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표 한 장 붙여서
꽃 필 때 널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한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않는 네 슬픔같아 떨어진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여위어가고 미움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꽃 질 때 널 잃고도 나는 살아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쓸쓸함이 다른 쓸쓸함을 알아 볼 때까지 험한 내 저녁이 백년처럼 길었다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다.
마음이 궁벽해서 새벽을 불렀으나 새벽이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 사랑은 만인의 눈을 뜨게 한 한사람의 눈 먼 자를 생각한다 누가 다른사람 나만큼 사랑한 적 있나 누가 한 사람을 나 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나 말해봐라 우표 한장 붙여서 부친 적이 있나
/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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