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제칠식(第七識)은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 (강의 - 1)
제칠식(第七識)은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이다.
우리 마음은 여덟 개의 마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감각은 다섯 개가 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 다음에 의식이 있습니다.
그 다음이 잠재의식인 말나식인데 이 말나식이 제칠식입니다.
제팔 아뢰야식은 보통 무의식이라고 하지만, 무의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런데 제칠식은 자아관념이고 강합니다.
그래서 제칠 말나식이 자아의식입니다.
제칠 말나식의 특징은 대상을 인식하고 선악 분별 등
분별은 다 하지만 표가 안 납니다.
원효스님은 제칠 말나식은 대상을 인식은 하는데,
마치 잠자는 것 같이 인식을 한다고 합니다.
잠재의식이기 때문에 표가 안 난다는 겁니다.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
유부(有覆)라는 것은 무언가를 위에 덮는 것을 말합니다.
무기(無記)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성(性)은 성질이 그렇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성질, 유부무기성이라는 것이죠.
이 말은 무얼 얘기하는가 하면,
결국 제칠 말나식은 번뇌의 덮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잠재의식이라고 하지만,
잠재의식은 번뇌에 영향을 받는 겁니다.
잠재의식에 대해서 잘 모르죠?
그러면 더 얘기하죠.
애기들 우유를 잘 안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안아가지고 살살 흔들어주면 살포시 눈이 감깁니다.
그러면 의식이 사라지는 비몽사몽간이 되지요.
그 때 우유병을 입에 물려주면 잘 빨아먹습니다.
그런 게 제칠 말나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를 얘기하자면,
뇌사 판정 받은 사람을 모셔다가 간호를 하며 미음을 입에 떠 넣어 줍니다.
의식이 없는데 받아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칠 말나식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98년도에 답사를 위해 중국에 어떤 절을 가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들어갔는데 가는 길이 비포장 도로였습니다.
골짜기 골짜기로 들어가는데, 버스가 심하게 덜컹거리는 겁니다.
그런데 조선족 가이드가 피곤했는지 거짓말 안하고 기가 막히게 잠을 잘 자는 겁니다.
코를 드르렁거리면서 자는데, 왜 몸이 의자에서 안 떨어질까?
굉장히 궁금한 거예요.
분명히 코를 골고 자면 숙면상태, 즉 의식이 없는 상태인데
심하게 덜컹거리는데도 안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말나식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말나식이 그런 겁니다.
이해가 됩니까?
유부무기성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유부라고 하는 것은 덮임이 있는데 선악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유부'인데 대신 선이나 악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지말나식과 말나식의 심소는 어느 성품에서 거두어 들입니까.
본문 주석3을 보면
제칠식(第七識)과 제육식(第六識)을 구분하기 위해서
한역(漢譯)에서는 대부분 제칠식을 의(意)로 표현하고
제육식을 의식(意識)으로 쓰고 있다.
47권에서 팔식(八識)의 행상(行相)을 물으니
이숙(異熟) 사량(思量) 요별경식(了別境識)의 삼능변식(三能變識)으로 답하였다.
47권에서 51권까지는 초능변식(初能變識)에 대해서,
52권은 제이능변식(第二能變識)에 대해서,
53권부터는 제삼능변식(第三能變識)에 관한 설명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삼능변식(三能變識)은 세 가지 능히 변하는 식을 말합니다.
세 가지 능히 변하는 식 중에 하나가 제칠 말나식입니다.
제팔 아뢰야식, 제칠 말나식, 제육 의식, 이 세 가지가 (능동적으로)변하는 식입니다.
그 중 하나로 말나식을 꼽고 있는 것입니다.
지말나식[意]은 네 가지 번뇌[心所]와 상응하는 오염된 법이기 때문에
성스런 도를 장애하고 진심을 은폐한다.
네 가지 번뇌는 뭔가 하면
아견(我見), 아애(我愛), 아치(我癡), 아만(我慢)입니다.
모두 '아(我)'자가 들어가 있죠.
아견은 ‘나’라고 하는 생각, 아만은 자신을 높이는 것,
아애를 자신을 사랑하는 것, 아치는 어리석음이죠.
