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색어리표범나비1.2 / 홍성란 (백여덟 송이 애기메꽃 시집)
담색어리표범나비1 / 홍성란
술잔도 5도쯤에서 흔들흔들 웃고 있다
숨결 향기롭게 풀어헤친 하오
희미한 복선을 깔고 슬라이드 돌아간다
바보 같은 꽃들아 긴 모가지 거두어라
취한 듯 앉았다가 그늘 걷듯 가버릴
한 떼의 금빛 무리 속 벌레처럼 누웠구나.
담색어리표범나비2 / 홍성란
눈물의 볕살 아래 피어난 꽃들이여
적막한 도심에서 홀로 지는 꽃들이여
사(赦)하라 이 무죄의 굴레, 이 철책의 방랑벽.
애기메꽃 / 홍성란
한때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지
날 위해 돌돌 감아오르는 줄 알았지
들길에
쪼그려 앉은 분홍치마 계집애
낙화 / 홍성란
봄빛 하도 고와 그늘따라 걷는 길
그 여인 너른 치마폭 누가 여기 펼쳤는가
이 발길 어디 놓을까 마음 잠깐 머무네
벌레거나 바람이거나 한번쯤은 보았으리
흥건히 고인 물 왁자한 4월의 화장술
지난 밤 절정의 순간 담을 너머 들린다
고슴도치 / 홍성란
다 사랑할 거야
다 사랑해 줄 거야
자꾸 결심하는 너는 오늘 괴로웠겠구나
가슴에 가시 박힌다 해도
널 포옹해 줄 거야
# ‘가위손’을 가진 청년이 있었지요. 가위질 잘하는 손재주로 나무들도 온갖 모양으로 만들 수있고, 사람들의 머리도 아름답게 다듬어 줄 수 있고, 고장 난 기계들도 고칠 수 있었지요.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구름을 잘라 눈으로 만들 수 있기도 한 청년이 있었지요. 1991년 개봉되었던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Edward Scissorhands)에 나오는 청년의 이야기랍니다.
그러나 멋진 가위손 기술로 세상을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 수는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 할 수는 없었답니다. 자신의 가위손이 상대방을 다치게 하니까요.
“다 사랑할 거야/다 사랑해 줄 거야”라고 말로는 그러면서 마음속에 가위손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건 아닌지요.
정말 사랑한다면 “가슴에 가시 박힌다 해도/널 포옹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 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신대학교 교수
백여덟 송이 애기메꽃 : 홍성란 시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