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漢詩및 시조 눈 속에 혼자 차를 마실 때 / 야은(冶隱) 길재(吉再) 경호... 2012. 1. 15. 16:59 ▒ 눈 속에 혼자 차를 마실 때 / 야은(冶隱) 길재(吉再) 飄風不起 容膝易安 [표풍불기 용슬역안] 明月臨庭 獨步徐行 [명월임정 독보서행] 簷雨浪浪 或高枕而成夢 [첨우낭낭 혹고침이성몽] 山雪飄飄 或烹茶而自酌 [산설표표 혹팽다이자작] 회오리 바람 일지 않아 좁은 방도 편안하다 밝은 달빛 뜨락 비춰 홀로 더디 걸어보네 처마에 비 떨어지면 베개 높여 꿈을 꾸고 산에 눈발 흩날릴 땐 차 끓여 홀로 따른다 겨울의 산속 집에는 칼바람이 무시로 드나든다. 겨울밤 회오리 바람이라도 잔잔해지면, 무릎을 겨우 펼만한 좁은 방이지만[容膝] 편안하고 안온하다. 게다가 환한 달빛이 마당을 찾아오니 마음마저 환해져서 뜨락에 내려서서 혼자 가만히 산보한다. 혹 겨울비라도 내려 처마 끝에 빗물이 떨어지면, 그 소리를 음악 삼아 꿈나라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산가(山家)의 겨울 운치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은 뭐니뭐니 해도 흰 눈이 펑펑 내려 쌓일 때, 그 눈을 녹여 찻물로 끓여 혼자 가만히 찻잔에 차를 따르는 바로 그 때가 아닐 수 없겠다. 문풍지에 흰 눈송이가 부딪쳐 쌓이고, 처마 끝에는 회오리 바람이 돌아나간다. 방안 화로에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방안의 호롱불이 웃풍에 자꾸 흔들린다. 가만히 찻잔에 차를 따르니 훈김이 서려 움츠렸던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날, 그저 한번 생각만으로도 더위가 간 곳이 없다. ◈ 길재(吉再, 1353-1419) ◈ 여말선초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이 지은 [산가서(山家序)]란 글의 한 대목이다. [산가서]는 선생이 벼슬길에 나가기 전인 30세 전후에 쓴 글이다. 세상 길에 마음을 끊고 학문에 몰두하는 삶의 기쁨을 노래한 내용이다. 산속 집에서 공부의 여가에 누리는 네 계절의 즐거움을 노래한 대목 가운데, 겨울의 정취를 말한 부분에 해당한다. - 곡 / 명상음악 - 그대 그리운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