이런 네 가지 번뇌가 말나식과 같이 붙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의식상에서 고집을 되게 피우는 사람들은 자아관념이 강합니다.
고집은 자아관념이거든요.
그것은 말나식이 의식에 영향을 줘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고집 같은 것은 너무 피우지 마시고 자존심 너무 세우지 마세요.
고집이 너무 센 사람은 몸이 굳어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몸이 경직이 많이 되어 있어서 신경통이 많습니다.
그래서 고집 부리는 게 안 좋습니다.
그게 전부 말나식의 영향입니다.
그러면 아치, 아애, 아만, 아견 이 네 가지 오염된 법이
무엇으로 장애를 하느냐?
성스런 도, 성스러운 도를 장애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유부성(有覆性)이라 한다.
덮임이 있는 성품이라고 한다.
네 가지 아치, 아애, 아만, 아견 이 네 가지 번뇌가
자꾸 진실을 은폐한다는 겁니다.
또 이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전에는 선(善)도 아니요 불선(不善)도 아니므로
무기성(無記性)이라 한다.
이것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밖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의식상에서 들어난다는 거죠.
의식상에서 드러나면 선, 악으로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말나식은 잠재의식이기 때문에 선악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무기(無記), 기록할 수 없다, 이런 얘깁니다.
그러면서도 진실을, 참마음을 은폐시키기 때문에 유부다,
그래서 유부무기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바꾸어져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되면
오로지 선(善)한 성품일 뿐이다.
평등성지(平等怯智)가 무엇인가 하면,
제칠 말나식이 지혜로 변환되어 나타나는 것이 평등성지입니다.
왜 하필 평등한 성품의 지혜라고 했을까?
자아관념과 차별을 얘기합니다.
‘나’라고 하는 고집이 있는 사람, 내가 잘났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남을 깔보고 아래로 보고 그렇게 합니다.
고집 피우고 하는 사람도 그런 것이 있어요.
자아관념인 '나'라고 하는 것은 차별을 의미합니다.
내가 있으면 너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제칠 말나식이 전환되면 평등성지를 이룹니다.
그러면 언제 전환이 되는가, 이런 것도 알고 싶잖아요?
이런 것은 이 책에 안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립니다.
의식이 묘관찰지로 전환이 될 때,
자아의식인 말나식의 네 가지 번뇌 중에 아견이 사라지면서 평등성지가 생깁니다.
그때의 경지가 초지의 경지, 아라한의 경지입니다.
그러면 더 정확하게 그 과정은 어떻게 되느냐?
마음의 소멸이 생길 때 일어납니다.
첫 번째로 몸 소멸이 일어납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大) 또는 5대(五大 : 地水火風空)로 결합되어있는
몸이 소멸하고, 그 다음에 5대에 의해서 일어나는 심리가 소멸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몸이 다 사라져버리고 의식만 남아있는 상태인데,
깨어있는 의식에 대해 관찰해 들어가면
수많은 번뇌망상이 흘러나옵니다.
그럴 때 무엇을 깨닫느냐?
“아! 모든 모양, 색깔, 형상은 내 마음이 투사되어 있는 거구나.
실제의 바깥 대상은 모양, 색깔이 없는 세계구나.”이렇게 알게 되요.
그래서 오직 마음뿐, 다른 경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게 초지의 경계입니다.
오직 마음뿐, 다른 경계가 없다는 경계가 완성 되는 것은
부동지 가서 완전히 완성됩니다.
그래서 그 의식을 관찰하면 자아가 없고 실체가 없다는 텅 빈 공을 만나게 됩니다.
그 공을 만나 계속 주의 집중하면 삼매가 생기고,
삼매에 의해 다시 공을 하나하나 분석해 갑니다.
분석을 하면 한 점에 의혹이 다 사라지고 공에 대해 직관에 들어갑니다.
직관에 들어가면 공속으로 쑤욱 들어갑니다.
들어가면서 의식은 묘관찰지로 변하고
자아의식인 말나식 중에 아견이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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