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지운스님 강의 : 『唯識』- 제칠식(第七識)은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 (강의 - 2. 마음)

경호... 2011. 8. 24.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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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제칠식(第七識)은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 (강의 - 2) 『밀엄경』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나가 장식(藏識)을 반연하여서 자석이 쇠붙이를 당기듯하니 장식(藏識)은 아뢰야식을 말합니다. 감각기관인 눈이 색깔을 보게 되면 시각, 귀는 청각, 코는 후각, 혀는 미각, 몸은 촉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들어온 정보들이 다 법입니다. 인연소생법이라는 거죠. 눈과 모양이 만나고, 귀와 소리가 만나고, 코와 향기가 만나고, 혀와 맛이 만나고, 몸이 촉감을 만나게 되면 이런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이 생깁니다. 이것을 법이라고 합니다. 다시 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인연관계에 의해 법이 생깁니다. 이런 것을 아는 것을 의식이 합니다. 이러한 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자아의식인 말나식입니다. 그런데 자아의식은 뒤에 있는 아뢰야식을 인식을 합니다. 그럼 아뢰야식은 어떤 부분을 인식을 하느냐? 아뢰야식에는 세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업상(業相), 전상(轉相), 현상(現相)이 있습니다.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능히 보는 상, 능견상(能見相)입니다. 말나식이 현상(경계상)을 보면서 “이것은 내것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 의식은 바깥으로 향해 있는데, 말나식은 안으로 아뢰야식을 향해서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말나식의 특징입니다. 수행을 하면, 제일 먼저 감각이 사라집니다. 그 다음에 감각기관이 사라지고, 감각이 소멸해버립니다. 소멸해 가면 범부의 깨달음입니다. 몸이 다 사라져서 없는 겁니다. 그 다음에 더 들어가 가지고 법과 의식을 대상으로 관찰해서 의식이 소멸해버리면 이게 상사각(相似覺)입니다. 이때 의식이 묘하게 관찰하는 묘관찰지로 바뀝니다. 동시에 말나식 중에서 네 가지의 아(我見, 我愛, 我癡, 我慢) 중에 아견이 제일 먼저 사라지면서 말나식은 평등성지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나식이 장식(아뢰야식)을 인식한다고 하는 것은, 능견상이 경계상을 의지하여 ‘내다’라고 분별(인식)을 하는 겁니다. 아뢰야식이 ‘내다’이렇게 보는 거죠. 그러니 표가 안 나죠. 뱀에게 두 종류의 머리가 있어 각자가 따로따로 업을 짓듯이. 뱀에게 몸은 하나인데 두 종류의 머리가 있다고 했지요. 각자 따로따로 업을 짓는다는 것은, A라는 머리와 B라는 머리는 무슨 짓을 하든 다르다는 것이죠. 그러면 저기서 무엇을 얘기하느냐, 말나식과 의식이 - 아뢰야식은 업을 안 지어요. - 따로 노는 두 머리가 아니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염된 생각도 이와 같아서 아뢰야를 집착해서 취하려 하여 나라고 하는 업을 지어 놓으니 나에 대한 경계가 늘어난다네. 아뢰야라는 마음은 무의식과 같은 거예요. 일체 종자식이라고도 하는데, 무의식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뢰야식을 규정할 수가 없습니다. 아뢰야라는 것은 장식(藏識)이라고 하거든요. 장은 감출 장(藏), 창고 같은 거죠.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하는 이 분위기까지 아뢰야식에 저장을 합니다. 그래서 장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저장만 하는 게 아니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방출하기도 하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에 말나식(자아의식)이 장식인 아뢰야식을 보고 이것은 ‘내다[我]’, ‘내것이다[我所]’이렇게 합니다. 장식은 세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업(業)의 모습이 있고, 능견(能見), 능히 보는 주관의 모습이 있고, 경계상인 객관의 모습이 있습니다. 여기서 능견의 모습을 보고 ‘내다[我]’라고 하고 경계의 모습을 보고 ‘내것이다[我所]’이렇게 보는 게 아뢰야식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안으로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인식을 하면서 ‘내다’, ‘내것이다’이러는 겁니다. 