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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 백석

경호... 2012. 2. 2. 22:48

 

 

 

 

 

 

모닥불 /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 : 개의 이빨.
너울 : 시들은 풀이나 나뭇잎.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門長 : 한 문중(門中)에서 항렬과 나이가 가장 높은 사람.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직업의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북신(北新) / 백석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香山)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모밀내 : 메밀내음새

향산 :묘향산

돗바늘 : 아주 굵은 바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