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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밥 / 문숙

경호... 2012. 7. 1. 17:42

 

 

 

 

 

착한 밥 / 문숙

 

저는 이제 단순하게 요리됩니다

당신의 밥이 되는 시간도 지극히 짧아졌습니다

길게 뜸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윤리의식으로 포장돼 아직은 순수합니다

모성애가 강해서 찰기가 넘치고

신토불이 정서를 지녀 희고 담백합니다

 

먹기 작전

속살이 보일 듯 말듯 살짝만 벗기시고

따뜻한 가슴으로 이삼 분만 데워주세요

뻣뻣한 몸이 말랑해지기까지는 딱 2분이면 됩니다

들끓던 생각들은 모조리 살균처리 했으니

거부의 몸짓 같은 건 염려마십시오

 

온전히 틈을 없애 숨구멍 하나 없습니다

?을 자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당신이 정한 유통기한에 철저히 감금된 몸입니다

보관할실 때는

상온 저온 따지지 말고 아무데나 보관해 주세요

 

살아도 죽은 목숨으로 잘 버티겠습니다   

 

 

 

 

울돌목 / 문숙 
 

둘이 합쳐지는 곳엔 언제나 거친 물살과 울음이 있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 수위를 맞추느라 위층이 시끄럽다

늦은 밤 쿵쿵 발자국 소리와 새댁의 흐느낌이 들려온다

한쪽이 한쪽을 보듬는 일이 아프다고 난리다

 

마음 섞는 일이 전쟁이다

우루루 우루루

가슴 밑바닥으로 바위 구르는 소리를 토해낸다

돌덩이들이 암초가 박혀드는 시간이다

 

수면을 편편하게 하는 일 부드러운 물길만이 아니어서

부딪혀 조각난 것들 가라앉히는 시간만큼 탁하고 시끄럽다

저 지루한 싸움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 익사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시집『기울어짐에 대하여』(애지, 2012)

 

 

 

 

 

 

 

소화기 / 문숙

 

딱 한번만 숨쉬고 싶어 

세상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는 거야

고요한 평화는 또 다른 죽음이었어

구석진 곳에 차갑게 방치된 채

내가 나를 보지 못한 날들이 뿌옇게 쌓였어

더듬이를 잃은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

자궁 속인지 무덤 속인지 모를 이 곳에서

나,

붉게 물들인 시간이 녹슬어 바닥까지 번졌어

한때 내 안에도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어

지금 하얀 포말 같은 언어들이 딱딱하게 굳어가

나를 깨우고 싶어

누군가의 손길에 세차게 흔들리고 싶어

나를 잠근 안전핀을 뽑고

내 안을 확인하고 싶어

나만을 태울 수 있는 불길을 만나

한순간의 뜨거움을 향해 확

나를 쏟어리고 싶어

딱 한 번만 숨 쉬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