아뢰야식은 24시간 늘 깨어있는 마음이고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어요. 그래서 항상 하는 것 같이 느껴지니까 항상 하는 자아가 생겨서 ‘내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라고 하는 업을 지어 놓으니 나에 대한 경계가 늘어난다네.’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여기서 나에 대한 경계’는 아치, 아만, 아애, 아견입니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의 경계상하고 능견상을 인식을 하는 겁니다. 능견상을 취해서 ‘내다’하고 내 업을 짓고, 경계상, 현상을 인식하면서 나에 대한 경계는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두 종류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아뢰야식이 아(我)와 아소(我所)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이 되어 가지고 ‘내다’,‘내것이다’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두 종류의 머리라고 이렇게 보는 겁니다. 의식과 더불어 함께 있으니 이것이 인이 되어 커져 나가네 ‘의식과 더불어 함께 있으니’했는데. 전념(前念)이 있고 후념(後念)이 있습니다. 전념을 말나식이라고 하고 후념을 의식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전념과 후념 사이를 무간연(無間緣)이라고 합니다. 앞에 지나간 생각[전념]이 말나식인데 그것을 의지해서 뒤로 끄집어 올리는 게 후념[의식]이에요. 전념과 후념 사이는‘사이가 없이 이어진다’ 해서 무간연인데 앞 생각과 뒤 생각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전념과 후념과 내용이 같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내다(我)’하는 생각이 지나가면 뒤에도 ‘내다(我)’하는 생각을 같이 이어서 일어나는 겁니다. 앞에 지나가는 ‘아(我)’는[심층의식] 포착이 안 되지만 뒤에 일어나는 ‘아(我)’는[표층의식] 포착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말을 했는데 기분 되게 나쁘다 이러면 기분 나쁜 것은 ‘내다’하는 자존심이죠. 그런데 의식[후념]상에 ‘내다’하는 자존심 상하는 생각이 나지만 사실은 앞에 전념[말나식]이 지나가면서 뒤를 이끌어 낸 겁니다. 이렇게 ‘의식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말은 이런 말이고, ‘이것이 인이 되어 커져 나가네’이 말은, 의식과 말나식이 같이 연결되어 있어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점점 힘을 발휘를 하는 겁니다. 끊임없이 연을 지어가는 거죠. 전찰나 후찰나가 계속 이어서 힘을 발휘하며 상속하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이지요. 몸에서 따슨 기운 생겨 나오니 움직여 모든 업을 지어 나간다. ‘몸에서 따슨 기운 생겨 나오니’ 했는데 참 어려운 말입니다.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몸 기운입니다. 의식이 마음인데, 이때 의식상에 일어나는 기운이 흙, 물, 불, 바람 네 개가 있습니다. 이 몸은 네 개의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지는데 의식의 힘에 의해서 흙, 물, 불, 바람이 다시 생성이 되요. 예를 들면, 『능엄경』에 탁발 나온 아난존자가 우물가에서 물을 얻어먹게 되었는데, 그때 마등가녀(摩登伽女)는 잘 생긴 아난존자를 보고 그만 반해버렸어요. 그래서 마등가녀가 아난존자를 남편으로 삼으려고 사비가라선범천주(娑毗迦羅先梵天呪)라는 주문을 외워서 데려가는데, 아난존자는 주술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면서 부처님이 계시는 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구원을 호소했어요. 이때 부처님은 파사의왕 아버지의 제삿날이므로 그의 청을 받아 왕궁에서 공양하시던 중이었는데 그것을 보시게 됩니다. 천안(天眼)이 열려 있으니까 다 아시는 거예요. 공양을 마치고 기원정사로 돌아오셔서 대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삼매에 드셨어요. 삼매에 드셨는데 미간에서 부처님이 나타나서 능엄주를 막 외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능엄주를 빨리 외워가지고 아난존자 데려오너라.’하신 거예요. 부처님 말씀에 문수사리보살이 공간이동을 해서 아난존자가 끌려 들어간 처소로 가서 능엄주를 외웁니다. 그러니까 사비가라선범천주(娑毗迦羅先梵天呪)라는 삿된 주문이 풀려 버렸어요. 주문이 풀리니까 아난존자가 정신이 돌아와 가지고 같이 기원정사로 공간이동해서 돌아옵니다. 이 공간이동이라는 말이 재밌죠. 옛날에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 봐요. 