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경호... 2012. 1. 19. 15:37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