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유식(唯識)을 세우는 본래 뜻은 (강의)
이와 같이 칠식은 아뢰야식 가운데에서 모두 상응하여 일어난다.
이것은 마치 많은 영상이 모두 거울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과 같고,
또한 많은 물결이 하나의 물로 똑같이 모이는 것과 같다.
이처럼 식(識)이 전변하는 것은 두 가지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는 분별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분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분별되는 것이 없다면 분별하는 것도 또한 없다.
경계로서 취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식(識)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치로서 유식의 이치가 성립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칠식은 아뢰야식 가운데에서 모두 상응하여 일어난다.’
여기서 칠식은 시각부터 말나식 까지 일곱 가지 식을 말합니다.
이 말은 무엇이냐 하면,
제8아뢰야식 속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는데 그것을 종자라 그래요.
그리고 시각부터 말나식까지는 전부다 아뢰야식 종자가 발현되어서 나타난 겁니다.
특히 말나식을 제외한 여섯 가지[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는
육체가 영향을 주면 반응을 보여요.
그래서 그 영향을 받으면 다섯 개의 감각하고 의식이
작용을 안 할 수가 있어요.
교통사고로 많이 다치면 뇌사상태에 빠지잖아요.
그게 의식이나 감각이 가 버리는 거예요.
충격을 받으면 그런 거죠.
제7말나식도 충격을 받지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나 의식처럼 그렇지는 않아요.
뇌사상태라도 미음을 입에 넣어주면 받아먹거든요.
이게 제7말나식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일곱 개 마음은 육체라든지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하면,
아뢰야식 종자에서 발현 된 것이기 때문에 근본 마음이 아닌 거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몸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마음이 움직인다는 거죠.
그래서 ‘아뢰야식 가운데에서 모두 상응하여 일어난다’는 것은
서로 응해서 일어나난다 그거예요.
‘이것은 마치 많은 영상이 모두 거울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과 같고’
‘많은 영상’이 칠식이라면, 아뢰야식은 ‘거울’을 얘기합니다.
‘또한 많은 물결이 하나의 물로 똑같이 모이는 것과 같다.’
물줄기는 많더라도 사실은 물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물이죠.
여기 똑같은 물은 아뢰야식이고 많은 물결은 일곱 개 마음입니다.
이런 것을 『능가경』에서는
‘경계의 바람이 불면 피부라든지 땀구멍을 통해서
일곱 개의 마음이 파도를 친다’, 이러는 거예요.
‘이처럼 식(識)이 전변하는 것은 두 가지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식이 바뀌는 것은 두 가지 이치를 못 벗어난다 이거죠.
‘하나는 분별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분별되는 것이다.’
하나는 분별하는 것인데, 뭐가 분별하는 거죠?
의식과 말나식이 분별하는 거죠.
분별 되는 것은 뭘까요?
그 대상을 얘기하는 거죠.
‘그러나 이미 분별되는 것이 없다면 분별하는 것도 또한 없다.’
분별하는 것도 없고 분별 되어지는 것도 없다면
그때는 식(識)이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쉽게 말하면,
주관과 객관이 있는 것은 전부 식[마음]이고,
주객이 벗어나버리면 이때는 식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어요.
‘경계로서 취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식(識)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경계로서 취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이것을 경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식이 생긴다 그러죠.
여덟 개 식은 경계를 대할 때 일어납니다.
눈하고 사물[모양과 색깔]을 접하면 시각이 생기는데,
그것을 안식(眼識)이라 그러죠.
귀하고 소리가 만나면 청각, 이식(耳識)이 생기죠.
코와 향이 만나면 후각, 비식(鼻識)이 생기고,
혀와 맛이 만나면 미각, 설식(舌識)이 생기고,
무엇인가 접촉이 되면 촉각, 신식(身識)이 생깁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이렇게 접촉에 의해서 마음이 일어난다 이거죠.
그리고 의식(意識)은 법(法)과 의근(意根)이 만나면 일어나는 거죠.
앞에 지나간 생각, 전념(前念)이 의근(意根)이 되고,
이 의근이 법[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과 접촉해서
의식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제7말나식은 제8아뢰야식의 견분하고 만나면
‘이것이 내다’라고 생각을 하죠.
이렇게 무엇이든 접촉해서 마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제8아뢰야식은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면,
자체에서 견분 상분이 나가지고 주객이 상대하는 거예요.
8종식이라는 게 홀로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죠.
그래서 타(他)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품,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그럽니다.
의타기성을 다른 말로하면 연기(緣起)라 그럽니다.
‘이런 이치로서 유식의 이치가 성립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유식의 이치를 세우는 본래의 뜻은 경계와 마음을 버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지금 경계가 없으면 이것을 분별하는 마음도 사라지는 것이다.
곧 여기에 유식의 이치가 성립한다고 설한다.’
경계가 사라지면 마음도 사라진다,
그 경계라는 것이 마음일까요, 아닐까요?
그렇죠, 마음이죠.
여기서 유식(唯識)의 이치를 얘기하자면,
‘오직 마음뿐’이다 하는 것은
마음이 대상 따라서 일어나는데,
그 대상도 사실 자기 마음이라는 겁니다.
마음과 마음이 상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니까
오직 마음뿐이라는 겁니다.
마음 하나의 문제를 풀면 다 풀린다 이 말이에요.
팔만대장경의 부처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얘기하라면
‘마음’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해가 되시죠?
그래서
‘유식의 이치를 세우는 본래의 뜻은 경계와 마음을 버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경계와 마음을 버리면 원성실성(圓成實性)이 나오는데,
이 원성실성은 주객이 완전히 사라진 진여를 얘기 합니다.
유식을 세우는 본래 뜻은
원성실성을 얻기 위해서 그렇다 이리 되는 거예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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