돌아와서 부처님하고 문답을 하는데 무엇 때문에 출가 했느냐, 너는 왜 그렇게 홀려가지고 정신이 없느냐, 이런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종경록에도 있지만, 이게 무엇을 얘기하느냐 하면,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남녀가 좋아 지내면 물이 생긴다, 눈물만 생기겠어요. 이것이 물의 요소에요. 마음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몸에 물이 생기는 거예요. 『능엄경』에서 얘기하는 게 사람이 주색잡기를 많이 하면 죽을 때 물이 많이 생긴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위로 빠져 나가야 되는데 이 물이 아래로 흘러 빠져 나올 때 영혼이 거기에 끌려가지고 밑으로 빠져 나간다는 거죠. 밑으로 빠져 나가면 삼악도(三惡道)에요. 그래서 모름지기 눈물의 씨앗은 적을수록 좋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수행의 달인들은 정수리 가운데 구멍이 있어서 그곳으로 영혼이 빠져 나간다고 합니다. 티벳에 염불 하신 분들은 죽으면 장례 지낼 때 조장(鳥葬)을 지냅니다. 돌아가신 분에 육신을 칼로 헤쳐서 놔두면 독수리들이 와서 말끔히 해결합니다. 이게 자기 몸을 짐승들에게 보시하는 겁니다. 그런데 남은 죽은 사람의 해골을 보면 염불을 많이 하신 분들은 정수리 부분에 구멍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위로 빠져나간다는 거죠. ‘몸에서 따슨 기운 생겨 나오니 움직여 모든 업을 지어 나간다.’ 기운에 의해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업을 짓는 거예요. 몸에서 따슨 기운이 나온다는데... 누가 만 원짜리 빳빳한 지폐 있습니까? 제가 마술을 한번 부려보겠습니다. 손바닥에 올려보십시오. 뭐가 보입니까? 지폐가 알아서 올라오죠. 왜 알아서 올라옵니까? 희한하죠. 이게 기운입니다. 기운은 뭐를 동반 하느냐 하면 습기를 동반합니다. 그래서 종이가 구부러지는 거예요. 여기‘몸에서 따슨 기운 생겨 나오니 움직여 모든 업을 지어 나간다.’ 기운으로 업을 지어 가는 거예요. 우리 몸에 72,000개의 기혈이 있는데, 21,600개의 기운이 생겨요. 이 기운이 신구의(身口意) 삼업,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손에 올려보면 신기하게도 기운이 나오잖아요. 여러분도 다 됩니다. 마시고 먹어대며 옷을 걸치고 환경의 여건따라 받아 쓴다네 뛰오르며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가지가지 스스로 즐기며 논다. 이런 것을 보면 말나식이 뒤에서 작용하고 있는 거죠. 이게 전부 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거지요? 돈이 구부려지는 것은 기운 때문에 그런데, 기운의 근원이 어딥니까? 마음이죠. 마음에 의해 기운이 나오는 거예요.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가지가지 스스로 즐기며 노는 것은 뭡니까? 마음에 의해서 그러는 겁니다. 즉 마음을 잘 다스리면 다 되는 거예요. 사주팔자 잘 보시는 거사님이 한번 수업에 나오셨습니다. 어느 날 거사님이 마의선사(麻衣禪師)라는 책을 보니까, “사주보다 관상이 더 정확하다. 관상보다 심상을 봐야된다 이리 되어 있지만 그리 안 되어 있고 관상은 마음 따라서 변한다.” 이렇게 되어있었습니다. 그 구절을 보는 순간, 그 거사님은 사주팔자, 관상 안 보고 마음 닦는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누가 한 소리 한다고 혹해가지고 한 소리 하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절에 다니면서 기도도 하고 해서 직감이 발달했다고 아는 소리 좀 하거든요. 그 아는 소리에 턱 걸리면 안 되는 겁니다. 몸과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리면 되는 것인데 남이 하는 말에 혹 해가지고 잘 사니, 못 사니, 복이 있니 없니를 물어보면 뭐합니까? 그 사람들이 시키면 꼬박 넘어가고, 퍽 엎어지고... 그런 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여러분들도 절대로 아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아는 소리 하는 사람은 제대로 불교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일 아는 소리를 하려면, 상대의 길흉화복을 점을 쳐주는 것이 아니고 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무슨 길흉화복에 대한 얘기를 왜하느냐 이거예요. 길흉화복이 어디서 나옵니까? "마음이요." 그렇죠, 마음에서 나오죠. 야! 한 말씀 들어간다 이제. ㅎㅎㅎ 마음을 잘 알면 다 되는 겁니다. 오늘 배운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입니다. 아는 소리에 빠지지 말자, 미신에 빠지지 말자. 그것을 확실히 기억해야 됩니다. 끝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