경지에 가서 후생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윤회를 안하는 겁니다.
그렇게 알면 좋은데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오온(색수상행식)이 정말 ‘내’라고 생각하고
내안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윤회속에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거예요.
이게 번뇌업입니다.
이런 게 ‘모든 것은 관계성 속에 있고
자아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를 하면 이런분들 계실 꺼예요.
‘그래도 육체를 지니고 사는 게 좋지,
스님 말씀은 생명체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무를 얘기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얘기하죠.
그런데 제가 말하는 것은 무를 얘기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되는 겁니다.
불보살님도 인간 육신을 받고 이 세상 오시잖아요.
그러면 이런 불보살님은 뭘 모르고 오셨습니까?
여러분 태어날 때 태어나는 통로를 제대로 알고 태어났어요?
몰랐잖아요. 저도 몰랐는데...
경전에 보면 어머니 태에 들어갈 때
의식이 성성하게 깨어 있으면 입태라하고,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앉아 있을 때도
의식이 깨어 있으면 수태라 그랬습니다.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도 깨어 있으면 출태라고 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태어났습니까?
용을 쓰면서 좁은 통로로 태어났잖아요.
태어나서도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위태위태하게 이 자리까지 온 거죠.
이렇게 우리들은 모르고 태어나서 고통 받고 살고
성인은 알고 태어나는 겁니다.
이런 차이점이 있는 거예요.
지금 공부하는 게
우리라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실히 얘기 해주고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나자 이거죠.
우리는 잘못된 생각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중생업을 짓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거기서 좀 벗어나자 이거예요.
그래서 얘기를 합니다.
옳지 못한 사유가 진행되는 게
알고 보면 청정한 맘 가운데지만
본래의 성품이란 청정한 마음
중생들이 지은 법에 머물지 않네.
‘옳지 못한 사유가 진행되는 게
알고 보면 청정한 맘 가운데지만’
청정한 마음 가운데서 사실은 일어났다는 거죠.
‘본래의 성품이란 청정한 마음
중생들이 지은 법에 머물지 않네.’
여기에 ‘중생들이 지은’ 은 빼야 됩니다.
‘다만 저 법에 머물지 않네’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오온이 결합되어 있는 인간이라는 게 중생 범부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일부러 중생을 구제하려고 중생 몸을 갖고 태어나는 성인도 있거든요.
이 법이라는 것은 중생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에요.
하나에 현상이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나타난 현상을 다 법이라고 할 뿐이에요.
단지 중생업에 의한 원인과 조건이라면 그 법은 중생들이 지은 법이고,
중생 구제를 위해서 지은 법이라면 그것은 불보살이 지은 법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중생들이 지은 법’하면 한쪽으로 치우칩니다.
그냥 ‘다만 저 법에 머물지 않네’ 이렇게 해야 됩니다.
‘저 법’이라는 것은 오온, 육근, 십팔계가 법입니다.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에요.
아까 얘기 했듯이
눈하고 형상이 만났을 때 시각이 생기고
귀와 소리가 만났을 때 청각이 생기잖아요.
이것이 인연,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생기는 거죠.
눈으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볼 때,
볼 때마다 앞에 본 것은 다 지나가서 없죠.
소리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생긴 것은 소멸 합니다,
밖에 무슨 소리 들리죠?
까마귀?
지금은 까마귀 소리 들립니까?
안 들리죠?
그럼 지나 가버렸잖아요.
앞에 까마귀 소리 들어서 인식 했던 그 인식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화합되는 것은 항상 이렇습니다.
고정되어 있는 게 없어요.
얼마나 불완전한 얘긴지 여러분 아실 거예요.
그래서 이 법이라는 것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인데
자성 청정한 마음은 그 법에 안 머문다 이거죠.
왜 머물지 않을까?
이게 중요한 거예요.
『능엄경』에 보면
‘자성 청정심은 여래장성(如來藏性)이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여래의 성품.
여래장은 자성 청정심인데 본성이 깨끗해요.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게
중생의 업에 따라서 이 자성 청정심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런 것은 「대승기신론」에도 똑같이 얘기 하는데,
무명이 진여에게 영향을 주면 그것도 현실에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은 자성 청정심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본연의 자리는 자성 청정심이라고 기억을 하십시오.
그리고 또 『능엄경』에
‘중생의 업(karma)에 의해서 자성 청정심이 모습을 나타낸다’그랬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현상 중에서는
지수화풍공 5대를 나타냅니다.
중생의 업 중에서 자아관념이 강한 업이라면
자성 청정심이 흙의 요소로 나타냅니다.
자아관념이 강한 사람은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 딱딱한 현상 때문에 고집을 피우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그러는 거예요.
또 업 중에서 분노의 힘이 강하면
자성 청정심이 물을 만들어 냅니다.
혈액이 물이잖아요.
누가 어깨라도 툭 치면 혈압이 올라서
분노를 잘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냅니다.
이렇게 업에 따라서 자성 청정심이 발현해서 형색을 타나낸다 이거죠.
예를 들어서 이런 겁니다.
여기 금목걸이, 금반지, 금 귀걸이 있죠?
금은 모양은 바뀌더라도 성품은 안 바뀌죠.
금세공업자한테 가서 금덩어리를 주면서
금목걸이, 금반지, 금 귀걸이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만들어 주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자성 청정심인데
자성 청정심이 형상으로 나타나는 게
책상, 마이크, 찻잔, 몸뚱아리, 바람 불고, 따뜻하고, 춥고, 이런 겁니다.
그렇지만 금이 어떠한 형상으로 바뀌어도 성품은 안 바뀌듯이
자성 청정심도 바뀌지 않는 겁니다.
자성 청정심은 공(空), 불공(不空), 두 가지입니다.
자성 청정심 성품은 본질이 텅 비어 있는데
중생 업이 가해져 버리면 인연에 따라 불공으로 바뀌어 집니다.
인연 따라서 형색이 생기게 되는 거죠.
하지만 무지하거나 지혜롭거나 범부이거나 중생이거나
본질을 알고 있거나 모르거나 본질은 자성 청정심이에요.
『원각경』에서는
이 원각(圓覺)에서 인간도 나오고 동물도 나오고
삼라만상 우주가 다 쏟아져 나오는데
돌아갈 때는 원각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원각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허공에 꽃이 피었다가 졌다가 반복하지만 허공은 바뀌지 않듯이,
불을 피워서 불꽃이 허공에 날리면
날리기 전이나 날린 뒤에 허공은 바뀌지 않듯이,
원각은 바뀌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형상이 있는 것은 전부다 본질이 자성 청정심이에요.
금목걸이라든지 팔찌라든지 반지는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금이듯이
인간도 잘못해서 지옥에 떨어져서 지옥중생으로 태어나도
자성 청정심은 안 바뀌는 거예요.
축생으로 태어나더라도 그 모습은 축생이지만 본질은 자성 청정심이에요.
아귀든 아수라든 천상의 신이든 부처님이든 마찬가집니다.
다만 자성 청정심을 깨달으면 부처님이요,
못 깨달으면 중생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 자성 청정심은 어디든지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서 머물지 않는 다는 것은 안 바뀐다는 말이에요.
이런 얘기는 근본적인 문제를 얘기하기 때문에 이렇게 본다면
진짜 잘나고 못난 사람 누가 있습니까?
여기에 무슨 종교가 필요 합니까.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자기 종교가 좋다고 싸워본들
본질은 자성 청정심 안 바뀌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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